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잔” 제안 후 2주…만나지 않는 김기현-이재명, 내막은?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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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 형식‧내용 두고 신경전…회동 목적 달라 조율에 난항
‘상대 탓’ 속 진실게임 양상…“양측 다 의지 없다” 지적도
일대일 회동 조율에 난항을 겪고 있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일대일 회동 조율에 난항을 겪고 있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얼굴 한번 봅시다. 밥이라도 먹고 소주 한  잔 하든지…”

지난 5월23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이 같이 제안한 지 2주가 넘어가고 있지만, 그 사이 ‘만남 논쟁’만 요란할 뿐 가능성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만남을 위해 실무협의가 꾸려진 후엔 오히려 진실 공방으로까지 치닫고 있어 6월 국회에 더욱 험로가 예상된다.

김 대표의 ‘소주 한 잔’ 제안은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자리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김 대표는 옆 자리에 나란히 앉은 이 대표에게 식사를 제안했고, 이 사실은 이틀 후인 25일 기자들 앞에서 공개했다.

김 대표는 “(내가 이런 제안을 했더니 이 대표가) ‘국민이 밥만 먹으면 안 좋아해요’라고 했다”며 이 대표가 완곡하게 거절했다는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김 대표 측은 지난 3월 당 대표 취임 후 줄곧 이 대표에게 식사 제안을 했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 측은 즉각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 입장을 내놓았다. 이 대표 측은 “그동안 단순 식사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 회동을 하자는 취지로 회신했지만, 여당에서 식사나 하자는 입장을 고수해 진전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비공개 식사 회담’이 아닌 정책 위주의 ‘공개 토론’을 진행하자고 역제안하며 판을 키웠다. 26일 이 대표는 최고위원회의 자리에서 이러한 제안을 한 번 더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날 이 대표의 역제안에 김 대표는 “아예 TV토론을 하자”고 즉각 화답했고, 이 대표 측에서다시 “미루지 말고 다음주(5월 마지막주)라도 하자”며 속도가 붙는 듯 보였다. 약간의 신경전 속에서도 양측이 만남 의지가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면서 정치권 안팎에서도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이들의 만남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양당 대표가 회동 자체에 합의하면서 구체적인 대화 형식과 의제 조율을 위해 양당 정책위의장 및 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구성된 실무협의체도 구성됐다. 하지만 회동의 디테일을 정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또 다시 양측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金은 ‘해결사 성과’ 李는 ‘정부‧여당 공개 저격’에 방점

양측은 공개 토론 시 주제에 제한을 두지 말고 자유롭게 진행하자는 데까지 합의를 이뤘다. 하지만 관건은 역시나 이 논쟁의 시작점이기도 했던 ‘비공개 회담’이었다. 여당은 TV토론을 하더라도 비공개 회담은 반드시 해야 한다며 버텼고 야당은 비공개는 의미가 없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이러한 논쟁의 이유로는 애초에 두 대표가 생각하는 만남의 ‘목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치 전문가 및 양당 안팎의 취재를 종합한 결과, 김 대표는 이번 비공개 만남을 통해 꽉 막힌 정국을 풀어내고 ‘협상가’ ‘해결사’로서의 리더십과 공을 쌓으려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이 대표는 국민 앞에서 정부‧여당의 실정을 조목조목 따져 민심을 끌어오겠다는 전략에 좀 더 방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김 대표는 본인이 존재감을 발휘해 꼬인 정국을 풀어내보고 싶은 건데, 이 대표는 협상의 상대를 당초 윤석열 대통령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김 대표와 비공개로 조율할 수 있는 의제가 없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평행선이 이어지면서 서로의 만남 의지에 대한 ‘의심’으로 번졌다. 논의 과정을 잘 아는 국민의힘 측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금같이 국회가 경색된 상황에서 딱딱한 공개 토론 자리도 자리지만, 비공개로 허심탄회하게 만나 부드럽게 풀어가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나”라며 “민주당은 싸울 의지만 있지 협치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비공개 자리를 고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지도부 관계자는 “일단 TV 토론을 마치고 추가적으로 필요한 논의가 있다면 이후에 자연스럽게 진행하면 될 일이지, 이게 토론을 미루며 고집할 일인가”라며 “결국 김 대표 쪽에서 토론에 부담을 느끼거나 만남에 대한 의지가 약한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이 또 다시 말을 바꿔 비공개 회담만 원하고 있다’고 밝혀 진실게임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난 5일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기자들을 만나 “여당 측에 공개 TV 토론 일정·주제·형식을 제안했는데 답변이 없고, 다시 비공개 회담만 하자고 제안해왔다”며 “말 바꾸기이자 동문서답”이라고 밝혔다. 이에 다시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며 신경전은 한층 격화했다.

양당 실무협의체는 ‘여전히 만남 의지가 강하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회동 성사를 위한 논의를 계속 이어간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만남 가능성이 요원해졌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이쯤되면 어느 한쪽에서 대승적으로 양보해야 다시금 회동 논의에 물꼬가 트일 텐데, 양측 모두 그럴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양측 모두 득보다 실 클 거란 우려

양당 내에선 대표 간 회동에 따른 계산기를 두드려봤을 때 별다른 실익이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제기된다. 당초 이러한 목소리는 국민의힘 측에서 더욱 강하게 나왔다. 이 대표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노조 탄압 등에 대해 따져 물으면 김 대표로선 수세적인 입장만 취하게 될 거란 관측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주말 전후 민주당에 이래경 혁신위원장 사태가 발생하면서 이 대표 입장에서도 공개 토론에 대한 부담감이 가중됐다는 시각이 더해졌다. 김 대표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입장 등 민감한 질문을 던져 이 대표가 자칫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당내서 나오고 있다.

다만 이 대표는 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대표를 향해 “자꾸 비공식적으로 만남을 요청하며 (만남을) 미루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며 “국민의힘 회의실에 가도 좋다. 국민들 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대화하자”며 재차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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