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시진핑 관계 ‘루비콘강’ 건넜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2 17: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실 “中대사 가교역할 부적절시 양국 국익해쳐”
한‧중 정상회담 가능성 요원…‘제2의 한한령’ 우려도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한‧중 관계가 극악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한‧중 관계 악화의 책임이 윤석열 정부에 있다’는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을 두고 한‧중 정부가 충돌하면서다. 중국 정부가 싱 대사의 발언을 두둔한 가운데 용산 대통령실은 ‘내정 개입’이라는 강도 높은 입장을 내놨다. 한‧중 양국이 서로 ‘대사 초치’를 비롯한 맞불 대응에 나서면서 하반기 한‧중 정상회담 가능성도 요원해진 모습이다.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우리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을 작심한 듯 쏟아냈다. 특히 싱 대사는 한‧중관계 악화의 책임이 중국에 있지 않다면서 한국 정부의 탈(脫) 중국화 시도를 지적했다. 이어 싱 대사는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며 한‧미‧일 삼각공조에 공을 들이고 있는 윤석열 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싱 대사의 발언이 알려진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도 12일 싱 대사를 겨냥, “가교 역할이 적절하지 않다면 본국과 주재국의 국가적 이익을 해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특정 국가의 대사에 비판적인 논평을 내놓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대사라는 자리는 본국과 주재국을 잇는 가교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외교부에서 우리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고, 중국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도 입장을 냈기 때문에 대통령실에서 특별히 추가할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비엔나 협약 41조에서 외교관은 주재국의 법령을 존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또 같은 조항에서 외교관은 주재국 내정에 개입해선 안 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싱 대사가 이 협약을 사실상 위반했다고 비판한 셈이다.

대통령실에 이어 정부와 여당도 싱 대사를 겨냥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장급이라는 일개 대사가 주재국을 향해 보복하겠다는 것으로,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라고 직격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오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싱 대사를 추방해야 한다’는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의 주장에 “주한 중국대사의 행동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중 관계가 극악으로 치닫으면서, 일각에선 중국 정부가 ‘제2의 한한령’을 실시할 수 있단 우려섞인 전망도 나온다. 지난 2016년 중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맞서 한국 콘텐츠의 송출을 금지하고 중국에 진출한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한한령’을 전개한 바 있다.

하반기를 목표로 추진 중인 양국 간 고위급 회담 또한 성사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전략 기조를 ‘디커플링’(분리)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으로 전환한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외교 딜레마에 빠졌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이재정 의원은 지난 1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스스로 신냉전을 만드는 방식으로 인입해버린 대한민국 정부의 무능함이 너무 참담하다”며 “북·중·러 동맹과 한·미·일 동맹이 기정사실화될 경우에 가장 위험한 것은 대한민국”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일각에선 윤석열 정부의 대중 외교 정책이 ‘신냉전 체제’로 접어든 국제 정세에 부합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이 북한과 러시아와 연대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반중 노선’을 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란 주장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한‧미‧일이 (동맹을) 강화한 것은 새롭게 재편되는 국제 정세에서 대한민국 역할이 확실히 정해진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윤석열 정부가 외교 방향을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러시아 중국하고 다 잘 지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