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 범죄의 토양 비옥해진 한국 사회
  •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2 10:05
  • 호수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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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 정유정’한테 사이코패스 등 개인적 원인 찾는 건 별 의미 없어
‘사회적 아노미’ 현상으로 접근을…악행에 상응하는 엄한 처벌 필요

주변이 무서워졌다. 서울 강남 한복판 아파트단지에서 느닷없이 입주민이 납치돼 청부 킬러에 의해 암매장되는가 하면, 부산에서는 ‘과외 앱’을 통해 찾아온 범인의 칼부림으로 과외교사의 시신이 훼손돼 내버려진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현재 전국에 걸쳐 발생하는 잔혹한 범죄는 시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일부 호사가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언급한다. 공감력 부족, 교활성, 자기 중심성 등 독특한 가해자 성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론 또한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인가 여부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아마 자극적 뉘앙스를 담고 있고 흥미 유발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재판에 영향을 주는 양형인자도 아니고, 수사기관이 꼭 밝혀야 할 사항도 아니다. 물론 일정한 편리성은 있다. 사회문제로서의 흉악범죄 원인을 살피는 수고를 덜 수 있다. 흉악행위는 일부 극단적 소수의 예외적 특이 행동이고, 따라서 사회 전체는 별문제 없다는 귀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병리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봉쇄되므로, 이러한 접근은 적절치 못하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사이코패스 기질이 강하다는 연구가 다수 있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잔혹범죄 원인은 한국 사회 전체의 범죄 토양이 비옥해졌다는 데 있다. 즉, 우리 사회는 현재 무규범을 뜻하는 아노미에 빠져 있고, 이러한 상태가 숙주가 돼 인명경시의 잔혹행위가 발생 중이다. 과거 한국 사회는 현재보다 훨씬 경제 상황도 불안했고 무척 가난했다. 하지만 그래도 허리띠를 졸라매며 절약하고 저축하면 내일의 희망이 손에 잡힐 것 같았다. 따라서 저마다 내일을 위해 무언가 오늘을 인내해 보자는 공통의식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단단한 규범이 사라지고 없다. 오히려 규범의 혼돈과 이로 인해 파생된 ‘못마땅함’ ‘화’ ‘적대감’ 등이 만연해 있다. 위층 이웃의 작은 소리가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바로 찾아가 흉기로 공격한다. 운전 중에도 마찬가지다. 바로 차를 멈추고 달려들어 끔찍한 응징도 한다. 굳이 사이코패스나 정신병력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 평범한 우리의 흔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대한민국은 ‘분노사회’로 변해 잔혹범죄의 영양분이 되었다.

ⓒ연합뉴스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23)이 6월2일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우발적 범행이라고 진술했던 정유정은 5월31일 경찰 조사 과정에서 “살인해 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부산경찰청은 전날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피의자 이름과 나이, 얼굴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강남 납치 청부살인 사건은 돈·원한에서 비롯

범죄 원인론으로 설명하면 자기 주변에 유쾌한 일은 별로 없고 좌절과 불쾌한 일만 많기에 세상에 대한 공격행위가 쉽게 표출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좋은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을 때 심한 욕구 좌절이 생기고, 공격성이 싹트게 된다. 혹여 통치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표창장 위조’ ‘아빠 찬스’ ‘코인 대박’ ‘시행령 꼼수’ 같은 이야기라도 접하게 되면 마음은 더 사나워지게 된다. 이러한 불쾌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대응 메커니즘이 통계적으로 본다면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부터 잔혹범죄로 내몬다.

약간의 돈만 보장되면 행위의 수단과 방법이 아무리 잔인해도 상관없게 된다. 강남 한복판 납치 청부살인 사건은 이러한 맥락에서 의뢰자의 금전 관계로 인한 지독한 원한과 실행자의 한탕주의가 함께 빚어낸 끔찍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범죄 토양이 비옥하게 된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쪼개진 가족 또는 ‘나홀로족(族)’ 증가와 맞물린 은둔형 외톨이의 등장이다. 정부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타인과의 유의미한 교류 없이 고립된 상태로 지내는 19~34세 청년 외톨이만 해도 약 54만 명에 육박한다. 사회적 연결고리가 약해져 자칫하다간 사회의 시한폭탄이 될 여지가 크다는 위험신호인 것이다. 가정 내에서 애착의 대상도 없고, 직업도 없고, 현재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다면, 이 공백을 잔혹범죄가 채우게 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이들에 의한 범죄의 심각성이 벌써부터 실증되었다. 일본에서는 장기적으로 은둔하는 청년들에 의해 잔인한 ‘묻지마 살인’이 계속 생기고 있고, 심지어 최근에는 전 총리를 암살까지 했다. 서구사회에서도 역시 사회적 이방으로서의 외톨이 집단이 극단적 폭력의 테러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무고한 시민을 표적으로 트럭 돌진을 자행하거나 무차별 총기난사를 벌인다. 모두 소위 ‘외로운 늑대(lone wolf)’에 의한 소행이다. ‘과외 앱’을 활용해 ‘살인 충동’ 운운하며 살인 행각을 벌인 23세 정유정 또한 이들과 유사하다. 특정 이데올로기 대신 범죄물에 심취했고, 총기 대신 흉기를 사용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려 조용히 준비하며, 자신의 휴대전화 속에는 단 한 명의 친구 이름도 없었던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해왔던 점은 같다.

 

1997년 이후 흉악범에 대한 사형 집행 중단

한편 잔혹범죄의 원인에는 형사사법기관의 책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흉기난동 상황에서 경찰은 범인을 제압하기는커녕 피해자를 내버려두고 현장을 이탈했다. 검찰이 경찰의 영장 신청을 반려한 사이 피해자가 칼에 찔려 살해당한 일도 최근 있었다. 약해빠진 공권력과 가해자에 대한 인권 과잉적 형사정책이 잔혹범죄를 그냥 방치한 것이다. 법원 역시 흉악범죄에 엄중하지 못하다.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세 모녀를 하룻밤 사이 차례로 살해하는 등 끔찍한 행위는 유족의 절규에도 사형이 선고되지 않는다. 이미 선고된 흉악범에 대한 사형은 1997년 이후 집행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교도소 내에서 교도관이 수용자에게 맞아 사망할 정도로 교정 규율은 미약해진 상태다. 악행에 상응하는 불이익이 따르지 않는 사회에서 잔혹범죄는 반복 발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흉악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 대응 방식이다. 사건이 발생하면 그때만 반짝 관심을 갖다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곧 잊어버린다. 정부 책임자는 실무자에게 호통만 치고 끝내거나, 고작해야 과거 대책을 재탕할 뿐이다. 범죄 원인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사건 이면의 사회구조적 문제를 심층적으로 살펴본 적이 없다. 경찰-검찰-법원-교도소로 이어지는 시스템적 차원의 효과적 작동 문제를 분석한 적 또한 없었다. 잔혹범죄에 대한 대책이 국가 정책의 중요 어젠다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대통령 산하 범정부기구를 통해 범죄 이면에 숨어있는 사회문제를 실증적으로 파악하고 체계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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