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 전쟁 중재 나서려는 중국, 못미더운 서방
  •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4 08:05
  • 호수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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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협상 테이블 가기 전 러시아-우크라이나-EU-미국-중국 ‘5자 5색’
멈추지 않는 치킨게임, 국제사회 한계이자 희비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하다. 과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중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전쟁 종결을 위한 협상을 시작할 수 있을까. 러시아의 핵 위협 속에서 유럽과 미국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도 국제사회의 핵심 관심사다. 

시 주석은 3월20~22일 러시아를 국빈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했으며, 4월26일엔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했다. 중국 인민망에 따르면 시 주석은 3월21일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역사적으로 볼 때 갈등은 결국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됐다”며 “중국은 우크라이나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평화회담을 여는 데 중국이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다. 

ⓒTASS 연합
3월2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중·러 정상회담에서 마주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TASS 연합

러시아 핵무기의 벨라루스 배치 현실화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외국에 대한 핵무기 배치에 반대하고 이미 배치한 핵무기도 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에는 푸틴의 발언이 지난해 11월5일 시진핑과 숄츠 독일 총리의 회담 때 나온 시진핑의 “유라시아에서 핵무기가 사용돼선 안 된다”는 발언에 호응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당시 시진핑의 발언은 푸틴에게 전술핵무기 등 핵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신호로 해석됐다. 

푸틴의 ‘외국 핵무기’ 발언은 유럽 동맹국에 핵을 배치한 미국에 대한 정치적인 압박으로도 해석됐다. 러시아와 중국은 자국 핵무기를 외국에 배치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만 유럽 동맹국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진핑은 푸틴과의 정상회담에서 전쟁 종결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것은 물론, 푸틴을 설득해 핵 위협을 완화시켰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시 주석 앞에서 한 발언을 간단히 뒤집으면서 이런 전망과 평가는 섣부른 것이 됐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이 베이징으로 돌아간 직후인 3월25일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 저장고를 7월1일까지 완공하겠다”고 발표했다.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10대의 항공기를 이미 벨라루스에 배치했다고도 공개했다. 노골적인 대서방 핵 위협이다. 그럼에도 시 주석은 4월26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대화와 협상이 유일하게 실행 가능한 탈출구”라며 “중국은 항상 평화의 편에 서있다”고 말했다고 인민망이 전했다. 여전히 중재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중국은 5월16~17일 리후이 유라시아사무 특별대표를 우크라이나에 파견했다고 신화망이 전했다. 리 대표는 젤렌스키 대통령 등을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의 정치적 해결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신화망이 전했다. 

그런데 그 직후 상황은 다시 급변했다. 벨라루스의 알랙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5월26일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벨라루스) 배치에 관한 법령에 서명했다”고 발표해 러시아 핵무기의 벨라루스 배치가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외국’인 벨라루스로 옮기는 실질적인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지난 4월 푸틴의 전술핵무기 벨라루스 배치 발표 때만 해도 서방은 이를 우크라이나에 전차 등을 공급하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에 대한 압박 정도로 해석했지만 핵 위협이 드디어 현실화한 것이다. 러시아 서쪽의 벨라루스에선 러시아보다 훨씬 짧은 경고 시간 안에 서방으로 핵무기를 발사하거나 비행기를 보낼 수 있다. 위기와 공포가 동시에 증폭될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이 다자간 조정 요구할 수도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어떤 중재자 역할을 노리는 것일까. 사실 분쟁 해결 과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가 당사자 협상이다. 분쟁 당사자들이 일대일로 머리를 맞대고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전쟁 중단 조건이나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논의하는 것이다. 분쟁·협상 당사자들이 상호 이익을 볼 수 있는 조건이 나와야 끝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 초기에 두 나라가 모두 국경을 맞댄 벨라루스의 국경지대에서 교전 중단 협상을 했지만 서로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무산된 적이 있다. 그 후 양측은 서로 공식적인 협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가 알선이다. 이는 분쟁 당사자들이 협상을 하되, 장소나 시기, 명분 등을 제3자가 도와주는 방식이다. 제3자가 협상의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중국은 이 방식을 선호할 수 있다. 교전 당사자 중 일방이 협상을 먼저 제안할 경우, 그리고 국내정치적으로 지도자가 나약해 보일 우려가 있을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전쟁을 먼저 시작한 푸틴 대통령의 경우 협상의 길이 열려 있다는 말을 계속 해오긴 했지만, 이는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모두 들어줄 경우 교전을 중단하겠다는 의미일 뿐이다. 전쟁 종결 조건을 놓고 서로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할 경우 정치적 후폭풍이 크기 때문에 진짜 협상은 꺼릴 수밖에 없다. 

이는 교전으로 막대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면서 상호 증오심과 적개심이 증폭돼 협상 자리에 앉는 것 자체가 공동체에 대한 반역으로 여겨질 경우에도 적용된다. 서로 한자리에 앉는 것조차 꺼릴 정도로 상호 증오·원한·혐오가 심하거나 상대를 깔보는 세력이 서로 교전을 벌였을 경우도 해당된다. 종교나 종파 분쟁, 민족 분쟁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우크라이나는 전쟁 피해가 크고 러시아로선 자존심 손상이 상당하기 때문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가 조정이다. 분쟁 당사자들이 전쟁 종결 조건을 서로 합의할 수 있도록 제3자가 협상 자리에 함께 나와서 도와주는 형태다. 다자 협의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최종 합의는 어디까지나 분쟁 당사자들이 자주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이때 제3자는 한 나라일 수도 있고, 여러 나라일 수도 있다. 중립적인 국가나 국제기관이 맡는 게 순리다. 하지만 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거나 이해관계가 있는 나라일 수도 있다. 중립을 가장하면서 사실은 분쟁의 다른 당사자의 편을 은근히 들 수도 있다. 서방은 중국에 대해 겉으로는 중립인 척하면서 실제로는 러시아 편을 들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협상을 알선한다면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나서서 다자간 조정 형식의 협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분쟁 당사자는 물론 제3자도 전쟁 종결로 인한 상호 이익에 관심을 가질 수 있어 자칫 협상이 복잡해지면서 조정이 장기화할 수 있다. 반대로 이른 종결이 이익이 될 경우 제3자들이 교전 당사자를 압박해 협상 속도를 높일 수도 있다. 

넷째가 교전 당사자들이 동의해 제3자가 전쟁 종결 방안을 결정하도록 맡기는 중재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성사되기 어렵다. 결국 중국은 전쟁 종결을 위한 양자 협상 알선이나 함께 협상하는 중재자 역할을 원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럴 경우 미국과 독일·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이 나서서 조정 방식 변경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의 춘계 대공세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상황에서 중국 주도의 알선이나 조정 가능성도 안개에 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전과 민간인 폭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중국·미국·서유럽은 치킨게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의 한계이자 희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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