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尹정부 띄우고 與野 공감한 ‘의대 정원 확대’…가시밭길 이유는?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10.2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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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뺑뺑이’ 해소 위한 대책인데…국회 계류된 12개 법안도 통과 미지수
의료계 반발도 숙제…“근본 원인인 필수의료 근무환경 개선, 재정지원부터”
28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확진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소아과 병원은 아침부터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새벽 6시부터 일어나서 20명이 넘는 소아과 오픈 대기줄 속에 서는 것이 일상이 됐다. 6시30분에 번호표를 배부 받고 현장에서 기다려야 8시30분부터 접수가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포화상태에 달한 응급실 현장도 녹록치 않다. 응급환자를 구급차에 태우고 몇 번이나 다른 병원으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처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응급의학과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의 공백이 가시화되면서 환자와 가족들의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다른 분과에 비해 임금도 낮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만큼 의사들의 기피 현상이 심화돼서다. 이에 윤석열 정부에선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강력 주장하고 있다. 다만 의료계에서 거센 반발을 하며 여전히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파격적으로 늘리겠다는 기존의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의대 입학 정원은 2006년 3058명으로 줄은 이후 17년째 이 정원이 유지되고 있다. 고령화에 대비해 의대정원을 수천 명씩 늘리는 독일·영국 등 선진국과 대비된다.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은 당장 오는 2025년도 의대 입학 정원부터 1000명을 시작으로, 임기 내 최대 3000명 규모까지 늘리는 방안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의대-지역의사제 도입’ 이견 보이는 與野

국회 여야도 의대 정원 확대라는 ‘큰 틀’에서 공감대를 이뤘다. 다만 세부 사항에 대해선 서로 동상이몽이다. ‘조건부 찬성’ 입장을 밝힌 민주당은 ‘공공·지역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 도입’이 전제조건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전남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신정훈·김승남·김원이·김회재·소병철 등)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과 삭발, 대통령실 앞 집회 등을 통해 전남 지역 의대 신설도 촉구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에서 주장하는 공공의대 설치, 지역의사제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19일 기자들과 만나 “(야당이 제시한 조건의) 필요성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20일 최고위원회의 직후 민주당이 제시한 조건에 대해 “어려운 과제를 푸는데 있어서 그간 정치적인 입장차가 있던 과제들을 다 같이 논의하기 시작하면 문제 풀기가 더 어려워 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처럼 여야 이견이 큰 만큼 당장 계류된 법안 합의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현재 국회에는 총 12건의 공공의대 및 지역의대 설립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국민의힘에선 5건(이용호·강기윤·전봉민·김형동·성일종), 민주당에선 7건(서동용·기동민·김성주·김교흥·김원이·소병철·김회재)이다. 해당 법안들은 의대 졸업 후 일정 기간 지역에서 일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다만 공공의대 설치 지역 등과 관련해선 각 의원들의 지역구별로 입장이 상이했다.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 당정 협의’가 열린 2020년 7월23일 국회 정문 앞에서 대한의사협회가 “문제는 인원이 아니라 배치다” 현수막을 들고 증원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br>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 당정 협의’가 열린 2020년 7월23일 국회 정문 앞에서 대한의사협회가 “문제는 인원이 아니라 배치다” 현수막을 들고 증원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br>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의료 수가 조정도 함께”

의료계에선 해당 법안들과 정부의 정책이 본인들의 근본적 요구를 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수의료 붕괴를 막으려면 의대 정원 확대가 아닌 근무 환경 개선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17일 의협회관 강당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나 명확한 원칙 없이 일부 편향적인 학자들의 사견과 여론이나 정치적 효용성에 의해 일방적으로 의사인력 확충을 하려고 한다”며 강력 투쟁을 예고했다.

일부 의료 전문가들은 필수의료 분야의 ‘재정 지원’도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의사의 수는 현재 충분한 상황이지만 필수의료 분과의 경우는 의사도 부족하고 어려운 기술이 필요한 반면 보수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박인숙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명예교수는 17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필수의료 붕괴, 지방의료 붕괴에 대한 근본대책은 빠진 채 의대 정원만 파격적으로 늘리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비싼 생수를 쏟아 붓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정치권에선 의료계 입장까지 반영한 대책도 나오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의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은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수가 상승’ 제도 개선도 함께 촉구했다. 조 의원은 17일 기자회견에서 “전국적인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현재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는 시급한 현안”이라면서도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필수의료 수가의 획기적인 개선과 지역의료 수가의 가산이 필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필수의료 수가 인상과 형사처벌 대응 방안 등을 통해 의료 현장 상황이 달라진다면 필수의료 영역에도 신규 인력이 진입할 수 있다”며 “이미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의료 혁신의 해법으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수가 인상을 강력히 촉구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국회, 의료계가 상호 협의 하에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수가 인상과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의대 정원 확대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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