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통째로 삼키려는 중국, IMF보다 더 위험할 수도”
  • 정덕주 남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0 12:05
  • 호수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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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달러’ 위해 위안화 결제 시작한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들의 딜레마

중남미와 중국은 지난 20년 동안 급격한 상호 성장을 해왔다. 특히나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빠르게 중남미의 주요 교역국으로 자리 잡았고, 원자재를 수입하고 공산품을 수출하면서 미국과 더불어 중남미 주요 파트너로 급부상했다. 중국의 부상은 무역·투자 및 외교에 집중되고 있는데, 현재 브라질·칠레·페루·우루과이·아르헨티나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며, 칠레·코스타리카·에콰도르·페루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다. 브라질-중국 비즈니스 협의회에 따르면 2021년 중국 기업들은 중남미에서 59억 달러 상당의 프로젝트들을 진행했으며, 작년엔 100억 달러를 현지에 투자했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때 자국의 코로나19 확산 억제에 주력하느라 다른 나라에 백신을 기부하지 못한 미국과 달리 중국은 대만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은 중남미 국가에 보건의료 지원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일명 ‘마스크 외교’라는 명목 아래 약 3000만 개의 마스크, 코로나19 진단키트와 의료용 장갑, 그리고 1000여 대의 인공호흡기를 무상 기증했다.

또한 타사의 반값이면서 냉동 보관 시스템이 열악한 중남미에서 상온 보관, 유통이 가능했던 중국산 백신은 현지에선 ‘백신 외교’라는 타이틀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환대를 받았다. 이 같은 중국의 의료용품 지원에 중남미 국가들은 감사의 뜻을 표하며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하기 시작했고, 결국 볼리비아와 니카라과, 온두라스가 대만과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TASS 연합

對中 무역, 비대칭 구조라는 위기감 커져 

리튬·구리·석유 등 광물뿐만 아니라 세계 4대 곡창지대인 ‘팜파스’를 보유한 중남미에서 중국은 원자재와 식량을 공격적으로 수입하고, 또한 자국에서 생산된 공산품 수출 시장으로 개척해 나가고 있다. 게다가 개발도상국이 대부분인 중남미에 필요한 차관을 제공하며 막대한 금융수익도 얻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경제성장이 주춤할 무렵부터 양허성 차관을 제공하며 중남미 진출을 시작했다. 그 후 현지에 합작회사를 설립해 자본투자를 실행하며 수익을 얻었으며, 구리·리튬 등 중요 광물 채굴권에도 투자를 진행했다. 또 현지 정부의 만성적인 재정 적자로 인프라 개발이 어려운 점을 이용해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런 중국의 투자방식에 현지 정치·경제 전문가들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공 인프라에 대한 중국의 장기적인 투자를 두고 중남미 국가 정부에 위험성 여부는 검증되었는지 묻고 있기도 한다.

변호사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구스틴 바르레티는 《용의 굶주림》이라는 신간 저서를 통해 세계의 천연자원을 먹어치우는 중국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중남미를 통째로 삼키려는 중국의 계획이 국제통화기금(IMF)보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그는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미국 영공을 침범한 스파이 풍선을 통한 중국의 정찰, 줌(Zoom)과 틱톡, 화웨이 등과 같은 거대 IT 기업들의 SNS를 통한 세계로의 확장,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중국의 불법 조업, 전 세계 항구 인수 등을 언급하며 아시아 거인의 세계 정복에 대해 심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또한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은 중국과의 관계가 상호 윈윈 관계만은 아님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중남미의 대(對)중국 수출은 원자재에 집중돼 있는데 중국의 대(對)중남미 수출은 부가가치와 기술을 갖춘 제조업에 집중되는 무역 비대칭 구조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국가는 무역적자를 이어가고 있으며, 산업·생산 개발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지  않는다면 결국 중국의 진출로 인해 중남미 내수시장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식은 틈을 이용해 중국은 긴밀한 관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우루과이와는 정치·경제 협력에 합의했으며, 만성적인 경제위기에 외환 부족을 겪는 아르헨티나와는 무역에서 위안화 결제를 시작했다. 볼리비아와는 10억 달러 규모의 리튬 개발 계약을 성사시켰으며, 쿠바와는 사이버 보안 협정 체결을 마쳤고, 브라질과는 룰라 대통령의 4월 중국 방문을 통해 경제 협정 외에 우주 협력도 체결했다. 중남미 최대 인구 대국인 브라질의 경우, 2009년부터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최대 무역 파트너로 급부상했다. 2010년 이후 중국은 남미 전체 투자액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700억 달러를 과감히 브라질에 투자하고 있다. 이에 브라질은 올 2월부터 위안화 결제 시스템을 체결하면서 중남미의 ‘탈(脫)달러’화에 포문을 열어주었다. 위안화의 세계화를 외치며 기축통화인 달러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중국의 편에 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중남미의 ‘탈달러’ 대안이 반드시 위안화로만 향하는 것은 아니라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그동안 중남미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둔화를 심하게 겪은 데다 만성적인 재정 적자를 막기 위한 정부의 통화 팽창 정책은 살인적인 인플레를 유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자본 유출이 증가하면서 외환보유액 감소로 직결돼 정부의 외채 부담은 더욱더 커지는 상황이다. 현지에서는 미국이 달러 패권을 이용해 부를 거둬들여 자국 경제를 저해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런 인식이 중남미 국가들로 하여금 ‘탈달러’화에 기꺼이 동참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4월14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왼쪽 위)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위안과 브라질 헤알을 활용한 무역 강화를 내용으로 한 서명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AP 연합

‘탈달러’ 대안으로 남미 공동 화폐 논의도

이러한 중남미 국가들의 ‘탈달러’와 중국으로의 쏠림 현상에 대해 미국은 “중국의 금융 지원으로 인한 ‘부채의 덫’에 걸리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중남미 인프라 시장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는 중국의 5G에 대해선 중국 기술을 사들이는 것이 향후 보안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은 외환 부족으로 인한 달러의 대체 수단으로 위안화 결제와 더불어 ‘공동 통화’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올 1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양국 정상회담에서 브라질 화폐 헤알로 수출입 결제를 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수르(Sur)’라는 공동 통화에 대해 논의했다. 중남미가 풍부한 천연자원을 활용해 산업국가가 되고자 한다면 대(對)중국 원자재 수출 의존도를 낮춰 나가야 하며, 산업 인프라 투자를 늘려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두고 고부가가치 수출에 주력해야만 앞으로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을 점차 최소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경제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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