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공정위 ‘칼바람’에 긴장하는 중견그룹 오너들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3.10.17 11:05
  • 호수 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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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광동제약 다음 타깃은 어디?… 크라운해태·영원무역·일동제약 등 거론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 내부거래 조사 범위를 대기업에서 중견기업까지 확대하며 일감 몰아주기 단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요 타깃을 식음료·의류·제약 업종으로 정하고 즉각적인 조사에도 나섰다.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 감시망 밖에 머물러온 중견기업들은 초비상 상태가 됐다. 이들의 관심은 향후 공정위의 총부리가 어느 기업으로 향할지에 집중되고 있다.

공정위는 연초 업무계획을 통해 경영권 승계를 위한 편법적인 부의 이전과 부실 계열사 지원 등 부당 내부거래를 감시하겠다고 예고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9월 기존 대기업 위주로 이뤄지던 내부거래 단속망을 중견기업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중견기업은 자산총액 5000억원 이상, 5조원 미만인 기업집단을 말한다. 공정위는 주요 조사 대상으로 식음료와 의료, 제약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업종들을 지목했다.

한 위원장의 중견기업 감시 강화 선언 직후 공정위는 오뚜기그룹과 광동제약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들 기업은 모두 부당 내부거래 의혹에 휘말린 전적이 있다. 오뚜기그룹의 경우 6개 계열사가 일감 몰아주기 논란의 당사자로 거론됐다. 오뚜기라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매년 매출 전량을 그룹 계열사에 의존했다. 지난해에도 전체 매출 5771억원 중 99.8%에 해당하는 5762억원이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나왔다.

서울 중구 남산공원에서 바라본 종로 일대의 대기업 빌딩 숲 ⓒ시사저널 최준필
서울 중구 남산공원에서 바라본 종로 일대의 대기업 빌딩 숲 ⓒ시사저널 최준필

조사 키워드는 중견·식음료·의류·제약

같은 기간 상미식품 92.3%(총매출 1042억원-내부거래액 962억원)와 오뚜기에스에프 83.5%(763억원-638억원), 오뚜기제유 77.0%(1396억원-1076억원), 오뚜기냉동식품 75.7%(687억원-521억원), 풍림피앤피 63.8%(826억원-527억원) 등으로 높은 내부거래 비중을 기록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이익의 상당 부분은 오너 일가에 전달되는 구조다. 이들 계열사가 함영준 오뚜기 회장(25.07%) 등 오너 일가가 지분 41.50%를 보유한 오뚜기의 100% 자회사이기 때문이다. 미담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에게 ‘갓뚜기’라고 불리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광동제약은 광동생활건강이 통행세를 거두고 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최성원 광동제약 부회장이 지분 80%를 보유한 광동생활건강은 그동안 광동제약으로부터 매입한 생수와 음료수 등을 판매하며 매출을 올려왔다. 지난해에는 광동제약으로부터 160억원 규모의 상품을 매입했고 655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이를 두고 광동제약이 직접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광동생활건강이 유용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광동생활건강이 이렇게 확보한 재원은 최 부회장의 지배력 확대에 활용됐다. 이 회사는 현재 광동제약 지분 3.05%를 보유 중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오뚜기 안양공장, 광동제약 본사, 공정거래위원회 청사 ⓒ시사저널 사진자료·박정훈·임준선

경영권 승계 위한 편법·부당 지원 대상

공정위의 칼바람은 향후 중견기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전망이다. 공정위는 중견기업의 내부거래 현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다른 기업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중견기업들의 최대 관심사는 공정위의 다음 조사 대상이다. 이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일부 기업의 사명이 오르내리고 있다.

먼저 식음료 업종에서는 크라운해태그룹이 거론된다. 윤영달 크라운해태그룹 회장의 장남인 윤석빈 크라운제과 사장(59.60%) 등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두라푸드는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끊임없이 이름을 올려왔다. 매년 매출 전량에 가까운 일감을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받아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도 98.26%(178억원-175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윤 회장 일가가 크라운해태홀딩스를 통해 간접 지배하는 코디서비스코리아의 내부거래 비중도 99.98%(503억원-503억원) 수준이었다.

사조그룹의 시스템통합(SI) 업체인 사조시스템즈도 공정위의 감시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39.7%)과 주지홍 사조그룹 부회장(17.9%)이 지분을 보유한 사조시스템즈는 한때 매출의 90% 이상을 그룹 계열사의 일감으로 채우며 사세를 확장했다. 그 결과 사조시스템즈는 주지홍 부회장 중심의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후 사조인터내셔날을 합병하며 내부거래 비중이 일부 희석됐지만, 여전히 높은 내부거래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이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47.84%(149억원-71억원)였다.

hy그룹(옛 한국야쿠르트)도 공정위 조사권 내에 있다. 윤호중 hy그룹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팔도(100%)는 지난해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688억원(12.13%) 규모의 일감을 받았다. 같은 기간 그가 팔도를 통해 지배하는 비락과 팔도테크팩의 내부거래 비중도 각각 68.52%(1443억원-989억원)와 62.34%(522억원-325억원)였다.

이 밖에 SPC그룹도 SPC삼립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편법 승계 논란이 있었지만, 2020년에 이미 공정위로부터 6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농심그룹도 율촌화학과 엔티에스, 호텔농심, 농심미분, 태경농산, 농심엔지니어링 등이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지난해 자산 5조원을 넘기며 대기업집단에 편입됐다.

의류 업종에서는 노스페이스로 잘 알려진 영원무역그룹이 눈에 띈다. 그 중심에는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일가가 지분 45.59%를 보유한 YMSA가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708억원 중 594억원(83.90%)을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지원받았다. YMSA가 그룹 지주사인 영원무역홀딩스의 최대주주(29.09%)라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이 회사가 2세 승계의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바바패션그룹은 문인식 바바패션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계열사 다수가 높은 내부거래 비중을 기록했다. 그룹 핵심사인 바바패션은 지난해 전체 매출 2607억원 중 63.48%에 해당하는 704억원을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고, B&B인터내셔날과 BJT인터내셔날의 내부거래 비중도 각각 81.68%(61억원-50억원)와 21.15%(1201억원-254억원) 규모였다. 바바더닷컴의 경우는 2021년 전량에 가까운 매출(133억원)이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나왔다.

BYC그룹도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한 지적을 받아왔다. 한석범 BYC 회장(16.33%)과 그의 장남 한승우 BYC 상무(58.34%) 등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신한에디피스는 지난해 내부거래로 전체 매출 59억원 중 17억원(28.86%)을 채웠다. 이 밖에 한 회장(60%) 등 오너 일가 지분율이 100%인 남호섬유와 한 회장의 누나 한지형 BYC 이사가 최대주주(29.4%)인 백양 등도 내부거래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제약 업종에는 일동제약이 있다. 일동홀딩스 최대주주(17.02%)로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SI 업체 CMJC가 주목을 받는다. 윤웅섭 일동제약 대표가 지분 90%를 보유한 CMJC는 매년 매출 대부분이 그룹 계열사에서 나왔다. 지난해에도 전체 매출의 100%에 가까운 57억9626만원을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대웅제약에도 공정위의 시선이 향할 것으로 분석된다. 윤재승 대웅제약 최고비전책임자 등 오너 일가가 지배하는 엠서클과 디엔홀딩스의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이 각각 42.88%(645억원-276억원)와 31.20%(192억원-6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한국유나이트제약도 강원호 대표(44%) 등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100%인 한국바이오켐제약의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이 53.97%(525억원-283억원)로 높게 나타났다.

ⓒ시사저널 사진자료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9월14일 중견기업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시사저널 사진자료

“중견기업, 국민 생활 밀접 업종에서 큰 영향”

중견기업은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 감시망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공정위가 그동안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을 위주로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 2018년 이후 대기업집단의 부당 내부거래 제재 건수(시정명령 이상)는 21건이었던 반면, 중견기업은 5건에 불과했다. 이렇다 보니 대기업들은 저마다 사업구조 재편, 기업 매각, 오너 일가 지분 처분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반면, 중견기업들은 여전히 감독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공정위도 중견기업 이사회 내 오너 일가의 비중이 높고 내·외부 견제장치가 부족해 적극적인 감시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시망 확대의 배경으로 들었다. 전문가들은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적절한 감독이 중견기업들의 경영 투명성과 기업문화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중견기업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특히 그동안 정부로부터 물가 안정 압박을 받아온 식음료 업계에서는 사정기관을 동원해 물가 관리에 나섰다는 볼멘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 관계자는 “중견기업들은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업종에서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며 “시장 지배력이 강한 중견 집단의 부당 내부거래에 대해 엄정히 법을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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