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그리운 우리의 미래 안내자를 기리다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15 15:05
  • 호수 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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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이 세상에 던진 화두 담아낸 김성곤의 《이어령 읽기》

지난해 2월 작고한 고(故) 이어령 교수는 여전히 살아있는 어떤 이들보다 많은 책을 출간한 인물이다. 24권으로 출간된 《이어령 전집》을 비롯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과 《눈물 한 방울》 등. 저자가 이어령이든 아니든 그를 그리는 마음은 매한가지였다. 그런 가운데 출간된 김성곤 전 서울대 영문과 교수의 《이어령 읽기》는 이어령이 이 땅에 심은 인문의 거목을 더듬을 수 있는 책이다.

이어령 읽기|김성곤 지음|민음사 펴냄|420쪽|1만8000원
이어령 읽기|김성곤 지음|민음사 펴냄|420쪽|1만8000원

이어령 교수는 생전에 동양 분야의 의발(衣鉢·스승이 제자에게 전수하는 깨달음의 물증)을 정재서 교수에게, 서양 분야의 의발은 김성곤 교수에게 전해 주고 싶다고 했다. 《이어령 읽기》는 이 교수가 암 투병 중일 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한 내용을 김 교수가 꼼꼼하게 기록하고 정리한 ‘이어령론’이다. 1부 ‘바람과 물결 사이에서 본 문학, 문명, 문화’를 비롯해 ‘인공지능’ ‘이성, 자연, 문명’ ‘생명사상’ 등 총 4부로 구성됐다.

책은 각 화두를 이 교수가 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김 교수가 해설을 겸한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문학에 대해 이 교수가 “저자의 의도나 정답을 찾는 도식적인 책 읽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사랑과 죽음을 당대의 시대정신과 연관해 읽고 성찰하며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지요”라고 말하면 김 교수는 사무엘 베케트나 솔제니친, 마크 트웨인 등 문인은 물론이고 피카소, 에드워드 사이드, 마이클 샌델 등 수많은 인물이 말하는 문학의 정의를 소개하는 식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대륙 세력을 대표하는 중국과 해양 세력을 대표하는 미국이 헤게모니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선택할 길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다. 결론적으로 한국이 글로벌 선진국이 되기 위해 13가지를 갖추라고 제언한다. 그 가운데는 관대함, 세계시민 지향, 제3의 가능성 인정, 일관성, 왜곡된 평등의식 지양, 노블레스 오블리주, 품위 등 좀 더 성숙한 의식이 대부분이다.

나가는 말을 통해 김 교수는 이 교수가 이 시대 르네상스맨이라고 칭한다. 다 빈치나 갈릴레오, 셰익스피어처럼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으며, 거시적인 안목으로 미시적인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말이다. 갈수록 국제적 갈등까지 커가는 시간이라 그런 관점이 더욱 그립고, 고인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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