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오일 머니’ 융단폭격에 쩔쩔매는 미·유럽 스포츠
  • 김경무 스포츠서울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7 13:05
  • 호수 17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날두 이어 벤제마까지 영입…유럽 축구 스타 추가 영입설도
LIV는 결국 골프 전통의 명가 美 PGA 굴복시켜

당대 최고 축구 스타 중 한 명인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8). 그가 지난해 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결별한 후, 사우디아라비아 프로축구리그 알나스르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를 좋아하는 축구팬들은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신비한 기술로 한 시대를 풍미한 축구 스타가 막대한 오일 머니에 팔려 레벨이 한참 낮은 곳에서 남은 축구 인생을 마감하게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날두의 사우디행은 그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동시대 그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한 명의 최고 스타 리오넬 메시(36·아르헨티나) 역시 사우디의 클럽 알힐랄 이적설이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됐다. 메시는 “돈이 문제였다면 사우디로 갔을 것이다. 다른 방식의 축구를 하고 일상생활을 더 즐길 때”라며 미국 메이저리그축구(MLS)의 인터 마이애미CF로 가겠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메시를 관광 홍보대사로 임명하는 등 그를 자국 리그로 끌어들이기 위해 공을 들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셈이다. 하지만 호날두에 이어 메시마저 사우디행 가능성이 타진되면서 세계 축구계를 열광시킨 빅카드였던 ‘메호 대전’이 사우디리그에서 펼쳐지는 게 현실화 직전까지 간 것은 유럽 축구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5월23일 알나스르의 호날두가 사우디 프로축구리그 알샤밥과의 경기에서 슛을 시도하고 있다. ⓒ REUTERS 연합
5월23일 알나스르의 호날두가 사우디 프로축구리그 알샤밥과의 경기에서 슛을 시도하고 있다. ⓒREUTERS 연합
6월6일 카림 벤제마가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팀 알이티하드에 입단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REUTERS 연합

벤제마, 레알 마드리드 연봉 9배 받고 사우디행

그런데 메호 대전은 아니지만, 또 하나의 빅카드인 ‘호벤 대전’은 성사됐다. 호날두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에서 특급 골잡이로 이름을 날리던 카림 벤제마(35·프랑스)가 6월7일 사우디의 또 다른 축구클럽인 알이티하드와 3년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를 잡으려 했던 레알 마드리드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을 당혹스럽게 했다. 안첼로티 감독은 1년 더 계약을 남겨놓고 있는 벤제마의 사우디 진출설이 불거졌을 때 “클럽의 레전드는 여기서 경력을 마쳐야 한다. 이것은 팬들과 클럽이 원하는 것”이라며 “의심할 여지 없이 벤제마는 레알 마드리드에 남을 것”이라고 장담한 바 있다. 하지만 발롱도르까지 수상한 벤제마는 2022~23 시즌 후 오일 머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생소한 사우디에서 자신의 축구 인생을 마치기로 결정했다.

알이티하드가 그에게 제시한 연봉은 무려 2억 유로(약 2746억원)로 추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받던 연봉(약 330억원)의 9년치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런 유혹을 뿌리칠 선수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호날두와 벤제마에 그치지 않는다. 사우디 프로축구리그는 이제 황혼기를 앞둔 축구 스타들의 ‘엘도라도’가 돼가는 양상이다. 실제로 이들 말고 유럽 무대를 휘젓던 많은 축구 스타의 사우디 이적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유럽 클럽축구 베테랑 스타들의 잇단 사우디행을 움직이는 원천은 오일 머니이고, 그 중심에는 사우디 국부펀드(PIF·Public Investment Fund)가 있다. 이 PIF는 지난해에는 LIV골프를 창설해 세계 정상급 남자 골프 스타를 대거 빼가면서, 오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던 미국프로골프(PGA)투어를 초토화시켰다. 좀 과장해 말하면, 이는 2001년 미국의 심장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등이 9·11 테러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한 것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타이거 우즈, 로리 매킬로이 등이 최고 1억 달러까지 제시하는 오일 머니를 뿌리치고 LIV골프행을 거부하기는 했지만 필 미켈슨, 브룩스 켑카, 더스틴 존슨, 캐머런 스미스 등 특급스타들이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잇달아 LIV로 옮기면서 PGA는 근간마저 흔들렸다. 앙숙지간이던 PGA와 LIV는 최근 우여곡절 끝에 전격 합병을 발표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일단 봉합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양측의 합병은 사실상 명가의 자존심을 내세웠던 PGA가 돈의 위력을 내세운 LIV에 굴복한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5월28일 사우디아라비아의 LIV골프투어에서 우승한 선수와 캐디들이 팀 트로피를 들고 무대에서 서로 축하하고 있다. ⓒAP 연합

사우디의 노림수는 2030 FIFA 월드컵 유치

아무튼 사우디 PIF는 이제 유럽 클럽축구와 PGA의 ‘큰손’으로 등장해 세계 스포츠판을 뒤흔들고 있다. 국제 스포츠계에서도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한다. 이와 관련해 영국 BBC는 최근 “그들은 대규모 골프 합병의 배후에 있고,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지배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축구선수들을 중동으로 데려오고 있다”며 사우디 PIF의 행태를 주목했다. BBC 분석에 따르면, PIF는 ‘돈의 큰 항아리’다. 정확히는 5140억 파운드(약 824조원)나 된다. 상상할 수 없는 액수다. PIF는 1971년 사우디 정부가 다양한 분야에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기본적으로는 국가를 위한 거대한 저축 계좌로 알려져 있다. 사우디가 석유를 팔아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수도 리야드에 본사를, 홍콩·런던·뉴욕 등에 지역사무소를 두고 있다.

겉으로는 국내외 기업과 부동산·벤처 투자를 통해 사우디 경제를 위한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야시르 알-루마이얀이 총재를 맡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사우디의 ‘실세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왕세자(37)가 돈줄을 쥐고 있다고 보고 있다.

PIF는 최근 사우디 프로축구리그의 4개 클럽을 인수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유럽 클럽축구를 지배하고 있는 ‘재정적인 페어플레이’ 규칙이 없어, 호날두와 벤제마 외에도 추가 선수 영입을 위해 얼마든지 돈을 쓸 수 있다. PIF는 해외에서 많은 돈을 쓰는데, 그들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을 통해 2021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3억 파운드(약 4810억원)에 인수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2022~23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4위를 차지한 명문팀이다.

인접국인 카타르의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성공적 개최에 자극받은 사우디는 2030년 월드컵 개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한 초석으로 2027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이어,  2023 FIFA 클럽월드컵 개최권을 따냈다. 또 2026 AFC 여자 아시안컵 유치도 추진 중이다. 

사우디가 PIF를 통해 프로축구와 프로골프의 큰손으로 등장한 것에 대해 비판적이 시각도 많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는 숱한 인권침해로 비판받아 왔으며,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제한하는 엄격한 법을 가지고 있다.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동성애는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런 것을 무마시키기 위해 스포츠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인권 탄압국 이미지를 씻기 위한 이른바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사우디의 이런 스포츠계 행보가 2030 월드컵 개최를 위한 것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왜 그들이 스포츠에 투자하는지에 대해 사우디의 공식 반응은 “더 많은 사람이 스포츠를 하도록 장려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보고서들은 남자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암시한다. 결론적으로 사우디는, 카타르가 온갖 비판을 받으면서도 2022 카타르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른 걸 지켜보면서, 이후 축구와 골프를 통해 세계 스포츠계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모양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