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윤발 “빈손으로 왔기에 빈손으로 가는 게 이치”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21 13:05
  • 호수 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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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산 기부한 영원한 ‘따거’ 주윤발, 부산국제영화제로 14년 만에 내한

1980년대, 우리 모두의 ‘따거’ 주윤발이 14년 만에 내한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하기 위해서다. 알려진 바와 같이 주윤발은 ‘홍콩 누아르’의 대표 배우로 지금까지 1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한 세계적인 스타다.

국내 취재진과 만난 그는 여유와 재치, 내공과 철학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행사에서 부드럽지만 강렬하게 좌중을 압도했다. 지난 7월 건강 이상설이 돌기도 했지만 68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건강한 신체와 뜨거운 열정으로 현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올해 신작 영화를 선보이는 주윤발은 “영화가 없으면 주윤발도 없다”는 말로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50년의 연기 경력을 자랑하는 주윤발은 알려진 바와 같이 《영웅본색》(1986) 이후 아시아에서 시대의 아이콘이자 청춘의 히어로가 됐다. 실제로 주윤발은 80~90년대까지 한국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영웅본색》에서 선보인 트렌치코트와 성냥개비를 입에 무는 동작은 TV와 광고, 뮤직비디오 등에서 여러 차례 패러디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인기에 힘입어 한국 광고에 나온 최초 외국인 모델이 되기도 했다. “싸랑해요 밀키스”가 그 제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검소한 생활과 다양한 기부 활동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배우이기도 하다. 특히 2018년에 약 8100억원이 넘는 재산을 기부하기로 선언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기부에 관한 질문에는 “제가 힘들게 번 돈을 아내가 기부한 것”이라며 모든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 현재 그는 아내에게 월 15만원 남짓한 용돈을 받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자신이 유일하게 ‘플렉스’하는 취미가 카메라 렌즈 구입이라며 최근에 산 중고 렌즈 자랑을 하기도 했다. 주윤발은 평소 중국 당국을 의식하지 않는 소신 발언과 행동으로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대중 스타이기도 하다. 2009년 《드래곤볼 에볼루션》 개봉 이후 14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여전히 한국인이 사랑하는 배우다.

“개인적으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어쩌면 한국 음식과 잘 맞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제주도에서 수개월간 촬영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국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좋아했던 음식이 갈비탕에 밥을 말아서 김치와 함께 먹는 것이다. 한국 스태프들이 양식을 먹자고 설득해도 갈비탕을 고집했던 기억이 있다. 남대문시장에서 번데기를 먹었던 추억도 생생하다.”

오랜 시간 활동할 수 있는 비결도 궁금하다.

“‘배우’ 주윤발은 대중을 만날 때만 존재한다. 이 자리를 벗어나면 나는 지극히 보통 사람이다. 특별한 시선을 가지고 저를 슈퍼스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러분과 다르지 않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했다.

“50년 만에 큰 상을 받았다. 부산에 온 후로 매일 아침 러닝을 하는데 많은 분이 저를 알아봐 주신다.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기분이 좋다. 인생에는 두 번의 갑자(甲子)가 있는데, 하나의 갑자는 60년이다. 두 번째 갑자에 들어선 저는 올해 일곱 살이다. 데뷔 50주년에 이렇게 큰 상을 받아서 기쁘다.”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작은 무엇인가.

“모든 작품을 사랑하지만 《영웅본색》은 의미가 남다르다. 배우로서 터닝포인트가 됐던 작품이다. 방송국을 떠나 영화배우로서 첫발을 내딛게 했기 때문이다. 《와호장룡》 《첩혈쌍웅》 또한 제게 많은 변화를 있게 한 작품이다.”

주윤발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결국 영화를 통해 지식을 쌓았고, 인생을 배웠다. 되돌아보면 영화를 찍으면서 참으로 많은 경험을 했다.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다른 삶도 살아봤다. 영화가 없었다면 지금의 주윤발도 없다.”

홍콩 영화 산업이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고 있다.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서 한마디 해달라.

“1980년대 홍콩 영화를 사랑하고 기억해 주시는 분이 참 많다. 안타깝게도 현재 홍콩 영화계는 검열과 제한으로 힘든 상황이다. 영화 한 편을 제작할 때 각종 부서의 승인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영화인들은 홍콩의 정신이 깃든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 콘텐츠가 가진 창작의 자유를 높이 산다. 한국 영화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발휘하는 데는 자유가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저 역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한국 영화를 보면서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영화 시장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전 세계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이 극장에 가지 않고 OTT라는 플랫폼에 익숙해졌다. 다시 극장이 붐빌 수 있도록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영화인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신작을 발표했다.(영화 《원 모어 찬스》는 빚에 허덕이며 매일 카지노에 출근 도장을 찍는 왕년의 도신 광휘(주윤발)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자폐증 아들과 함께 살며 벌어지는 유쾌한 감동 드라마다.)

“여간 긴장되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도전하는 마음으로 참여한 작품이다. 그래서 특별하다.”

어느덧 68세가 됐다. 나이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깊게 파인 주름도 나의 일부다. 배우로서는 오히려 젊었을 때와 다른 연기를 보여줄 수 있어 기대감이 크다. 나이가 드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다. 탄생이 있으면 죽음도 있다. 그래서 무서울 게 없다.”

2018년에 8000억원대 재산 기부로 화제가 됐다.

“내가 한 게 아니라 아내가 한 것이다. 사실 난 하고 싶지 않았다. 힘들게 번 돈 아닌가. 하하. 현재 나는 아내에게 용돈을 받으며 살고 있다. 덧붙이자면, 어차피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안 가지고 왔기에 갈 때도 아무것도 안 가지고 가도 상관없다. 난 흰쌀밥 두 그릇이면 된다. 어차피 아침은 안 먹는다. 지금은 당뇨가 있어 한 그릇만 먹어도 된다.”

지난 7월 건강에 대한 루머가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아프다는 게 아니라 아예 죽었다고 가짜뉴스가 떴더라.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이라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이 어느 정도 나이 들면 가장 중요한 게 취미를 찾고 건강을 챙기는 것이다. 다음 달에 홍콩에서 하는 하프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러닝을 했다. 첫 갑자엔 배우로 살았는데 두 번째 갑자는 마라토너로 살 수도 있겠다 싶다. 하하.”

요즘 인생의 화두는 무엇인가.

“‘현재를 살라.’ 이 시간은 지나면 끝이다. 결국 전부 지나가기 때문에 현재가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불학(佛學)에 나오는 ‘이 순간만이 진짜다’라는 개념이 요즘 제 화두다. 지금 이 순간, 저와 함께 있는 여러분에게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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