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슈퍼 사이클에 가려진 K배터리의 민낯
  • 유호승 시사저널e. 기자 (yhs@sisajournal-e.com)
  • 승인 2023.06.11 08:05
  • 호수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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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4월 배터리 수입 증가로 4억8000만 달러 적자
해외에서 생산된 국내 기업 배터리 ‘역수입’ 현상 지속

전기자동차 슈퍼 사이클에 힘입어 국내 배터리 관련 기업이 연일 실적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배터리가 반도체를 이을 제2의 국가 먹거리로 자리 잡는 추세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다르다. 배터리 강국임에도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국내 투자 및 일자리 감소 등의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통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배터리 업계가 공격적으로 실시한 해외 투자가 오히려 악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4월 ‘리튬이온축전지’로 분류되는 전기차 배터리 수출액과 수입액은 각각 25억 달러, 29억8000만 달러로 무역수지는 4억8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배터리 무역수지 흑자는 2012년 16억 달러에서 2019년 34억3000만 달러까지 늘어나면서 정점을 찍었다. 지난해에도 16억500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20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차전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4월20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차전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터리 무역수지 적자는 2012년 이후 처음

올해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배터리 무역수지가 처음으로 적자를 낸 것이다. 리튬이온축전지 품목의 무역수지 적자는 관련 품목의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2년 이후 처음이다. 시장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기업이 IRA 등 국제 공급망 질서의 변화에 대응해 해외 생산 비중을 크게 늘리면서, 무역수지가 적자를 낸 것으로 본다.

실제로 IRA의 첨단부품 생산세액공제(AMPC)를 살펴보면, 배터리 업체는 미국 영토에서 이차전지 셀을 조립해야 현지 정부가 제공하는 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아울러 미국 혹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 광물의 40% 이상을 활용해 배터리를 제작해야 전기차 구매 보조금도 받을 수 있다. 이 비중은 2027년 80% 이상, 2029년까지 100%로 상향될 예정이다. 세액공제와 보조금 등은 배터리 기업이 최근 미국 등 해외 거점에 생산라인을 늘리는 핵심 이유다. 한승재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내 배터리 대표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이 올해 IRA AMPC를 통해 얻을 수혜금은 7000억원 수준”이라면서 “현재 증설 중인 거점 등이 추가된다면 2026년에는 6조2000억원으로 9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등 해외 거점에 배터리 생산라인이 늘어나는 만큼 ‘한국산 배터리’ 생산량이 줄어든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기업의 투자 규모와 생산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해외 공장의 생산량이 증가한다면, 국내 거점에서 생산하는 물량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한국산 배터리’ 생산량이 줄어들어 수출량도 쪼그라드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미국 등 해외 공장에서 생산된 국내 기업의 ‘K배터리’ 국내 수입량은 늘어나게 된다. ‘역수입’이 나타나는 셈이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 역수입된 물량도 적지 않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난징에서 생산하는 배터리를 테슬라 등 완성차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SK온도 현재 중국 창저우·후이저우·옌청에 배터리 공장을 운영 중이다. 국내에 들어오는 중국산 배터리의 상당 부분은 국내 기업의 제품이다.

국내 기업과 함께 중국 배터리 회사 제품의 수입량도 증가하고 있다. 배터리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중국 CATL과 2위인 BYD의 제품을 적용한 국내 전기차가 늘어나는 추세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기아 EV6를 시작으로 CATL 배터리 탑재 차종을 코나·니로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KG모빌리티는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전기차 ‘토레스 EVX’에 BYD의 배터리를 탑재한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산업이 성장 추세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수입이 계속된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며 “배터리가 국가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은 만큼 정부 차원에서 국내 생산량 확대 등의 전략을 새로 짜야 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2022년 7월19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 내 ‘지속가능 갤러리’에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으로부터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해외 거점 공들이면서 국내 투자는 외면

해외 거점에만 공을 들이면서 투자가 집중된다면 향후 일자리 감소라는 큰 이슈에 직면할 가능성도 크다. 국내 기업들은 미국 현지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합작 공장 건설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배터리 3사는 현재까지 미국에만 7000여 개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파악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주 배터리셀 공장과 최근 가동을 시작한 GM 합작 얼티엄셀즈 1공장에서 근무할 인력 2500명을 고용했다. SK온의 조지아주 공장 인력은 3000명이다. 삼성SDI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 ‘스텔란티스’와 설립한 합작법인에 1400여 명 이상을 고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 인원은 향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배터리 3사가 진행 중인 투자가 아직 초기이기 때문이다. 계획된 생산라인 신·증설에 따라 채용 규모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반면 국내 공장을 향한 투자는 서서히 감소하면서 인력 고용 규모는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생산 거점이 많아지면서 기업마다 현지 인력 채용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이라며 “국내에서 인력 채용은 계속되고 있지만, 해외에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인재가 최우선 선발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잇단 우려에 정부는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및 무역협회 등과 함께 투자 및 일자리 감소 문제를 해결할 대책 마련을 강구 중이다. 정부는 현재의 배터리 무역수지 적자가 단기간에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배터리 수출·수입의 구조적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점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가 특정 기업의 판단에서 나온 것이 아닌 만큼,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 또한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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