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의 작심 발언...‘돈봉투 의원’ 실명 공개에 ‘위증 강요’ 폭로
  • 김현지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3.10.30 10:05
  • 호수 177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정근,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 재판에 증인 출석
“윤관석이 돈봉투 살포 제안” “강래구 지시로 돈봉투 심부름”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가 지역본부장에 대한 돈봉투 살포 얘기를 처음 꺼냈고, 이후 윤관석 의원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돈봉투를 건네는 것을 제안했다”고 증언했다. 돈봉투를 받은 임종성·이성만·허종식 등 현역 국회의원 3명의 실명도 거론했다. 또한, 사건의 최대 수혜자인 송영길 전 대표도 돈봉투 살포를 알고 있었다는 취지의 녹취록이 나왔다.

증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은 강래구 전 감사의 ‘위증 강요’ 사실까지 폭로했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돈봉투 사건과 별개로 ‘이정근 게이트’로 구속 기소돼 2심까지 4년여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그는 사업가 박우식씨에게서 각종 청탁 등을 대가로 10억여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알선을 대가로 강래구 전 감사가 박씨의 돈을 받았는데, 강 전 감사가 ‘돈을 돌려줬다고 해달라’며 이 전 사무부총장에게 위증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뉴시스·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

“홍영표 캠프는 300만원씩 뿌리는데…”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 “윤관석 형이 마지막으로 의원들을 조금 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나한테 그렇게 이야기하더라고.”(2021년 4월24일)

윤관석 국회의원: “인천 둘 하고 (임)종성이는 안 주려고 했는데 ‘형님, 우리도 주세요’라고 해서 3개 빼앗겼어.”(2021년 4월28일)

이는 10월23일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에서 공개된 ‘이정근 녹취록’ 가운데 일부다. 녹취록에는 2021년 송영길 당대표 후보 캠프가 민주당 국회의원과 지역본부장 등에게 돈봉투를 살포한 정황이 담겼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2부(부장 김정곤·김미경·허경무) 심리로 진행된 윤관석·강래구 등의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재판에서 이러한 통화 내용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특히, 2021년 4월28일 녹취록과 관련해 “‘인천 둘’은 이성만·허종식 의원, ‘종성이’는 임종성 의원”이라고 답했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인천에서 송영길 전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회의 나왔던 사람이 그 둘(이성만·허종식)이니 맞을 것”이라고 했다.

야당 의원들의 실명은 연이어 등장했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2021년 4월26일 캠프 기획회의에 김영호·민병덕·임종성·이성만·허종식 의원이 참여했다”고 답했다. 그는 윤관석 의원이 ‘홍영표 후보 캠프에서 의원들에게 300만원씩 뿌리고 있다는데 우리도 써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로 말했는지를 묻는 검찰 측 질문에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윤관석 의원이 통화에서 “돈봉투를 다 썼다”며 이용빈·김남국·윤재갑·김승남 의원을 거론했는데, 이 전 사무부총장은 “거기(4명의 의원) 다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이와 관련해 “이들에게도 돈봉투를 줘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들에게 실제로 돈봉투가 전달됐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강래구 전 감사의 제안에 따라 캠프 조직본부장을 맡았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강 전 감사의 지시대로 돈봉투 심부름을 하고, 이를 강 전 감사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강 전 감사는 당시 공직에 있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2021년 3월 당시 강 전 감사는 선거운동 자금 마련을 위한 ‘보급 투쟁’을 하고 있었다.

법정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묘사됐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은 기획회의 다음 날인 2021년 4월27일 국회의사당 인근 식당 앞에서 윤관석 의원에게 300만원씩 든 20개의 봉투를 직접 전달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100만원씩 20명에게 감사 인사로 건넸다”는 윤 의원의 주장에 대해 “100만원이 든 봉투보다는 두툼했다”고 반박했다. 3월30일에는 이성만 의원이 송영길 후보 캠프 사무실에서 이 전 부총장에게 1000만원을 건넸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이를 20개의 봉투로 나눠 강래구 전 감사에게 전달했다. 같은 달, 서삼석 의원이 준 200만원을 송영길 전 대표 측에 ‘밥값’을 하라며 건넸다고도 한다.

관건은 송영길 전 대표도 이를 알고 있었느냐다. 2021년 3월30일 녹취록에는 “강래구 전 감사가 이성만 의원이 구한 돈을 나눠준 것에 대해 송 전 대표에게도 말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 역시 “(강 전 감사가) 그렇게 말했다고 이야기한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 밖에 이 전 사무부총장은 강 전 감사 지시에 따라 조직본부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고, 일부를 송 전 대표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한때 동지였던…” 강래구를 향한 이정근의 분노

사건의 핵심 증거는 ‘이정근 녹취록’이다. 검찰은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10억원 수수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를 확보했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각종 청탁의 대가로 사업가 박우식씨에게서 10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2022년 9월 구속 기소됐다. 최근 2심 재판부는 이 전 사무부총장에게 징역 4년2개월에 추징금 약 8억9000만원을 선고했다.

강래구 전 감사는 이 사건에도 등장한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은 2020년 7월 태양광 발전설비 제조·판매 회사인 D사의 한국수자원공사 납품과 관련한 박우식씨의 청탁을 받았다. 그는 박씨에게 강 전 감사를 “정치적 동지”라고 설명했고, 강 전 감사 알선을 대가로 박씨에게서 15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은 재판 말미에 강래구 전 감사에 대한 배신감을 드러냈다. 강 전 감사의 ‘위증 강요’ 의혹까지 제기했다. 강 전 감사가 박우식씨의 돈봉투를 자신에게 돌려줬는지에 대해 “사실이 아닐뿐더러, 강 전 감사는 ‘돈을 돌려줬다고 진술해 달라’며 (나에게) 위증을 강요했다”며 “(강 전 감사가) 몇 시간 동안 (조서에) 날인까지 거부했다”고 증언했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오전 재판에서도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강래구·이성만·조택상(전 인천시 정무부시장)이 ‘이정근이 밥값이 없다, 돈 달라고 징징거렸다’는 인터뷰를 했다”며 “한때는 ‘동지’라고 생각하던 사이였는데, 세 사람이 짠 듯이 제게 덤터기를 씌웠다”고 말했다.

또한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은 “녹취록은 위법한 증거”라는 송영길 전 대표의 주장에 대해 “불법은 없었다”고 일축했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10월30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윤관석 의원과 강래구 전 감사 측의 반대신문을 받을 예정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