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와 술…음주도 문제지만, 성적 부진이 더 큰 ‘괘씸죄’였다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0 13:05
  • 호수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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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WBC 대표 선수 3명, 음주 파문으로 징계
‘3연속 1R 탈락’ 처참한 성적에 국민 실망감 더해

지난 3월 열린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 대회의 한국 대표팀 성적은 처참했다. 총력전을 펼친 호주전을 아깝게 내줬고,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숙명의 일본전은 대패했다. 그나마 체코전, 중국전에서는 승리했으나 사실상 WBC 3연속 1라운드 탈락이 결정된 후였다. 

2년 전 도쿄올림픽 노메달에 이어 굴욕적인 WBC 조기 탈락으로 인해 야구 커뮤니티 등에서는 거센 성토가 이어졌다. 그중에는 “선수들이 대회 중 술을 마셨다”거나 “개인 쇼핑을 했다” 등 확인되지 않은 설도 있었다. 그리고 대표팀 선수들의 음주는 지난 5월말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뒤늦게 사실로 드러났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국은 자체 조사를 통해 대표팀 선수들에게 경위서를 받았고, 김광현(SSG 랜더스)을 비롯해 이용찬(NC 다이노스), 정철원(두산 베어스)은 대회 기간 음주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이동일(7일)과 휴식일 전날(10일) 스낵바에서 음식과 함께 가볍게 술을 마셨다고 했다. 처음 의혹이 제기된 ‘룸살롱’ 출입이나 ‘여성 접대부’ 등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김광현 등은 “생각이 짧았다”면서 고개 숙여 사과했고 소속팀인 SSG 1군 명단에서 제외됐다. 뒤이어 김현수(LG 트윈스) 또한 WBC 대표팀 주장이자 선수협회 회장으로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문을 올렸다. 

KBO는 선수들이 이용했다는 스낵바 등을 자체 조사했고, 6월7일 조사 결과와 함께 징계 내용을 발표했다. 두 차례 유흥주점을 방문해 국가대표 품위를 손상한 김광현에게는 사회봉사 80시간 및 제재금 500만원, 한 차례 유흥주점을 출입한 이용찬·정철원에게는 각각 사회봉사 40시간, 제재금 300만원 징계가 내려졌다. 허구연 KBO 총재는 이보다 강한 징계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기간에 음주해 논란을 빚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6월7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상벌위원회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광현(SSG 랜더스), 이용찬(NC 다이노스), 정철원(두산 베어스) ⓒ연합뉴스

2000년 올림픽 때 음주·도박, 사상 첫 동메달에 묻혀 

국가대표 야구선수가 음주로 물의를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호주에 역전패를 당한 대표팀 주축 선수들이 선수촌 밖에서 팀 회식을 한 후 취한 상태로 심야에 근처 카지노에서 도박하는 것이 목격됐다. 한 수 아래로 평가했던 호주에 패한 데 따른 실망감이 더해져 여론은 더욱 악화했고, 대표팀 선수의 리그 제명 얘기까지 나왔다. 이후 대표팀이 심기일전하며 올림픽 참가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따내 징계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당시 3·4위 결정전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선발로 내세운 숙적 일본을 3대1로 극적으로 꺾으며 음주·도박 사건이 묻힌 감도 없지 않았다. 만약 일본전에서 패했다면 어찌 됐을까. 

축구 국가대표 또한 음주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14 브라질월드컵 때 홍명보 감독이 이끈 국가대표팀은 1무2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현지에서 월드컵 뒤풀이를 하는 와중에 폭탄주를 돌려 마시고 현지 여성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 퍼지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당시 대표팀이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 최악의 성적을 냈던 터라 시선은 더욱 곱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은 부진한 성적과 맞물려 지휘봉을 내려놨다. 

2007년 7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안컵축구대회 때는 주장 이운재를 비롯해 이동국, 김상식, 우성용 등 일부 선수가 바레인전 패배 후 숙소를 무단 이탈해 룸살롱에서 여성 접대부와 함께 술을 마신 것이 알려졌다. 이 또한 대회가 끝나고 3개월여 지난 시점에 보도됐다. 차범근 당시 수원 삼성 감독은 “K리그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왜 이운재와 관련된 축구대표팀 음주 파문이 폭로됐는지 의도가 의심스럽다”며 불편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운재 등은 울면서 사과 기자회견을 했고, 국가대표 자격 정지 1년 및 축구협회 주관 대회 2~3년 출장 정지 등의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K리그 출전에는 아무런 제재가 없어 솜방망이 징계라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이에 축구협회 상벌위원회 측은 “대표팀에서 일어난 행위로 인해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프로팀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WBC 대표팀의 음주 사실이 보도되고 대표팀 선수들의 사과가 이어지자 미국 현지 야구 전문가와 팬들 사이에서는 의아해하는 반응이 많았다. SNS 등에는 “그들이 메이저리그 경기가 끝난 후 라커룸을 안 봤구나”(MLB에서는 경기 중에도 맥주를 마신다는 얘기가 있다)라거나 “술 마셨다고 사과한다고? 맙소사(OMG)”라는 반응이 나왔다. 일부 일본 매체 또한 사과와 징계가 과하다고 했다. 일본 대표팀의 경우 WBC 대회 직전 오사카에서 반주를 곁들인 단체회식을 하는 모습이 SNS에 공유되기도 했던 터다. 

 

김광현, 징계 수위보다 불명예가 더 뼈아플 듯

WBC는 올림픽과 달리 프로선수가 출전하고, 경비 또한 MLB 사무국이나 한국야구위원회(KBO) 등이 지불한다. 그래도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대표한다는 대명제는 변하지 않는다. 대회 기간 동안 음주는 자제해야 했고, 그것이 그들만큼 좌절했을 팬들에 대한 도리였다. 김광현의 말처럼 너무 “생각이 짧은” 행동이었다. 프로 15년 동안 7차례 국가의 부름을 받고 17경기 동안 59⅔이닝(평균자책점 3.92)을 던진 그의 과거 맹활약에도 큰 생채기가 났다. 김광현에게는 징계 수위보다 불명예가 더 뼈아플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광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날 미치게 하는 남자》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보스턴이 최대 앙숙인 뉴욕 양키스에 3전 전패를 당하고 시리즈 탈락까지 1패만 남은 가운데 제이슨 배리텍, 자니 데이먼 등 보스턴 주전 선수들이 바에서 웃으면서 반주를 곁들인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주인공 벤의 친구는 분개한다. 

“우리는 레드삭스 때문에 속병이 나는데 선수들은 태평하게 밥을 먹네.” 이때 야구 때문에 여자친구와 헤어질 위기에 처한 벤은 이렇게 말하며 자각한다. “저 사람들에게 야구는 직업이야. 그들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 뛰었고 이제는 지난 일이야.” 참고로 보스턴은 당시 거짓말처럼 4연승을 거두며 양키스를 꺾었고,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다.

일탈에 대해서는 강한 채찍질이 필요하겠다. 하지만 선수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자. 그들 또한 불완전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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