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 논란에 시끌시끌한 한국, 아직은 확전을 피하고 싶은 중국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7 12:05
  • 호수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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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후끈 달아오른 ‘싱하이밍 논란’에 회피로 일관
경제협력 기대 사라지면 심각한 한중 갈등 야기될 수도

6월13일 중국 베이징시의 외교부 청사. 외신기자를 위한 정례 브리핑에서 한 한국 기자가 6월8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이재명 민주당 대표 회동 발언으로 인해 9일에는 한국 외교부가 싱 대사를, 10일에는 중국 외교부가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한 일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이에 대해 왕원빈 대변인은 “싱 대사가 한국 각계의 인사들과 교류하는 일은 대사로서의 책무”라며 “그 목적은 상호 이해 증진과 협력 촉진, 한중 관계의 발전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너무나 뻔한 답변이 나오자, 다른 한국 기자가 다시 질문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싱 대사의 발언에 대해 대사로서의 본분을 벗어났고 중국과 주재국의 국가 이익을 해치는 행위였음을 지적한 데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하지만 왕 대변인은 여전히 “이미 답변했다”며 “계속 부각할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은 윤석열 대통령이 오전 국무회의에서 “싱 대사를 보면 위안스카이가 떠오른다는 얘기가 있다”고 직격하고, 대통령실은 “중국이 싱 대사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기다린다”고 입장을 밝힌 날이었다. 그런데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동문서답식 답변을 내놓으며 싱 대사에 관한 논란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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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5월9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 연합

중국 내 주요 언론, ‘싱하이밍’ 언급도 안 해

한중 관계가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는 가운데, 주목할 점은 중국 내 반응이다. 강경 국수주의 매체로 유명한 ‘환구시보’와 그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 그리고 환구시보 총편집장을 지낸 후시진 등을 제외하고는 싱 대사의 발언이나 한중 양국 외교부의 상대국 대사 조치를 보도한 중국 내 주류 언론이나 비평한 주요 언론인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극소수 군소 SNS 매체가 보도한 기사마저 중국 포털사이트나 SNS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중국은 모든 언론의 보도와 언론인 및 논객의 논평에 대해 철저히 통제하는 나라다. 심지어 일반 네티즌의 평소 발언도 검열한다.

이런 탓에 만약 싱 대사를 둘러싼 한중 갈등 양상을 자국이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있거나 중국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애국주의를 고양할 필요가 있었다면 중국 내 주류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했을 것이다. 또한 언론인과 논객을 총동원해 중국 SNS를 뜨겁게 달궜을 것이다. 하지만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를 즐겨 보고 후시진의 SNS를 구독하는 일부 중국인을 제외하면, 싱 대사의 발언을 알거나 최근 한중 관계에 관심을 갖는 중국인은 거의 없다. 심지어 중국 외교부 내에서도 국장급인 싱 대사의 존재를 아는 중국인은 전무한 실정이다.

오히려 이 시기 중국에서 가장 핫한 국제 이슈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의 방중 여부와 향후 미·중 관계 전망이었다. 왜냐하면 블링컨 장관 방중이 지난 2월 추진됐다가 중국 정찰풍선의 미국 영토 침입 사태로 무산된 데다, 최근에는 여러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 간 기싸움이 팽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6월14일 중국 외교부는 블링컨 장관이 친강 외교부장과 전화통화를 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16일 방문하는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이를 두고 중국 언론은 일제히 향후 미·중 관계가 대화와 협력 분위기로 복원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전망을 내놓았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블링컨 장관이 시진핑 주석을 접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으로 촉발된 논란이 왜 중국에서는 돌출되지 않았던 걸까?

그 원인과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시선을 지난해 11월로 되돌려 짚어봐야 한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두 정상은 미국이 주도하는 디커플링(탈동조화)에 대한 입장차만 확인하고 헤어져야 했다. 당시 시 주석은 글로벌 산업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한중 양국의 협력을 강조했다. 중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반도체를 콕 집어 사례로 들면서 “한중 협력은 상당한 경제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며 “더 많은 협업의 기회를 모색하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이에 대해 중국 당국은 상당히 불쾌했던 것으로 후일담이 전해진다. 그럼에도 한국에 대한 시 주석의 경제 협력 구애는 그치지 않았다. 4월12일 광둥성 광저우에 있는 LG디스플레이 생산기지를 방문했던 것이다. 시 주석의 방문은 1시간 넘게 진행됐는데, LG디스플레이 관계자들을 격려하면서 한중 우의를 강조했다. 2012년 시 주석이 집권한 이래 중국 내 한국계 기업을 방문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또한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국계 공장을 방문한 첫 사례였다.

게다가 2월부터는 한한령(限韓令·한국 콘텐츠 금지령)에 대한 해제 움직임이 나타났다. 한류 스타가 중국 매체의 광고에 등장하고 K팝 가수의 콘서트 개최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확정됐다. 이렇듯 중국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경제와 산업에서는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민간 교류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4월19일 윤 대통령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해협의 긴장 상황을 지목하며 “이런 긴장은 힘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고 말했다.

중국에 대만 문제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른 내정(內政)이자 ‘핵심이익 중 핵심’이다. 이런 상황을 직시해 그동안 한국 정부는 대만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해 왔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그 금기를 처음 깨뜨렸다. 그 후 중국 당국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인 자신의 일”이라며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윤 대통령을 직격했다. 또한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를 앞세워 윤 대통령을 비난했다. 다만 관영매체의 여론몰이는 조절하면서 한중 관계가 갈등 양상으로 증폭되는 것은 막는 모습도 보였다.

ⓒAP 연합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2022년 11월15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향후 한중 관계의 핵심 키는 반도체 될 것

이처럼 중국은 외교부 정례 브리핑과 환구시보 및 글로벌타임스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국 정부를 견제하고 비난했지만, 한국과 직접적인 충돌로 확대되는 걸 피하려는 모습을 계속 보이고 있다. 물론 K팝 가수의 콘서트 개최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취소되는 등 한한령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2월과 3월 중국인의 외국 단체여행을 재개하면서 허용 대상 60개국 중에서 한국을 배제했다. 5월에는 네이버에 대한 전면 차단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한령을 제외한 나머지 다른 조치들이 한국만을 겨냥한 보복 조치라고 해석하기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중국인의 외국 단체여행 허용 대상국 중 미국과 동맹국인 나라는 한국뿐만 아니라 단 한 나라도 없다. 지난 수년 동안 중국은 외국의 포털사이트를 계속 차단해 왔고, 네이버가 그 마지막 타깃이 됐다. 이렇듯 중국이 보내는 시그널은 경제와 산업에서는 한국과 협력을 원한다는 것이다. 특히 5월21일부터 구매 금지에 들어간 미국 마이크론 제품을 대체할 반도체 분야가 시급한 당면 과제다. 첨단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중국은 생산 능력이 없어 한국산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반도체를 팔지 않는다면, 향후 한중 관계를 심각한 갈등 국면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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