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라덕연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자
  •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6 17:05
  • 호수 17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주주가 주식을 사거나 팔 때는 한두 달 전에 미리 공시해 투자자들이 사전에 알도록 하자는 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이런 법을 굳이 만들기로 한 배경엔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라덕연 사태’가 자리 잡고 있다. 라덕연 사태로 8개 종목이 하한가 행진을 시작하기 몇 주 전에 일부 종목의 대주주들이 꽤 많은 지분을 시장에서 팔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전에 정보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투자컨설팅업체 H사 라덕연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투자컨설팅업체 H사 라덕연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당연히 만들어야 할 법을 만드는 과정인 듯하지만, 일련의 과정은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를 풀어가는 잘못된 방식의 전형이라는 점에서 찬찬히 곱씹어볼 만하다. 라덕연 사태는 일부 세력이 주가를 교묘하게 조종해 서너 배씩 끌어올렸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그렇게 끌어올려 높아진 가격에 일부 대주주가 주식을 판 게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들보다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수십억원의 차익을 거둔 일부 대주주에게 좀 더 분노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전형적인 잘못된 방식이다. 특정 종목들의 주가가 수백 퍼센트씩 오르는데도 투자자들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지켜만 보다가 일이 터지고 나서야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대주주들의 거래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 자체로 조사하고 처벌하면 된다. 하지만 라덕연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주주들의 주식 거래를 사전에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은 전혀 관계가 없음에도 그 법을 만들면 라덕연 사태를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대주주의 지분 거래를 사전에 공시하는 방안은 라덕연 사태의 재발을 막기는커녕 더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라덕연 사태의 시작은 일부 종목의 주가를 서너 배씩 조용히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는데, 사실 범죄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주가조작의 가장 큰 위험은 대주주가 갑자기 주식을 내다 파는 것이다. 그러면 기껏 끌어올린 주가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주가조작 세력들은 큰돈을 잃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주주가 주식을 팔 때 두어 달 전에 미리 공시하도록 하면 작전 세력들은 아무 걱정 없이 주가를 올릴 수 있다. 대주주가 주식을 판다는 공시를 하지 않고 기습적으로 팔 수는 없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가장 큰 두려움이 사라진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대주주들의 주식 거래를 사전에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나라들은 공매도가 활성화돼 있어 라덕연 사태처럼 특정 종목의 주가가 이유 없이 계속 오르면 굳이 대주주가 아니라도 공매도 투자자들이 대주주에게서 주식을 빌려 그 종목을 공매도한다. 그래서 아무 이유 없이 조용히 주가가 계속 올라가는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주식투자자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공매도를 제한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이유 없이 슬금슬금 계속 주가가 오르는 종목이 눈에 띄더라도 그냥 바라보고 걱정하는 수밖에 없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에 대한 재발 방지책은 세워야겠는데 그 핵심인 주가조작 그 자체를 막는 건 불가능해 보이고, 대안이 될 만한 공매도 활성화는 여론이 좋아하지 않으니 못하겠는데 마침 국민의 비난이 일부 관련 종목의 대주주들에게 쏠려 그들이 그 화살을 대신 맞고 있으니 이참에 그들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면 모든 게 아름답게 마무리된다는 전형적인 한국식 문제 해결 방식을 우리는 라덕연 사태에서도 다시 경험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br>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