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영향력 압도적이지만 ‘첩첩산중’ 악재 부담 [202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1 13:05
  • 호수 176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또는 경제관료]
회장 승진과 사법 리스크 해소로 8년째 1위…최태원, 추경호, 정의선, 구광모 등 2․3․4․5위

시사저널-한국갤럽, 전문가·일반국민 1000명 설문조사…‘시대의 희망·요구·과제’ 상징하는 ‘대한민국 권력 지도’

지금 대한민국은 누가 움직이고 있을까. 2023년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판을 떠받치고 움직이는 그 역동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면밀히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시대적 요구를 파악할 수 있다. 민심이 가리키는 시대의 희망과 과제도 찾아낼 수 있다. 마침내 신호와 소음을 구분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과정은 시대상을 담아내는 일이다. 한국을 움직인다는 말은 민심에 가장 빠르고 예민하게, 그리고 가장 국민이 원하는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희망과 요구, 과제들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도도한 민심의 흐름과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인물들을 살펴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시사저널이 1989년 창간 이후 34년째 매년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영향력 조사를 이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변은 없었다. 올해도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의 경제인 또는 경제관료 부문 1위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차지했다. 전문가 500명과 일반국민 500명 등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이로써 이 회장은 2016년 이후 8년 연속 1위 자리를 지키게 됐다. 지목률도 압도적이다. 전문가의 77.2%, 일반국민의 81.2%가 ‘한국을 움직이는 경제인’으로 이 회장을 지목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이재용, 반도체 사업영역 확장에 박차

이 회장은 2014년부터 실질적으로 삼성그룹을 이끌어왔다. 그해 5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입원한 이후부터다. 2016년 말부터는 국정농단 사건 관련 수사와 재판으로 온전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웠지만 삼성은 줄곧 재계 1위 자리를 지켰다. 2021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사법 리스크를 상당 부분 해소한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회장으로 승진까지 하면서 경영 보폭을 넓힐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삼성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밝지 않다. 특히 그룹의 주력인 반도체 사업 부문은 미·중 반도체 패권전쟁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삼성전자로서는 중대 기로에 놓인 상황이다. 여기에 일본이 미국의 손을 잡고 본격적인 글로벌 반도체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 회장은 최근 반도체 사업영역을 전장까지 확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국내외 유력 완성차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연이어 회동하며 차량용 반도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인천 영종도 소재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을, 올해 5월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만났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현재 테슬라와 완전자율주행 반도체 개발을 진행 중이고, BMW에는 차량용 반도체 시제품을 제공하며 칩 개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 기업과의 동맹도 현재진행형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차량용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IVI)용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오토 V920’을 현대차에 공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회장이 이처럼 공을 들이는 건 차량용 반도체가 향후 폭발적 수요가 예상되는 고성장 사업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는 지난해 635억6300만 달러(약 81조원)에서 2026년 962억3100만 달러(약 123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5년 처음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진입했다. 이후 업계 최초 플래시메모리(UFS)를 선보였고, 오토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오토 LPDDR5X(저전력 D램), 오토 GDDR6(그래픽 D램) 등 차량 관련 메모리 솔루션도 시장에 내놨다. 삼성전자는 향후 좀 더 적극적인 차량용 반도체 시장 공략을 통해 2025년 글로벌 1위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연합뉴스·시사저널 임준선·뉴스1·시사저널 사진공동취재단·현대차 제공

최태원, SK·대한상의 회장으로 활약

이 회장에 이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9.8%의 지목률로 2위에 올랐다. 최 회장은 최근 SK그룹 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의 업무를 동시에 소화하며 숨 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SK그룹 회장으로서는 SK텔레콤을 중심으로 생성형 인공지능(AI)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독일 도이치텔레콤, 싱가포르 싱텔, 아랍에미리트 e& 등 글로벌 통신사들과 손잡기도 했다.

이들 ‘통신사 동맹’은 현재 공용 대규모언어모델(LLM) 플랫폼과 독자적 AI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전통적 통신업의 패러다임을 AI 중심으로 전환해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SK텔레콤은 AI 서비스 에이닷과 AI 챗봇 이루다로 유명한 스캐터랩 출시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의 간극 좁히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최 회장은 지난해 5월 부산세계박람회 민간유치위원장을 맡아 2030년 엑스포 부산 유치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는 같은 해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70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참석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을 오가며 적극적인 엑스포 유치활동을 벌여왔다. 최 회장은 올해 여름 휴가도 반납하고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행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조사에서 2위이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올해 4위(17.4%)에 랭크됐다. 정 회장은 2020년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9위·3%)으로부터 그룹 지휘봉을 넘겨받은 이후 총수로서 입지를 다져오고 있다. 그는 특히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며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현재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회장은 최근 들어 현대차의 전동화 전환에 한층 속도를 내고 있다. 그는 지난 6월 ‘2023 CEO인베스터데이’ 행사에서 현대차의 중장기 전동화 전환 전략인 ‘현대 모터 웨이’를 발표하기도 했다. 올해부터 2032년까지 10년 동안 총 109조4000억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중 전동화 관련 투자액은 35조8000억원에 달한다. 현대차는 특히 전동화 전환 투자가 집중되는 2024년부터 2025년까지 12조원 이상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5위(9%)는 구광모 LG 회장이 차지했다. 그는 2018년 선친인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별세하면서 바통을 넘겨받은 후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그룹 사업의 효율화 작업에 집중해 왔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과감히 철수를 결정했다. LG전자의 스마트폰과 태양광 패널 사업을 정리한 것이 대표적이다. LG전자는 또 연료전지기업 LG퓨얼셀시스템즈를 청산하고, 수처리기업인 하이엔텍과 LG히타치워터솔루션을 매각하기도 했다. 이 밖에 LG이노텍은 고밀도다층기판(HDI)과 조명용 발광다이오드(LED) 사업을, LG생활건강은 영유아 식품사업을 접었다.

대신 첨단산업과 전장·바이오 등 신사업에 그룹 차원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LG그룹은 지난 3월 2027년까지 향후 5년간 미래 성장 분야에 약 54조원의 국내 투자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배터리와 전장 등 미래 자동차 관련 산업과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 분야에 44조원을, AI 및 소프트웨어 분야와 바이오 및 헬스케어 분야, 클린테크 분야에 약 10조원을 각각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7위(5%)에 오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신세계 유니버스’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브랜드들로 하나의 유기적인 생태계를 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신세계그룹은 이미 ‘신세계 유니버스’ 구축을 위한 역량을 충분히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이마트에브리데이, 스타벅스 등 오프라인 유통·외식 채널에 G마켓과 SSG닷컴 등 온라인 쇼핑몰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오프라인 역량과 자산에 더해 디지털 기반의 미래 사업을 새로운 축으로 삼는 ‘디지털 피보팅(pivoting·사업 방향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오프라인도 잘하는 온라인 회사가 되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신세계그룹은 G마켓과 SSG닷컴의 통합멤버십을 출시하고, KT와 온·오프라인 통합을 위한 협업에 나서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료 중에선 추경호·이창용 이름 올려

경제관료 중에서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3위·18.2%)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6위·7.0%)가 10위권 내에 포진했다. 최근 국내외 경제위기의 최전선에서 정책을 추진하는 관료로서 두 사람이 주목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 밖에 이번 조사에서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8위·4.0%)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10위·2.4%)가 새로 10위권 내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조사에서 각각 7위이던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과 10위이던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2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어떻게 선정됐나

시사저널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했다. 그동안은 행정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사회단체·문화예술인·종교인 등 10개 분야에서 각 100명씩 전문가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는데, 지난해부터 비중을 조정해 10개 분야에서 50명씩 총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대신 일반국민 조사를 신설해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올해 조사는 7월3일부터 7월21일까지 진행됐다. 전문가 조사방법은 리스트를 이용한 전화면접 여론조사로 이뤄졌다. 일반국민 조사는 패널을 활용한 온라인 조사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4.4%포인트다. 올해 6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 기준으로 가중값을 부여했다. 두 조사 모두에서 구조화된 질문지를 조사도구로 활용했다. 문항별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을 허용했다.

 ☞ ‘202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특집 연관기사 
[202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지금 대한민국의  희망과 요구를 읽는다
[전체 영향력] 윤석열-이재명-이재용 ‘부동의 Top3’…한동훈 ‘빅4’ 약진
[윤 대통령에 영향력] 집권 2년 차에도 여전한 김건희 영향력
[정치인·행정관료] 맞으면서 커지는 존재감…이재명 2년 연속 1위
[경제인·경제관료] 이재용 영향력 압도적이지만 ‘첩첩산중’ 악재 부담 
[언론매체 영향력·신뢰도·열독률] 전통의 ‘빅3’ KBS·조선일보·MBC 위상 재정립
[사회인] 손석희-한동훈-유시민-유재석...‘확고한 1위’는 없었다
[문화예술인] ‘봉준호 열차’의 질주는 계속된다  
[방송·연예인] 유재석, 긴장을 못 풀게 만드는 ‘GOAT’
[스포츠인] 건재한 손흥민, 도약하는 이강인·김민재…韓축구 ‘트로이카’ 시대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