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구독경제 시대 ‘믿음의 멤버십’이 필요하다
  •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3 12:05
  • 호수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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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수 20만 명 프레시코드가 구독 서비스 중단한 이유
업종·지역별로 구독 멤버십 만들어 신뢰 확보해야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종이신문을 본다. 최근 10년 사이 신문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단어는 ‘위기’다. ‘경제 위기’ ‘수출 위기’ ‘금융 위기’ ‘인구 위기’ ‘물가 위기’ 등 말 그대로 위기가 일상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시점에서 각광받는 것이 구독경제다. 실제로 구독경제 기업들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도 성장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2분기 S&P500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0%였고, 유수의 기업들이 사라져 갔다. 그러나 같은 기간 구독경제 기업들의 매출액은 12%나 증가했다. 위기를 마주한 시점에 10개 중 8개 구독경제 회사는 성장하거나 가입자 기반을 유지했다.

ⓒ연합뉴스
월 이용료를 내면 특정 상품을 정해진 횟수만큼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한 편의점의 구독 서비스로 할인 구매 가능한 간편식들 ⓒ연합뉴스

전문가·AI 상담 등 식품 구독 모델 다양화

구독경제가 대세다 보니 식품 기업들도 앞다퉈 구독 모델을 도입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식품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소비자는 57.2%로 절반이 넘었다. 이용자 연령층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식품 구독 서비스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일정 금액을 내고 정기적으로 제품을 받는 초창기 구독 서비스부터 개인의 취향에 꼭 맞춰 제공하는 고도화된 맞춤형 서비스까지 다양해졌다. 전문가나 인공지능(AI)이 간단한 질의응답이나 과거 주문 이력 등을 바탕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추천해 주거나, 같이 먹으면 좋을 식품과 음료를 함께 구성해 배송해 주기도 한다.

영양 상담을 통해 건강기능식품을 소분해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도 있고, 커피와 차, 술을 정기적으로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도 있다. 커피, 차, 술 등 기호품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AI를 통해 개인의 취향을 분석해 상품을 선정한다. 반려견과 관련된 식품 구독 시장도 활성화되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구독 상품을 출시한 국개대표의 구독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구독경제는 제품과 서비스를 단순히 1회성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반복적이고 정기적으로 매출이 일어난다는 매우 큰 장점이 있다. 심지어 물건과 서비스 제공 전에 선불로 구독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구독자들이 락인돼 안정적으로 돈이 들어오기에 사실상 기업 입장에서는 최고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구독자들이 해지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구독자가 구독을 해지하지 않았는데도 사업을 접는 경우가 요즘 생기고 있다. 회원 수 20만 명에, 매일 1만 개 이상의 샐러드를 판매하던 샐러드 구독 서비스 스타트업인 프레시코드가 지난 5월 경영난으로 서비스를 사실상 중단했다. 2016년 사업을 시작한 프레시코드는 당시 살을 빼기 위한 ‘배고픈 샐러드’가 주를 이루던 시장에서, 든든한 한 끼 샐러드를 제공한다는 콘셉트와 샐러드·건강 간편식을 배송비 없이 픽업할 수 있는 거점 배송지 ‘프코스팟’으로 차별화에 성공했고, 높은 잠재력을 바탕으로 2021년 3월 60억원 규모의 시리즈A를 유치했다. 그렇게 잘나가던 회사가 왜 위기에 빠졌을까.

지금처럼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구독을 통해 안정적인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게 소비자에게는 이득이다. 그런데 구독기업 입장에서는 어떨까. 몇 년 사이에 채소 값이 2배 이상 올랐다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올해 4월 기준 양파 15kg 도매가는 2만2550원. 지난해 대비 3배 정도 올랐다. 구독료는 굉장히 비탄력적이어야 한다. 식품 구독료로 5000원을 받고 있는데, 6000~7000원으로 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순간 물가 폭등으로 1년 사이에 원가가 3배 올랐다고 하더라도 1만5000원으로 구독료를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구독료는 일회성 지불이 아니라 해지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내는 비용이다. 그렇다 보니 구독자는 구독료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2018년 발표된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구독자 중 약 55%만이 장기 약정가입을 고려한다. 특히 밀키트 카테고리의 경우 가입 초기 6개월 안에 60~70% 이상이 구독을 취소한다.

다양한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해 안정적으로 구독자 수를 유지하려면 많은 비용이 다시 투입돼야 한다. 구독료를 산정할 때부터 구독자가 지불한 금액보다 더 큰 가치를 제공해야만 소비자는 서비스를 해지하지 않는다. 구독은 일반적으로 일시불로 판매하던 제품을 정액으로 나눠 받기에 일정 기간 수익이 낮아지는 구조다. 운영 초기에는 구독자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이 유리하지만, 일정 수준의 구독자를 확보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한다면 기업에 재무적 리스크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특히 한계비용이 명확한 식품은 구독자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식품을 배달할수록 비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수익이 발생하지만, 수익화에 이르는 시간이 매우 길다. 투자만 바라보고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물가 상승기에는 구독회사가 크게 불리

멤버십 구독 서비스의 경우 구독자에게 할인 혜택을 주기 때문에 기업에 손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모객 효과뿐만 아니라 크로스셀링(다른 제품 추가 구매)과 업셀링 효과가 생긴다. 실제로 구독 멤버십 가입자가 비가입자에 비해 2~7배 제품을 많이 산다. ‘다양화’도 고려해야 한다. 과거의 농수산 및 식품 분야 구독 서비스는 일종의 꾸러미 사업이었다. 동일한 상품이 지속적으로 배송되는 형태라 다양함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유사 업종끼리 묶어 같이 서비스를 제공하면 다양한 제품을 구성할 수 있다. 유튜브 등을 통해 식품과 관련한 레시피 등을 소개하며 흥미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일본 도쿄에서는 최근 미용실 1200개 이상이 연합해 구독 멤버십을 만들었다. 같은 업종끼리 경쟁하기보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현재 다수의 식품 구독은 각각의 상품을 따로 구독하게 돼있다. 이를 묶어 종합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멤버십을 만들거나, 대도시에서 운영되는 서비스의 경우 지역 단위 연합의 이점을 살려 하이퍼로컬(Hyper-local·동네생활권) 구독 서비스를 만든다면 효과적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업종별로 규모의 경제가 생겨나고, 원재료를 살 때 바게닝 파워가 생긴다. 공동 배송을 통해 비용도 아낄 수 있다. 롯데슈퍼프레시와 롯데마트몰의 통합에도 역시 이런 이유가 있다. 특히 식품은 ‘유통’과 ‘냉장’이 필수이기 때문에 유통 거점망을 같이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유사 업종이 손을 잡는 것이 유리한 이유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책대여점과 PC방에 선금을 내고 각각 멤버십에 가입했다. 그런데 2개월 전에 책대여점이 폐업한다며 환불받을 계좌를 알려 달라는 연락이 왔다. 8개월 만에 PC방에 갔더니 PC방이 식당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선금으로 낸 비용은 사라진 것이다. 구독 서비스에서도 이 같은 일은 발생할 수 있다. 소비자가 구독하는 회사가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폐업하면 선금으로 낸 금액을 돌려받기 어렵기 때문에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새로운 구독 서비스 가입을 꺼리는 경우가 생긴다.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들은 업종별·지역별 구독 멤버십을 만들어 구독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식품 구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구성의 다양화뿐 아니라 업종별, 지역별 콜라보를 통한 구독 멤버십을 구축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통한 바게닝 파워 등으로 원가를 절감하면서도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구독경제 기업만이 위기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

대표적인 구독경제 전문가이자 경제 칼럼니스트로 《구독경제 : 소유의 종말》을 썼다. 고려대 법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고려대 회사법센터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대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혁신과 개발 등의 업무를 맡았다. 현재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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