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기어이 ‘중동전쟁 확전’ 방아쇠를 당길까 
  • 이동진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21 10:05
  • 호수 177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헤즈볼라 등 ‘친이란’ 시아파 무장세력들 섣부른 참전 어려울 것이란 전망
테헤란의 결정이 중동 화약고 폭발 좌우할 듯

10월15일 이슬람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를 향해 대전차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시민 2명이 죽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레바논의 현 집권 세력이자 친이란 세력인 헤즈볼라가 하마스와 연대해 이스라엘 북부에 ‘제2의 전선’을 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헤즈볼라의 공격이 있은 다음 날, 이스라엘 언론 ‘예루살렘포스트’는 이스라엘 지상군의 가자지구 투입 지연의 가장 큰 이유를 헤즈볼라 참전 가능성으로 꼽았다.

1982년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단에서부터 게릴라전을 펼쳐오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갈릴리 평화작전’을 펼쳤다. 이 작전의 일부로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 도시에 대해 무차별적 폭격을 가하는데 이때 창설된 시아파 무장단체가 헤즈볼라다.

1980년 후반부터 이란은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전폭 지지하기 시작한다. 당시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서구 열강으로부터 아랍 국가들의 자주독립을 도우며 지역 헤게모니를 도모하고 있었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을 서구 열강의 일부로 여기고 지역 시아파 무장단체들을 지원함으로써 이스라엘을 중동에서 몰아내고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려 하고 있다.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파리 1대학에서 중동 역사를 가르치는 피에르 베르메렌 교수는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 세계 내 ‘저항의 축’이 이란 중심으로 재구성되었다고 평가한다. 전통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해 오던 아랍 국가들이 미국 주도하에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면서 외교정책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베르메렌 교수는 “이제는 ‘시아파 초승달 지대’에 속하는 국가와 무장단체들이 실질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이란의 개입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테헤란의 결정에 따라 최근 비교적 잠잠했던 중동 지역에서 다시 대갈등이 발생할 위험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군 탱크들이 10월18일 가자지구의 국경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AFP 연합
이스라엘군 탱크들이 10월18일 가자지구의 국경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AFP 연합

“헤즈볼라, 대규모 전면전 펼치기 어려울 것”

이란의 ‘IRANA 통신’에 따르면 최근 이란 외교부 장관인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은 ‘새로운 전선’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전해 왔다. 또한 헤즈볼라 수장인 하산 나스랄라도 “오늘 선제공격을 하지 않으면 내일은 베이루트(레바논의 수도)에서 이스라엘군과 싸워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전선’은 레바논 남단에서부터의 헤즈볼라의 공격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헤즈볼라가 하마스보다 더 탄탄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15만 발의 미사일과 함께 10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카타르 국영방송 ‘알자지라’는 “정예군과 예비군을 포함해 최소 6만 명의 병력을 헤즈볼라가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한 2006년 이스라엘과의 ‘34일 전쟁’을 계기로 헤즈볼라는 군사력을 크게 향상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거기에 더해 헤즈볼라 대원들이 시리아 내전에도 참여했기에 실전 경험도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헤즈볼라와 더불어 친이란 ‘저항의 축’에 속하는 다양한 시아파 무장단체도 이스라엘과 미국에 위협을 더하고 있다. 특히 ‘시아파 초승달 지대’의 중요 국가인 이라크에서는 친이란 무장단체인 카타이브 헤즈볼라가 이라크 내 미군기지를 겨냥해 공격을 단행할 수도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가운데, 예멘에서는 친이란 후티 반군도 미국의 개입을 강하게 비판하며 드론 공격과 미사일 공격 등 여러 군사적 옵션을 생각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10월15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이스라엘 영토 가까이에 재배치된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이라크 안보 전문가 무클라드 하짐은 실제적으로 어느 세력 하나 섣불리 참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아 주목된다. 그에 따르면 레바논의 경우 “현재 정치·경제 상황 악화로 대규모 전면전을 헤즈볼라가 펼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시리아도 마찬가지로 “알 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 땅을 다시 한번 전쟁터로 만들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더욱이 미 항모 2척이 동지중해에 배치된 상태에서 이라크나 예멘 무장단체들이 공격을 실행하기 전에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는 게 하짐의 주장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란의 개입으로 이번 사태가 중동전쟁으로 확전하는 것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지지구 점령 가능성 낮게 봐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지상군 투입을 통해 “하마스를 부숴버리고, 괴물들을 척결할 것”이라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방의 중동 전문가들은 하마스 소탕 작전 시나리오들을 분석 중이다. 프랑스 일간지 ‘프랑스24’는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3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첫 번째 가능성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장기 점령하게 된다면 이스라엘은 200만 명의 가자지구 주민들과 끊임없는 대치 속에서 어마어마한 금전적·인적 손실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낮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한다면 주변 아랍국들과의 관계 정상화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는 물 건너가게 될 것이므로 미국은 어떻게든 이 시나리오를 막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가능성은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가지지구에서 몰아내고 현재 서안지구 통치 기구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가자지구를 서안지구와 더불어 통치하는 방안이다. 하마스와 PA는 서로 앙숙 관계로서 2006년 하마스가 투표에서 승리한 후 PA를 가자지구에서 쫓아냈다. 실제 팔레스타인의 압바스 수반은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하마스의 이번 기습공격에 대해 선을 확실히 긋기도 했다. 하지만 압바스가 최근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너무 낮은 지지를 받고 있어 가자지구 주민들이 반기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세 번째 가능성은 가자지구 내에 비무장지대(DMZ)를 설치하는 방안이다. 이 비무장지대에는 레바논 남부처럼 유엔 평화유지군 주둔 옵션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어떠한 시나리오가 펼쳐지든 이스라엘 지상군이 투입되면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소탕할 수는 있겠지만 민간인에게 무차별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를 일으켜 결국 그 분노가 다시 이스라엘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