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 날려버릴 수도 있는 ‘총선 전초전’…가열되는 강서구 현장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3.10.06 10:05
  • 호수 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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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강서구청장 보선, 여야 지도부 총동원하며 사활 걸어
“선거 후폭풍 엄청날 것”…與 패배 시 김기현 지도부 교체 가능성

“선거운동 분위기나 언론 보도를 보면 마치 국회의원 선거나 서울시장 선거 때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요란법석인 구청장 선거가 또 있었나 싶다.” 10월11일 열리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분위기와 관련해 강서구에 거주하는 한 40대 유권자가 신기하다는 듯 기자에게 꺼내놓은 말이다.

이번 보선은 국민의힘 소속 김태우 전 구청장이 지난 5월 대법원에서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구청장직을 박탈당하면서 열리게 됐다. 국민의힘은 지난 8월 광복절 특별사면에 포함되면서 선거 출마 자격을 얻은 김 전 구청장을 경선을 통해 다시 후보로 내세웠고, 더불어민주당에선 경찰 출신인 진교훈 후보를 전략공천으로 내보냈다. 이 외에도 권수정 정의당, 권혜인 진보당, 김유리 녹색당, 이명호 우리공화당, 고영일 자유통일당 후보가 도전장을 냈다. 다만 선거는 김태우 후보와 진교훈 후보의 2파전 흐름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나서는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왼쪽 두 번째)가 유세 현장에서 김기현 당대표(맨왼쪽) 등 당 중진들과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나서는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왼쪽 두 번째)가 유세 현장에서 김기현 당대표(맨왼쪽) 등 당 중진들과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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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교훈 더불어민주당 강서구청장 보선 후보(왼쪽 두 번째)가 서영교 최고위원(맨 왼쪽) 등 현역 의원들과 함께 선거 유세 중이다. ⓒ연합뉴스

폭행에 방화까지…선거전 가열 조짐

여야는 각기 다른 프레임으로 선거운동에 임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김태우 후보 이전 16년간 구청장이 민주당 소속으로 계속됐지만 그동안 고도 제한, 주택 밀집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이번 보선을 “강서를 소외지역으로 만든 민주당 심판” 선거로 규정했다. 민주당은 보선의 귀책사유가 김 후보에게 있다는 점과 함께 ‘윤석열 정권 심판론’을 앞세우고 있다.

강서구 유권자의 시각처럼 실제 여야는 이번 보궐선거에 총선이나 지방선거 이상으로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당내 주요 인사들을 선거 전면에 내세워 매머드급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당내 현역 중 최다선인 5선 중진의 정진석 전 국회부의장과 정우택 국회부의장이 명예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고, 수도권 중진인 안철수·권영세 의원, 나경원 전 의원이 상임고문으로 참여했다. 또 수도권 현역 국회의원들과 원외당협위원장들을 강서구의 동별로 배정해 김 후보 지원에 나서게 했다.

민주당 역시 강서구 현역 의원들뿐 아니라 홍익표 원내대표, 정청래 최고위원 등 지도부가 선대위에 직접 참여했고, 전국의 현역 국회의원들을 총동원하고 있다. 의원들을 상임위 기준으로 20개 조로 나눠 강서 지역 선거운동에 투입했다. 특히 9월27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명 대표는 영장 기각 후 첫 행보로 진 후보와 직접 통화하며 선거 상황을 점검하는 등 강서구청장 선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여야는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도 지도부가 직접 선거운동에 나서는 등 사활을 거는 모습을 보였다. 그야말로 총력전인 셈이다.

이처럼 여야 할 것 없이 이번 보선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이유는 내년 4월에 있을 22대 총선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총선을 6개월가량 앞두고 선거가 실시되는 가운데 수도권 민심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풍향계가 될 수 있어서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 임기 중반에 실시되는 만큼 정권 심판 여론을 확인할 시험대이기도 하며 지난 4년 동안 과반 이상의 초거대 의석을 점유한 민주당에 대한 심판대가 될 것이란 시각이 있는 만큼 여야 할 것 없이 모두가 절박함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 경쟁이 과열되면서 선거전이 혼탁해지고 있는 양상도 포착된다. 9월30일 오후 50대 여성 A씨가 강서구 방신시장 사거리에서 선거 유세 중이던 김 후보 측 선거운동원 2명에게 욕설을 하고 우산을 휘둘렀고, 이 과정에서 한 여성 선거운동원이 실제 폭행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김 후보 캠프는 10월1일 성명을 내고 “‘우린 민주당’이라고 밝힌 중년 여성이 우산으로 김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을 내리치고 주먹으로 폭행했다”고 밝혔다. 또 10월2일 오후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앞 길가에 걸린 김성태 전 의원(국민의힘 강서을 당협위원장)의 현수막이 방화로 인해 불에 타는 사건도 발생했다. 김 후보 측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선거 테러”라며 배후를 의심했다.

김 후보의 실언을 두고 여야 간에 격한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 후보는 9월28일 공식 선거운동 첫날 출정식에서 보궐선거 비용 40억원에 대해 ‘1년에 1000억원 넘게 벌기 위한 수수료 정도로 애교 있게 봐 달라’는 취지로 언급해 논란이 됐다. 이에 민주당이 거세게 비판하자 국민의힘은 “민주당 박·오·안(박원순·오거돈·안희정) 트리오의 보궐선거 총비용은 964억원이었다”며 “성 비위로 연이어 보궐선거를 유발한 민주당이 과연 공익제보자의 보궐선거를 운운할 자격이 있나”라고 높은 수위로 맞받아쳤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의 오차범위 밖 우세가 포착되는 가운데 선거 결과에 따라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여야 어느 쪽이든 패배 시 당 지도부에 치명타가 가해질 거란 관측이다. 특히 여당 김기현 대표의 당내 리더십이 기로에 서있다는 시각이 있다. 김 후보가 대법원 유죄 확정 후 단 3개월 만에 윤석열 대통령이 김 후보를 특별사면했고, 당 지도부가 구청장직에 다시 내보낸 만큼 패배할 경우 김 대표가 그 책임을 짊어지게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보궐선거 패배 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김병준 전 지역균형발전위원장, 주호영 전 원내대표(왼쪽부터) ⓒ시사저널 임준선, 박은숙
보궐선거 패배 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김병준 전 지역균형발전위원장, 주호영 전 원내대표(왼쪽부터) ⓒ시사저널 임준선, 박은숙

김한길·김병준·주호영 등 與 비대위원장 거론

아울러 지난 3월 현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에서 ‘윤심(尹心·윤 대통령 의중)’ 대표라는 다소 불편한 수식어를 품고 당선된 김 대표는 취임 이후 최근까지도 리더십에 대한 의문이 여권 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물론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에 묻혀 집권여당으로서의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에 더해 대통령실조차 김 대표의 얼굴로 총선을 치를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끊임없이 돌면서 총선 전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가능성이 일찍부터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여권 내에선 실제로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 결과에 따라 김 대표의 거취가 결정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패배할 경우 지도부 교체 여론이 내부에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관측이다. 비윤(非윤석열)계 이준석 전 대표는 “패배하게 되면 수도권에서 동요가 일 수 있기 때문에 지도부 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 친윤계 당 관계자도 “이번 보선은 국민의힘이 김 대표 리더십으로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있을지에 대한 시험이 될 것”이라며 “패배하게 되면 당 내부에서 ‘김기현 지도부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구체적으로 비대위원장 등 리더십을 맡을 만한 이름들이 여권 내에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크게 두 갈래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핵심 측근) 혹은 험지 출마에 나설 수 있는 당내 중진 리더십 기용이다. 윤핵관 리더십의 경우 윤 대통령과 가장 보조를 잘 맞추면서도 인지도 있는 인사들이 거론된다. 우선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이름이 나온다. 내각에서 윤 대통령과 가장 보조를 잘 맞추면서도 잠룡으로 거론되며 자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인사들이다. 다만 이들이 장관직을 유지하는 한 바로 비대위원장으로 나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윤 대통령의 멘토이자 든든한 조력자로 평가되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김병준 전 지역균형발전위원장도 거론된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매우 신뢰하는 인사들이면서도 중도 통합형 인사이고, 경험이 많다는 장점도 있으나 결정적으로 당내 세력이 없다는 점이 한계로 거론된다. 윤핵관 중에서도 핵심으로 분류되는 장제원 의원의 이름도 나온다. 다만 장 의원이 전면에 나설 때마다 ‘윤심 논란’이 거세지는 만큼 부담이 작지 않다.

당내 일각에선 TK(대구·경북), PK(부산·울산·경남) 등 영남 지역의 현역 중진 의원 중 험지 출마를 조건으로 비대위원장직을 맡을 가능성도 언급된다. 구체적으로 대구 수성구의 5선 주호영 전 원내대표, 경남 산천·함양·거창·합천군의 3선 김태호 의원 등의 이름이 거론된다.

다만 대통령실과 여당 등 여권 내 상황 전반에 밝은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비대위 전환설(說)은 그저 설일 뿐 대통령실이나 친윤(親윤석열)계들 사이에서도 아직까지 김 대표 외에 다른 옵션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보선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복합적 요인들과 환경적 요소들이 있는데, 김 대표만의 책임론으로 몰아간다면 당내 여론은 물론 당 밖의 여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0월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0월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尹 대통령-이재명 대표의 대리전’ 시각도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 또한 선거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으로 구속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벗지는 못한 이 대표에게 패배의 책임론이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속 리스크에서 벗어났음에도 여전히 내년 총선을 이 대표 중심으로 치르기 어렵다는 당내 시각이 존재하는 만큼 보선 결과가 내부 갈등의 또 다른 도화선이 될 수 있고, 이 대표 입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각에선 이번 선거를 지난 대선에서 맞붙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대리전으로 보기도 한다. 진교훈 후보는 지난 9월말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지켜볼 수만 없었다”면서 김 후보를 향해 “특별사면으로 살아난 ‘윤석열 키즈’의 부끄러움 모르는 출마”라고 꼬집었다. 김태우 후보 역시 같은 시기 인터뷰에서 “57만 강서 구민들에게 민생과 무관한 ‘이재명 구하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강서 구민이 원하는 것은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구청장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이재명 구하기냐, 민생 해결이냐’의 대결이라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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