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부’도 ‘구미호’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8 16:05
  • 호수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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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노리는 시즌제 K드라마 캐릭터들…일각에서는 작품의 상품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낭만닥터 김사부》는 시즌3가 방영 중이고, 《구미호뎐》의 후속작인 《구미호뎐 1938》은 또 다른 시즌으로 돌아올 거라는 암시를 남긴 채 종영했다. 이제 시즌제는 K드라마 제작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관건은 바로 캐릭터에 있다.

tvN 드라마 《구미호뎐 1938》은 최고시청률 8%(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종영했다. 시즌1에 해당하는 《구미호뎐》(2020)이 최고 시청률 5.8%에 머물렀던 데 비해 높은 시청률이다. 화제성도 남달랐고, 평가도 시즌1에 비해 좋았다. 시즌1은 현대판 판타지 액션 버전으로 구미호를 재해석했지만, 이연(이동욱)과 남지아(조보아)의 로맨스에 집중하는 안전한 선택을 함으로써 어딘가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반면 《구미호뎐 1938》은 로맨스 대신 우정을 강화하고 시공간을 1938년으로 되돌림으로써 다양한 요괴들(심지어 일본 요괴들까지)의 판타지 액션을 다양하게 재해석된 설화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전개함으로써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tvN 드라마 《구미호뎐 1938》 포스터 ⓒtvN 제공

활짝 열린 프랜차이즈 시대

《구미호뎐》이 일종의 출사표로서 가능성을 타진하는 단계였다면, 《구미호뎐 1938》은 이를 바탕으로 마음껏 그 세계관을 확장해낸 단계였다. 즉 구미호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시공을 초월해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세계관을 확고히 세웠다. 1938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구미호와 일본 요괴들 사이의 대결을 그려낸 것처럼, 이제 《구미호뎐》은 현재로도 또 조선시대로도 날아가 새로운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세계관을 갖게 됐다. 《구미호뎐 1938》의 엔딩에 쿠키영상으로 들어간 짤막한 애니메이션은 이 작품이 끝이 아니라 다음 시즌으로 이어질 거라는 암시를 전했다. 그림 속에서 이연은 “여기가 조선이렷다”라며 추격하는 포졸들로부터 도망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무래도 이건 다음 시즌이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사극버전의 《구미호뎐》이 될 거라는 걸 말해 주는 대목이다.

구미호가 시즌제 드라마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건, 그 매력적인 캐릭터 덕분이다. 이미 구미호는 《전설의 고향》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인기 있는 캐릭터였고,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나 《간 떨어지는 동거》 같은 현대판 로맨스 버전으로도 재해석된 캐릭터이기도 했다. 《구미호뎐》은 《전설의 고향》의 전통적인 신파 서사를 가진 여성 구미호 대신 시대에 맞게 남성 구미호를 세웠고, 그 설화가 가진 공포 이야기를 가져오면서도 동시에 현대판 구미호의 로맨틱 코미디적 요소를 더하는 캐릭터를 세워 재탄생했다. 공포, 판타지, 로맨스에 액션까지 다양한 장르적 색채를 갖게 된 《구미호뎐》은 그래서 프랜차이즈로 확장될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게 됐고 《구미호뎐 1938》은 그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준 셈이다. 이로써 《구미호뎐》은 다양한 캐릭터를 통한 스핀오프까지 가능한 하나의 유니버스를 구축했다. 구미호 이연은 물론이고 수리부엉이 류홍주(김소연), 백두산 호랑이 천무영(류경수) 혹은 반인반호 이랑(김범) 같은 캐릭터들의 저마다의 탄생 과정을 담은 서사 또한 가능한 세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구미호뎐 1938》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시즌제를 통해 성공한 작품의 프랜차이즈 시대가 활짝 열렸다. SBS 《모범택시》가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2021년 첫 방영돼 김도기라는 확실한 캐릭터와 무지개 운수의 모범택시라는 분명한 세계를 구축해낸 이 작품은 올해 시즌2가 방영되며 최고 시청률 21%를 기록하는 큰 성과를 냈다. SBS 《낭만닥터 김사부》도 마찬가지다. 2016년 첫 시즌을 시작한 이 작품은 김사부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돌담병원이라는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2020년 시즌2로, 또 올해 시즌3로도 돌아왔다. 이처럼 이제 성과를 낸 작품들은 저마다 다음 시즌을 얘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작년 최고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역시 벌써부터 시즌2가 거론되고 있다. 이 작품을 쓴 문지원 작가와 시즌2 계약이 이뤄졌고 제작이 확정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처럼 시즌제가 자리를 잡게 된 건 과거와는 달라진 제작 방식과 시즌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 그리고 달라진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과 관련이 있다. 즉 과거 지상파 개념에서의 제작 방식에서 시즌제는 시청자들이 원해도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방송사의 편성에 따라 제작에 들어가는 과거의 방식 속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시즌제를 염두에 둔 작품을 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성공한 작품의 후속작이라면 배우들의 출연료가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부담도 만만찮았다. 게다가 애초부터 시즌제를 고려한 기획이 아니라면, 후속작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법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 애초부터 시즌제를 염두에 두는 작품들이 생겨나고 있고, 다양한 플랫폼이 존재해 성공한 작품의 제작사는 그만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플랫폼에 휘둘리는 제작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시청자들의 이른바 ‘팬덤 소비’도 과거보다 더 강력해져 한번 성공한 작품에 대한 충성도 높은 팬층이 생겨났다. 시즌제 드라마가 성공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다.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 포스터 ⓒSBS 제공

시즌제 드라마의 중심, 캐릭터와 세계관

아직까지는 《낭만닥터 김사부3》처럼 시즌3까지 제작되는 드라마가 귀하게 느껴지지만, 이 작품 또한 성공하고 있어 몇 년 사이에 K드라마의 시즌제 경향은 일상적인 일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즉 아예 시즌제를 염두에 둔 작품들이 더 많이 기획될 거라는 이야기다. 이것은 미국의 제작 시스템처럼 우리도 변화해갈 거라는 걸 말해 준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성공한 작품이 시즌제가 될 수 있는 건 아니고 또 반드시 후속작이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즌제 드라마들은 거기에 맞는 특정한 요건들을 갖춰야 한다. 그 첫 번째는 앞서도 말한 것처럼 캐릭터다. 《구미호뎐》의 구미호나 《낭만닥터 김사부》의 김사부, 《모범택시》의 김도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시청자들이 후속작을 기대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 인물들이 서있는 것만으로도 관심과 기대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이 서있는 공간들, 이를테면 《구미호뎐 1938》의 일제강점기 경성이나, 《낭만닥터 김사부》의 돌담병원, 《모범택시》의 무지개 운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바다 로펌은 이 작품들의 세계관을 그려낸다. 캐릭터가 있고 세계관으로서의 시공간이 존재한다면 이제 남은 건 새 시즌을 채울 서사들을 찾는 일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이들 작품은 모두 충분한 이야기의 보고들을 갖고 있다. 《구미호뎐》이 설화와 민담에서 무궁무진한 캐릭터와 서사를 갖고 있다면, 《낭만닥터 김사부》는 취재를 통해 확보된 외상병원 환자들의 사레와 외상병원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모범택시》가 실제로 벌어졌던 대중의 공분을 산 사건들을 취재해 작품 속에 녹여내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역시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률 사건들을 우영우가 일하는 한바다 로펌의 의뢰인들을 통해 가져온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분명한 세계관에 시즌을 거듭해도 충분히 채워지고도 남을 이야기 소재들이 시즌제 드라마가 가능해지는 전제조건인 셈이다.

물론 지나친 시즌제에 대한 욕망이 자칫 작품의 상품화를 부추길 위험성도 존재하지만, 성공한 작품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것은 팬들의 요구이기도 할 것이다. 이 과도기에 등장할 프랜차이즈 드라마들이 얼마나 작품성과 대중성을 아우르는 균형을 보여줄 것인가가 향후 K드라마의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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