글로벌 정복  노리는  피지컬 서바이벌, K예능 새 장 열까
  • 정덕현 문화 평론가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3 13:05
  • 호수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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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100》 이어 여성판 《사이렌: 불의 섬》도 출격

올해 상반기 넷플릭스가 내놓은 《피지컬: 100》은 이른바 ‘피지컬 서바이벌’이라는 K예능의 새 장을 열었다. 이어 넷플릭스는 《사이렌: 불의 섬》을 내놨다. 여성들이 섬에서 벌이는 피지컬 서바이벌이다. 과연 피지컬 서바이벌은 K예능을 대표하는 형식으로 떠오를까. 

넷플릭스 예능 《사이렌: 불의 섬》 포스터 및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피지컬: 100》 잇는 《사이렌: 불의 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사이렌: 불의 섬》은 방영 전부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유는 상반기에 공개돼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1위에도 오른 《피지컬: 100》 때문이다. 저마다 한 피지컬 한다는 100명의 인물을 총망라해 벌이는 서바이벌 경쟁을 담은 이 예능 프로그램은, 그간 글로벌 OTT에서 상대적으로 문화적 장벽이 높아 존재감이 적었던 예능 분야에서 ‘연애 서바이벌’ 이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K예능이 됐다. 그 핵심적인 키워드는 ‘피지컬’로, 몸과 몸이 부딪쳐 승부를 보는 서바이벌은 연애 분야와 더불어 국적과 언어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소재라는 걸 입증했다. 

그래서였을까. 《사이렌: 불의 섬》은 지난 4월 넷플릭스가 주최했던 ‘넷플릭스 예능 마실’ 행사에서 첫선을 보였을 때부터 기대감을 모았다. 그건 다름 아닌 ‘피지컬’을 소재로 하는 서바이벌 예능이라는 점이 《피지컬: 100》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차별점도 분명했다.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여성 24인이 경찰, 소방, 경호, 스턴트, 군인, 운동 등 6개 직업군으로 팀을 이뤄 미지의 섬에서 벌이는 생존 전투 서바이벌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피지컬이라는 소재에 최근 K콘텐츠 전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여성 서사가 더해졌다. 또한 6개 직업군이 팀으로 나뉘어 벌이는 대결이라는 점은 각 직업의 명예를 걸고 맞붙는 서바이벌이라는 점에서 명분이 분명했고, 또한 똑같은 미션이라고 해도 직업적 특성이 묻어나올 것이라는 점에서 더 큰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사이렌: 불의 섬》은 그간 ‘피지컬’이라고 하면 남성은 파워를 떠올리고, 여성은 미적인 것을 떠올리곤 하던 고정관념을 깨는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은경 PD는 자신이 ‘스포츠 만화’를 좋아하는데 ‘우정, 노력, 승리’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가슴을 뛰게 만든다고 했다. “그런데 여성이 주인공인 스포츠 만화가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정, 노력, 승리’가 담긴 진한 여성 서사물을 만들어보고 싶었죠.” 

물론 최근 등장한 피지컬 서바이벌은 하나의 확고한 장르로 자리하게 됐지만, 여기에도 한국 예능이라는 틀 안에서의 작은 계보는 존재한다. 이른바 ‘몸 고생’ 예능은 서구적인 서바이벌 예능들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 이미 우리에게도 있었다. 《1박2일》 같은 여행 예능이 혹한기 동계훈련에 들어가거나, 복불복으로 입수나 야외 취침을 하고,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에서 종종 펼쳐지던 뻘밭에서의 진흙탕 게임 같은 게 이른바 ‘몸 고생’ 예능으로서 본격적인 피지컬 서바이벌의 전조를 보인 바 있다. 

그러면서 군대를 소재로 하는 《진짜사나이》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그 계보를 이었고, 이를 패러디해 유튜브에서 군 체험을 다루는 《가짜사나이》가 등장하면서 본격 피지컬 서바이벌의 세계가 열렸다. 물론 《가짜사나이》는 일반인 크리에이터들의 군대 체험이라는 소재적 한계 때문에 ‘가학 논란’에 휩싸이는 한계를 보였지만, 《강철부대》는 아예 특수부대 출신 베테랑 군인들을 해병대부터 UDT, SSU 등등의 팀으로 한자리에 모아 대결시킴으로써 이러한 논란을 넘어설 수 있었다. 

이런 흐름 위에서 올해 초 방영된 《피지컬: 100》은 남녀노소, 인종, 국적 불문하고 오로지 피지컬로만 맞붙는 서바이벌로 K피지컬 서바이벌의 정점을 찍었다. 치열한 승부 자체도 볼거리였지만 승패에 상관없이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스포츠맨십이 전 세계 대중을 공감시켰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피지컬이 갖는 아름다움과 강함을 내세움으로써 최근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부쩍 늘어난 ‘몸만들기’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비대면으로 지내는 몇 년간, 오히려 붐을 이룬 ‘홈트(홈트레이닝)’ 열풍이 말해 주듯, 외부활동이 제한돼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 상황에서 몸만들기는 개인이 능동적으로 시도하고 그 결과의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일로 자리했다. 이런 능동성은 MZ세대들이 특히 루틴을 만들어 몸관리를 하는 걸 트렌드로 만든 이유가 됐다.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예능상을 받은 김종국이 운영하는 ‘짐종국’ 같은 개인 채널의 인기는 이러한 트렌드와 맞물려 몸에 진심인 이들을 위한 콘텐츠로 자리했다.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피지컬 서바이벌이 ‘싸움’ 아닌 스포츠가 되려면… 

피지컬 예능이 특히 주목받는 건, 몸과 몸이 부딪치는 ‘논버벌’ 서바이벌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시장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나라의 자막이나 번역 작업이 들어가긴 하지만, 특별히 자막의 도움 없이도 이 예능 프로그램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피지컬: 100》의 경우 본게임에 들어가기 전, 일종의 오리엔테이션 같은 형태로 진행된 ‘구조물 매달리기’는 특별한 설명 없이도 누구나 그것이 끝까지 매달려 남는 이가 우승자라는 걸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이것은 《사이렌: 불의 섬》도 마찬가지다. 사이렌이 울리면 미션이 시작되는 이 서바이벌은 각 팀이 선점한 기지를 방어하고 타 기지를 공격해 깃발을 뺏는 것이 기본적인 룰이다. 물론 직업별로 나뉜 팀이 저마다 자신들의 특성에 맞게 전략을 짜고 상대팀과 연합하기도 하는 일들이 벌어지지만, 무엇보다 피지컬이 맞붙는 광경이 모든 걸 압도한다. 30개의 장작을 패고, 거기에 불을 붙이고 상대팀의 불을 끄는 그런 미션들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파괴력으로 장작을 패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시원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몸으로 부딪치는 피지컬 서바이벌은, 서바이벌 예능의 또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두뇌 서바이벌’과는 사뭇 다른 접근방식이다. 《더 지니어스》 같은 두뇌 서바이벌은 제시되는 게임이나 심리전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또 두뇌 서바이벌에 공간적 구조를 집어넣어 사회적인 의미를 더한 《피의 게임》 같은 경우도 게임과 속고 속이는 정치 양상이 웬만큼 몰입해서는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쉽지 않다. 하지만 피지컬 예능은 미션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리 복잡하지는 않다. 그래서 최근 새로 방영된 《피의 게임2》에는 ‘습격의 날’에 ‘무력을 사용해도 된다’는 조항을 집어넣었다. 물론 이러한 물리적인 충돌은 자칫 자극으로만 흘러 논란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국내 서바이벌 예능에서도 점점 ‘피지컬’적인 요소들을 허용하거나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준다. 

몸으로 부딪치는 대결만큼 직관적인 건 없다. 하지만 여기에도 막장으로 흘러가는 치열한 대결이 아니라, 대결 끝에 상대방을 일으켜 세워주고 존중과 배려의 모습을 보여주는 스포츠맨십의 면면은 꼭 필요한 요소가 됐다. 그것이 아니라면 진짜 약육강식의 먹고 먹히는 자극의 연속에 머무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싸움이 아니라 스포츠적인 틀을 어떤 방식으로 유지시켜 주는가 하는 점은 피지컬 서바이벌이 갖는 숙제이자 의무로 떠오르고 있다. 

여러모로 글로벌 시장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언어적 또는 문화적인 차이가 예능이 갖는 재미의 편차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래도 공통적인 요소들을 글로벌 플랫폼들은 하나씩 찾아 나가고 있다. 연애에 이어 피지컬이 그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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