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네타냐후, 궁지 몰리다가 전쟁 지도자로 기사회생
  •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14 12:05
  • 호수 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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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화된 정치적 입지 반전 노리며 하마스에 대한 강력한 보복 나서

10월7일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의 일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1200명이 넘는 인명 피해를 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향후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하마스가 음악축제 현장과 주택단지를 공격해 주민을 무차별 살해하고 100명 이상을 납치해 갔다는 사실 앞에 이스라엘 국민은 격앙된 상태라고 ‘예루살렘포스트’와 ‘타임오브이스라엘’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BBC방송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에 가자지구에서도 1000명 이상이 숨졌다고 가자지구 보건 당국이 밝혔다.

하마스 공격으로 가장 주목받는 이가 강경파인 네타냐후 총리다. 지난해 12월 세 번째 집권했지만 이번 사태 직전까지 국내 정치적 입지가 잔뜩 위축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2019년 이래 부패 재판을 받아온 데다 올해 초 시동을 건 사법 개혁 시도가 예비군을 다수 포함한 반대 세력의 시위에 부딪혀 연기되면서다. 하지만 이번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국면이 급변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정부의 대응은 단호하고 신속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공격 당일 “전쟁”을 선포하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그는 이제 ‘적 앞에 일시 단결한 국민’을 이끌고 하마스를 응징할 전쟁 지도자로 거듭나면서 정치적으로 기사회생하고 있다.

ⓒEPA 연합
10월8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네타냐후 총리(왼쪽)가 하마스 기습 공격에 대한 상황 평가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EPA 연합

反네타냐후 진영도 전시 정쟁 중단 선언

반(反)네타냐후 진영을 포함한 이스라엘 정치권은 갑작스럽게 정치적 휴전을 맞았다. 네타냐후가 10월11일 군사령관과 국방부 장관을 지낸 야당 지도자 베니 간츠와 비상연립정부 및 전시내각 구성에 합의하면서다. 전시내각은 네타냐후와 간츠 그리고 집권 연립내각에 포함됐으면서도 지난 사법 개혁 시위 당시 반대 입장을 밝혔던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까지 포함됐다. 눈여겨볼 점은 간츠가 전시내각 구성 합의를 발표하면서 “이스라엘 의회는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전쟁과 무관한 법안은 통과시키지 않기로 했다”고 밝힌 점이다. 전시 정쟁 중단을 선언한 셈이다. 정쟁에 시달리며 분열되고 서로 반목했던 이스라엘이 공동의 적인 하마스 앞에서 힘을 모으는 분위기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상비군이 12만 명 수준인 이스라엘의 국방부는 10월10일 하마스 응징을 위해 예비군 중 36만 명을 48시간 이내에 소집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그러자 국내에서 대부분의 대상자가 즉각적으로 응소한 것은 물론 해외에선 귀국하려는 예비군으로 이스탄불 등의 국제공항이 붐비고 이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전세기가 뜰 정도였다고 유로뉴스 등이 보도했다. 이스라엘 국내에선 기갑차량을 몰고 가자 쪽으로 출동하는 부대 앞에 주민들이 모여 박수를 보내고 아이스크림과 간식을 챙겨주는 모습이 유튜브 영상에 올랐다.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방탄복 차림으로, 군 사령관은 방탄복과 헬멧에 자동소총을 멘 단독군장 차림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야전 매뉴얼대로 번쩍이는 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권위·계급을 내세우거나 전시에 정치적인 이익을 챙기겠다는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국민도 지도부도 군도 정치권도 비장한 상황이다.

이번 사태로 전 세계의 도마에 오른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마스의 로켓을 중간에서 차단해온 이스라엘의 대공 방어 시스템인 아이언돔과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았던 이스라엘의 정보 당국이다. 아이언돔은 이번에 완전한 방어를 하지 못하고 “뚫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아이언돔이 뚫린 게 아니라 하마스가 로켓을 다량·동시 발사하면서 방어 용량을 넘어선 일부가 민간 지역에 떨어진 것으로 본다. 원래 아이언돔은 높은 비율로 하마스 로켓을 공중 요격해 왔지만 100%는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번에 정보 당국이 하마스 공격을 사전에 감지해 대응하지 못했다는 ‘정보 실패’ 지적에 대해선 사실상 시인했다. 하마스는 드론으로 통신시설과 감시장비를 무력화한 후 공중에선 동력패러글라이딩으로, 지하에선 터널로, 지상에선 불도저와 오토바이를 앞세워 보안장벽을 뚫고 이스라엘 지역에 진입했다. 하마스 대원들은 모의 전투장까지 차려놓고 1년 가까이 기습작전을 연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이를 까맣게 모르다 기습을 당하고 민간인을 포함한 국민의 생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이스라엘 정보 당국과 군 당국은 상당한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정보 커뮤니티는 해외담당 모사드와 군사담당 아만, 그리고 국내와 서안·가자지구를 담당하는 신베트로 나뉘어 있다. 따라서 하마스는 신베트 담당이다. 하지만 군사정보기관 산하의 휴민트 담당 504부대와 하마스에 이번 공격을 위한 군사물자·작전·교육을 제공했을 것으로 보이는 해외의 정보를 담당한 모사드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정보기관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근본적인 개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미국의 지지 등 국제 정세도 유리

국제 정세도 네타냐후에게 유리하다. 이번 사태로 미국인 22명이 숨지고 20명이 실종돼 미국도 분노하는 분위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사건 즉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이스라엘에 파견했다. 지중해에 배치됐던 항모 제럴드 포드함을 이스라엘에 더욱 가까운 동지중해로 이동시켰다. 항모를 추가로 보낼 수도 있다. 이스라엘을 지원할 무기와 탄약도 공수하고 있다. 대체로 양비론을 보여왔던 유엔과 유럽연합도 하마스의 폭력과 민간인 학살, 납치를 맹비난했다. 다만 물과 전기 공급까지 끊는 가자지구 봉쇄에는 반대 입장을 보였다.

네타냐후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전쟁을 주도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하마스에 전례 없이 강력한 타격을 안길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가자지구는 거대한 지하요새인 데다 하마스는 잃을 것도 물러날 곳도 없는 처지여서 강력한 저항이 예상된다. 이스라엘 측의 손실과 가자지구 주민의 ‘부수적 피해’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한이 원한을 부르는 형국이다. 이 과정에서 인질이 된 이스라엘인과 외국인의 운명은 더욱 미로에 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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