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룹 중 유일한 순환출자 고리, 언제 어떻게 끊을까 [정의선 회장 3년]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10.1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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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지분율로 그룹 경영권 전반 행사한다는 비판 여전
지배구조 정점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 위해선 수조원 필요
장기적 성장·투자 위해선 순환출자 해소해 투명성 높여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월4일(현지 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월4일(현지 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체제가 오는 14일 3주년을 맞는다. ‘전동화’로의 전환, ‘차세대 모빌리티 게임체인저’ 등 그룹의 체질을 바꾸는 데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 회장에게 남은 과제가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핵심 계열사의 낮은 지분율로 그룹 경영권 전반을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에 늘 노출돼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계에서는 순환출자 구조 해결과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현대차그룹의 장기적인 성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이 지난 6월14일 서울 용산구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6월14일 서울 용산구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지배구조 개편 시도 이후 감감무소식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로 탈바꿈하기 위한 현대차그룹의 아킬레스건은 오너의 취약한 지배구조다. 10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탓이다. 이를 해소하고자 지난 2018년 지배구조 개편안을 꺼내들었지만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대로 무산된 이후 좀처럼 묘수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장 큰 고민은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의 정의선 회장 지분이 0.32%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7.19%이라 상속 방법도 거론되고 있지만 양도소득세와 상속세를 감안하면 최소 10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 회장이 지분을 매수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에 필요한 실탄이 만만치 않다. 11일 기준 현대모비스의 시가총액은 약 22조원에 달한다. 통상 그룹 총수가 지주회사 지분 3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6조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하다.

공식적으로 발표하진 않았지만 정 회장은 다각적으로 자금 확보 루트를 모색해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그룹에 매각하며 약 6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기도 했다. 동시에 칼라일을 3대 주주에 올리며 우호 지분으로 흡수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정 회장의 지분율(20%)이 가장 높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계열사다.

지난해 시도했던 현대엔지니어링 기업공개(IPO)도 실탄 확보의 일환이라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11.72%를 보유하고 있다. 상장에 성공했을 경우 그가 거머쥘 자금은 3000억~4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수요예측 흥행 실패로 상장을 포기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4월4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3 서울모빌리티쇼’를 방문해 고스트로보틱스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4월4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3 서울모빌리티쇼’를 방문해 고스트로보틱스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보스턴다이내믹스 나스닥 상장? 실적 부진이 발목

해외로 눈을 돌릴 가능성도 있다. 2021년 정 회장이 사재 2400억원을 들여 지분 20%를 확보한 미국 로봇 전문 기업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나스닥 상장이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8억8000만 달러(약 9600억 원)를 들여 이 기업을 인수했는데 정 회장도 사재 출연을 했다. 정 회장 취임 후 첫 대규모 인수합병(M&A)이었다. 재계에선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상장 이후 정 회장의 지분을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는 시나리오를 전망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상장 여부는 수년 내로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최대주주였던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지분을 사면서 2025년 6월 내로 상장을 통해 소트트뱅크의 잔여 지분(20%)을 매각할 수 있는 풋옵션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상장하지 못할 경우 정 회장을 비롯해 현대차그룹이 소프트뱅크 지분을 인수해야 한다. 다만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지난해 상반기 1969억원의 순손실을 보는 등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 이에 수년 내로 시장에 성장 가능성을 제시해야 나스닥 상장이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재계에선 정 회장과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시간이 더는 지체되면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 사업 부문별 매출 비중 목표를 자동차 50%, 도심항공모빌리티(UAM) 30%, 로봇 20%로 설정했다. 신사업 분야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자칫 그룹 전체가 정 회장의 지배력 강화에 신경이 쏠린다면 신사업으로 점찍은 UAM나 로봇을 향한 투자 시점을 실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전기차로의 전환에 속도를 올리고 있지만 그룹 지배력 강화 역시 정 회장이 해결해야 할 난제”라며 “지배구조 투명성을 위해서도 향후 청사진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0년 10월 현대차그룹 총수 자리에 선임된 후 첫 대외 공개 일정인 수소경제위원회에 참석한 정 회장은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질문에 “고민 중”이라고 답한 바 있다. 3년이 넘은 지금 정 회장이 이 질문에 답을 내놓을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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