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태양광을 잡아라” 한·중·일 ‘페로브스카이트 삼국지’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7 15:05
  • 호수 17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보다 효율 2배 높아 주목…누가 먼저 양산하느냐에 따라 시장 판도 뒤집힐 수도 

지난 4월 일본 삿포로에서 개최된 G7 기후, 에너지 및 환경장관 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서를 읽다 보면 낯선 단어가 하나 등장한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그것이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특정한 형태의 결정 구조를 가진 광물이다. 이것을 발견한 러시아 광물학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태양전지는 특정 물질이 빛을 흡수해 전자를 방출하는 광전효과를 이용한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페로브스카이트 구조를 가진 물질을 광흡수층으로 이용하는 전지를 가리킨다. 일본의 미야사카 쓰토무 교수가 발명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이미 2013년 미국 학술지 사이언스가 10대 혁신기술 목록에 포함시킨 바 있다.

4월12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개막한 2023 그린에너지엑스포에서 다양한 태양광 모듈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4월12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개막한 2023 그린에너지엑스포에서 다양한 태양광 모듈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수분과 열에 취약한 단점 극복해야

어려운 이름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G7 회담의 공동성명에 포함된 이유는 기존 태양전지에 비해 높은 효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에 기반한 태양전지가 약 17% 수준의 효율을 보이는 데 비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최대 31%의 효율을 기대할 수 있다. 같은 면적이라면 2배 가까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효율성과 더불어 가볍고 투명하며 잘 구부러지면서 저렴한 장점도 가지고 있다. 두께는 250nm(나노미터, 1nm는 10억분의 1m)에 불과하다. 플라스틱 필름에 인쇄해 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얇다. 여기에 더해 자유자재로 구부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곡면 벽체와 지붕은 물론 자동차, 의복, 비닐하우스 등 다양한 대상에 적용할 수 있다. 제작 과정 역시 매우 간단하다. 전구체를 혼합하고 스크린 프린팅 등 몇 가지 공정을 거치면 45분 만에 완성할 수 있다. 기존의 실리콘 태양전지는 제작 과정에서 대량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경우 이러한 과정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더 친환경적이다. 여기에 더해 주요 재료인 요소와 납 등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고 비용 역시 저렴하다.

완벽해 보이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약점은 수분이나 열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야외 공간에 노출돼야 하는 태양전지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 약점은 치명적이다. 액상의 재료를 얇게 도포해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은 반대로 넓은 면적에 균일하게 도포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될 수 있다. 실용화를 위해선 태양전지 크기가 200㎠ 이상 돼야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실험실에서는 0.1~25㎠ 면적에 머물고 있다. 또한 초반에는 높은 효율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효율이 낮아진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약점은 연구개발(R&D)과 투자를 통해 극복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7년 사이에 효율이 2배 가까이 향상됐다. 이는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 효율 향상과 비교하면 4배에 달하는 속도다.

이 때문에 여러 국가의 기업들이 최근 경쟁적으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개발과 양산을 위한 준비에 나서고 있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파나소닉, 세키스이 화학공업, 도시바 등 다양한 기업이 2025~26년 양산을 목표로 준비에 나서고 있다. 도시바는 2021년 703㎠ 면적의 필름형 태양전지를 통해 15%의 효율을 기록한 바 있으며, 2025년 사업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파나소닉 역시 2020년 804㎠ 면적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해 17.9%의 효율을 기록한 바 있다. LCD와 자동차 유리 제조업체인 세키스이 화학공업의 경우 자신들이 보유한 박막봉쇄 기술을 이용해 수분에 약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약점을 극복하고 대형화된 전지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 시장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연구개발 단계를 벗어나 양산 단계에 접어들었다. 세계 최대 이차전지 업체인 CATL은 최근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양산을 위한 테스트 라인 구축에 착수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이미 2022년부터 양산에 나서고 있다. 유럽에서도 폴란드 등을 중심으로 양산 단계에 들어선 기업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미국이나 일본 기업들이 실리콘 태양전지 관련 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 기업이 향후 세계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뒤늦게 뛰어든 중국 업체들이 현재 세계시장을 95% 이상 장악한 상태다. 이런 성과는 민간과 공공부문의 대규모 투자와 함께 대량생산 체계 구축을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 정부의 적극적인 보조금 지급, 해외 경쟁업체의 진입 차단 등이 병행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의 경우 연구개발 과정에서 기술적 완벽성에 집착하면서 양산 기술 및 비용 절감에 실패했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에서는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 기업에 대한 분석은 물론 필요한 것은 얼마든지 배우겠다는 자세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기업의 대량생산을 지원함은 물론 공공시설, 역, 학교 등에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보급을 지원함으로써 초기 단계부터 수요 창출을 통해 기업의 수익을 보장하고 시장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을 중심으로 고효율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수준의 효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화를 비롯한 기업들은 관련 연구와 양산을 위한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냉정한 현실 인식과 접근 필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둘러싼 경쟁에서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이것이 올림픽 메달처럼 단순히 높은 효율을 기록한다고 해서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효율이 조금 낮더라도 저렴하고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양산 기술이 실제로는 더 중요하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나라에서는 이차전지와 관련한 수많은 신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기술들이 실제 이차전지 산업 경쟁력 강화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불명확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랫동안 원천기술 개발에서는 뒤지더라도 양산 기술의 우위를 토대로 경쟁력을 갖춰왔다. 정부의 산업정책 역시 전략적 부문을 선정하고 수요 창출을 포함한 시장 관리와 지원을 통해 해당 산업 분야의 발전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종합적 접근 체계는 약화됐고, 중국에 뒤처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쏟아지는 기술 개발 성공이라는 보도들은 막연하게 우리가 최고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던 것이다.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이러한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보도자료가 아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냉정한 현실 인식과 접근이 필요하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