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트라우마 겪던 고립 청년의 반전 “이제 ‘사람 농사’ 짓습니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2 11:05
  • 호수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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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농촌 체험 공간 ‘스테이지 파머스룸’ 이끄는 이동우 대표

“농사요? 사람 만나기가 싫어서 시작했어요, 하하하.”

농촌 체험 공간 스테이지 파머스룸의 이동우 대표(29)에게는 독특한 습관이 있다. 내면의 깊은 상처를 꺼내놓을 때 크게 웃어버리는 것이다. 

경상북도 상주에서 나고 자란 이 대표는 학창 시절 내내 폭력과 따돌림에 시달렸다. 가해자에게 맞아 시신경이 손상되기도 했다.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에 몸과 마음의 상처까지 겹쳐 대인관계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그렇게 이 대표는 타인과의 유의미한 교류가 없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데도 없는 ‘고립 상태’(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의)로 치달았다.

경북 상주의 농촌 체험 공간 ‘스테이지 파머스룸’에서 이동우 대표가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사람 피해서 7년 전 농사 시작 

이 대표는 타지에서 전문대를 졸업하자마자 도망치듯 고향 농촌으로 향했다. 농사를 지으면 평생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과 접촉할 여지를 차단해야 그나마 덜 힘들 거라 믿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애초의 계획과는 다소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한동안 조용히 농사만 짓다가 2019년 체험 농장 스테이지 파머스룸을 열었다. 방문객이 아주 많다고.

“나 같은 청년 농부 4명과 함께 2019년 말 오픈했는데, 15일 만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체험 프로그램을 접고 동업자 2명이 나가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21년 1월1일 재개했다. 코로나19 위세가 여전했음에도 그해 3500명이 다녀갔다. 상주 지역 체험 농장 가운데 방문객 수 1위, 매출로는 2위를 기록했다. 이후로도 방문객 수와 매출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어떤 체험을 하는 농장인가. 

“일반인들이 와서 농작물을 심거나 수확하는 체험, 빵과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체험, 동물들과 교감하는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평일에는 학교와 기관 등 단체 방문객이, 주말엔 가족 단위 방문객이 스테이지 파머스룸을 찾는다. 방문객 중 상주 시민이 5%고 나머지 95%는 다른 지역민들이다. 종종 외국인들도 방문한다. 어느덧 주업이라 할 수 있는 블루베리 농사보다 체험 농장 운영에 더 매진하게 됐다.” 

쉴 새 없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체험 농장을 운영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학폭 트라우마를 겪다가 사람을 피해 농촌에 들어간 것으로 아는데. 

“우선 농부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작은 선택을 통해 인생에서 처음 목표란 걸 갖게 됐다.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여러 계기를 거치며 결국 사람을 통해 좋은 방향으로 변해 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어떤 계기들이었나. 

“정부 지원으로 많은 교육을 수강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 전문가를 만나 도움을 받았다. 혼자 농사를 지으며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가 ‘농부시장 마르쉐’(도시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연 장터) 같은 민간 플랫폼에서 만난 선배 농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방향성을 찾은 적도 있다.” 

성격이 많이 바뀌었겠다. 

“아니다. 여전히 어딘가에 날 드러내기를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사람들과의 간단한 인사와 대화는 물론 전화통화마저 너무나 어렵다. 미리 컴퓨터에 대본을 적어두고 통화할 정도다.” 

학창 시절에 당한 폭력과 따돌림이 이런 성격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안다.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계속 학폭을 당했다. 한번은 왼쪽 눈을 맞고 시신경이 손상돼 대구까지 가서 수술을 받았다. 그 후로 시력 장애를 갖고 살게 됐다.” 

어쩌다 학폭이 일어났나. 

“원체 내성적이라 일방적으로 당했다. 복수를 다짐하긴커녕 거부 의사를 밝히기조차 어려웠다(웃음). 학창 시절 내내 학폭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주변의 적절한 조치 없이) 막다른 상황에 내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상처겠다. 

“트라우마가 극심했는데, 정신없이 살다 보니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일부러 ‘빡세게’ 일하면서 그렇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웃긴 건 가해자들도 내 근황을 전해 듣고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해온다는 점이다. 대뜸 어떻게 하면 농사를 지을 수 있냐고 물어보는 식이다(웃음).” 

보통 사람이라면 도무지 참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통을 일로 승화하는 동력이 있다면. 

“2017년에 한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에 시달리다 아파트 8층에서 투신했다는 언론보도를 접했다. 그 학생은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건졌으나, 시신경 손상 등으로 평생 후유증을 앓게 됐다. 당시 나는 눈앞의 현실에 급급해 해당 뉴스에 무덤덤했다. 그냥 지나가려던 찰나 초등학생이 쓴 유서 내용을 알고 마음에 큰 파장이 일었다.”

ⓒ시사저널 오종탁
이동우 스테이지 파머스룸 대표가 방문객들이 오기 전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시사저널 오종탁
이동우 스테이지 파머스룸 대표가 방문객들이 오기 전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시사저널 오종탁
이동우 대표가 스테이지 파머스룸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체험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이동우 대표가 스테이지 파머스룸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체험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이동우 대표가 스테이지 파머스룸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체험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학업 중단 위기에 놓인 학생들 돕기로” 

 

어떤 내용이었나. 

“유서 중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자신 이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입으로만 선한 악마’라는 문장이 있었다. 자신을 투신에 이르게 한 데 어른들의 책임도 컸음을 알리는 대목이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르며 어쩌다 어른이 돼버린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말하기조차 미안하지만, 그래도 다른 어른들보다는 좀 나을 수 있는 내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동기를 얻었다.” 

지난 3월 경북 상주교육지원청과 학생들이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심리상담사, 법률 전문가, 경찰관 등과 함께 학업 포기 위기에 처한 학생들을 발견하고 돕기 위한 움직임이다. (초등학생의 유서를 접한) 2017년부터 지금까지 6년을 소망하고 고민한 끝에 찾아온 기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 친구들의 힘겨운 삶에 미미하게나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면 좋겠다.” 

5년 후를 바라보는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사실 아이든 어른이든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회적 관계망이 약화된 요즘은 더 그렇다. 심리적인 상처, 진로 문제 등 저마다의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스테이지 파머스룸에 와서 작은 쉼표를 찍고 가면 좋겠다. 당연히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여러 전문가와 이 꿈을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는 사람을 모으는 농사를 지을 수 있겠다는, 또 하나의 희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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