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의 영화 투자 ‘Stop’이 아닌 ‘Nonstop’ 돼야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25 11:05
  • 호수 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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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투자 부진이 영화사업 중단 루머로 확대돼
과감한 실험정신 강조한 이재현 회장 경영철학 곱씹어야

국내 영화계가 침체를 겪고 있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 3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범죄도시3》 《밀수》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전부다. 세 작품 이외에 지금까지 200만 관객을 모은 국내 영화도 전무한 상황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올해 가장 흥행한 세 작품 중 CJ의 배급 작품이 없다는 것이다. CJ의 영화 투자 실적 부진은 급기야 CJ가 영화사업에서 발을 뺀다는 루머로 확대됐다.

2019년 11월5일 엠넷이 투표 조작 의혹을 받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엑스(X) 101’(‘프듀X’)과 관련해 사과 입장문을 냈다. 앞서 경찰과 검찰은 안아무개 PD 등 프로그램 제작진에 대해 사기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CJ ENM 사옥 ⓒ연합뉴스

이익보다 가치 창출 중시했던 CJ

국내 영화계의 4강으로는 CJ ENM, NEW,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손꼽힌다. 말이 4강이지 영화 업계에서 CJ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소비자와 영화관객에게 더 친숙한 브랜드인 CJ엔터테인먼트는 감독 및 제작사에 때로는 권력, 때로는 파트너로 다가오며 영화계의 막강 파워를 유지했다. 자사 배급 영화에 대한 밀어주기 경쟁, 독과점 논란은 늘 영화계를 쥐락펴락한 CJ ENM 영화드라마사업본부를 따라다닌 이슈였다.

CJ엔터테인먼트(현 영화드라마사업본부)는 2019년까지 압도적 영향력을 영화계에서 유지했다. 2019년 영화 《극한직업》이 1626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박스오피스 관객 2위와 역대 박스오피스 매출 1위를 찍는 성과를 거뒀다. 《기생충》은 할리우드 영화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사에서 전무후무한 업적을 달성했다. 참고로, 칸영화제 작품상을 유일하게 배출한 배급사도 CJ ENM이다.

어려움은 늘 순식간에 찾아온다. 코로나19로 인한 외부환경 변화는 항상 업계 1위 기업을 먼저 타격한다. 호황을 거듭하던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엔 찬바람이 불었다. 동시에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열풍이 영화계의 흐름을 뒤바꿔 놓았다. CJ의 문을 제일 먼저 두드렸던 영화감독 및 제작자는 이제 머릿속 0순위로 넷플릭스, 디즈니를 떠올린다. 《오징어 게임》과 《수리남》은 CJ가 아닌 넷플릭스를 선택했다. 그사이 흥행불패 최동훈 감독이 내놓은 CJ의 《외계+인 1부》는 지난해 153만 관객 동원에 그쳤고, 《신과 함께》 시리즈로 ‘쌍천만’ 신화를 창출한 김용화 감독의 《더문》은 51만 관객에 그쳐 CJ의 영화 투자 중단 루머를 가속화시켰다. 지금까지 1000만 동원 영화를 7편, 500만 이상 동원 영화를 31편 제작·배급한 CJ의 명성에는 턱없이 부족한 성과다. OTT의 공세와 영화관 CGV의 위상 하락은 CJ엔 빅 이슈나 다름없다.

결국, CJ의 영화 투자 중단 루머는 업계를 넘어 소비자에게까지 확대됐다. 시장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이유는 그간 CJ의 게임사업 매각, 투자증권 매각, 투섬플레이스 매각 및 정리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CJ는 그룹 차원에서 매각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결과는 매각을 통한 핵심 계열사 위주의 선택과 집중이었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지금도 눈덩이처럼 굴린다.

덕분에 CJ ENM이 올해 받게 될 경영 성적표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영화와 드라마가 적자 폭을 키우면서 손실 규모는 503억원으로 늘어났다. 그룹 차원의 매출은 3년 연속 증가하고 있지만, 부채 역시 3년 연속 늘어나는 상황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연일 CJ그룹의 경영 위기설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 및 드라마 팬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CJ ENM의 적자 폭과 올해 배급한 CJ의 영화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는 얘기뿐이다. 그럼에도 CJ가 영화 투자를 중단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철학을 알아야 한다. 이재현 회장은 매출 및 이익보다 가치 창출을 더 중시하는 오너이자 CEO다. 참고로, CJ가 콘텐츠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는 1996년이다. 제일제당 영화사업본부로 시작한 CJ의 콘텐츠 사업은 출범 이후 20년 넘게 적자를 거듭했다. 콘텐츠 사업은 겉은 화려하지만 실속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과 이동통신사, 금융사들 역시 1990년대 영화, 드라마, 음악 등 콘텐츠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모두 발을 뺐다. 쉽게 말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돈은 많은데 이익이 나오지 않는다면 사업가는 발을 빼는 게 상식이다. 20년 넘게 손실을 보면서도 CJ가 영화나 콘텐츠 사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이재현 회장의 철학에서 출발한다. 그는 영업이익보다 파급효과를 중시한다.

CJ엔터테이먼트가 배급해 크게 성공한 영화 《극한직업》과 《기생충》의 포스터 ⓒCJ ENM 제공

OTT 공세에도 효율적인 대응 못 해

2010년 CJ E&M센터가 개관했을 때 이재현 회장은 공개적으로 임직원 및 언론사 기자들 앞에서 “10년 내 국내 가요가 전 세계를 흔들 것이고, 국내 영화와 드라마가 전 세계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는 국내 가요, 영화, 드라마가 아시아 일부에서만 인기를 누린 시기였기에 해당 메시지를 심각하게 경청한 이는 많지 않았다. 일부 임직원은 “회장의 포부가 너무 크다”며 불가능한 얘기로 이 메시지를 받아들였다. 10년이 지난 시점, 그의 말대로 국내 K팝의 빌보드 1위 소식은 더 이상 놀랍지 않은 뉴스가 됐고,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에미상 작품상을 차지했다. 지속된 투자로 인한 거듭된 손실에도 콘텐츠 사업을 CJ가 놓지 않는 이유다.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은 막대한 영업이익보다 한류 또는 K콘텐츠, K푸드를 통한 혁신적 가치와 파급효과 창출을 늘 임직원에게 주문한다.

문제는 거듭된 손실보다는 다른 데 있다. 1990년대 CJ는 영화(CJ엔터테인먼트)에서 방송(CJ미디어)으로, 그리고 음악(엠넷미디어)에서 게임(넷마블)으로 콘텐츠 산업의 밸류체인을 구축하며 기업가 정신을 극대화시켰다. 역동적인 도전으로 2000년대 CJ는 취업 준비생들이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에 올랐으며, 대중에겐 가장 젊은 기업으로 각인됐다. 지금은 그 자리를 카카오에 내줬고, 혁신적인 변화 또한 최근엔 보이지 못했다.

넷플릭스, 쿠팡 등 OTT의 공세가 변수 아닌 상수가 됐음에도 CJ는 효율적으로 이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 결과 콘텐츠 업계 영향력은 CJ에서 OTT로 넘어갔다. 이재현 회장은 새로운 가치에 방점을 두고 있는데, 지난 몇 년간 CJ의 영화사업은 검증된 감독과 작품에만 발을 들여놓았고 돌아온 부메랑은 승자의 저주였다. CJ ENM의 역동성은 과감한 실험정신을 통한 기업가 정신에서 나온다. 승자의 저주는 두 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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