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경기교육감 “학생인권조례를 학생권리·책임조례로 개정”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27 13:0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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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생의 학습권과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강화"
“학교 민원 ‘개인 대 개인’이 아닌 ‘개인 대 기관’으로 일원화”

‘공교육의 정상화’는 요원한가
[시사저널 창간기획 인터뷰] 두 현직 교육감에게 대한민국 교육 개혁의 길을 묻다

지난 7월 젊은 초등학교 여교사의 극단적 선택이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후 언론을 통해 전해진 심각한 교권 침해 사례들에서 우리는 교실이 더 이상 배움과 협동을 위한 공동체의 공간이 아님을 직시했다. 승자 독식의 사회구조가 낳은 ‘내 아이 우선주의’는 현장의 교사를 위협하고, 교사의 참된 가르침은 설 자리를 잃었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은 석 달째 매주 토요일 검은 상복을 입고 거리로 나와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오직 입시만이 목표인 아이들이 학교보다 학원에 더 의존하게 된 지 오래다. 공교육 붕괴와 사교육 광풍은 오랜 기간 곪아온 우리 교육의 문제다. 해방 이후 입시 제도가 19차례나 바뀌었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만 가중됐고, 역대 정부마다 교육 개혁을 추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 사이 입시에 특화된 학원들은 정책 변화에 맞춰 발 빠르게 ‘상품’을 만들어냈고 아이들은 이 상품을 소비하는 문제풀이 기술자가 돼가고 있다. 현 정부가 최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발표한 대입개편안을 두고도 찬반 논란이 뜨겁다. 시사저널은 수도권의 두 현직 교육감을 만나 우리가 처한 공교육의 현실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무엇보다 전인교육을 강조했다. 인성과 역량을 겸비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우리 교육의 목표가 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교권 침해’도 인성교육의 부재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교육감 공약이었던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완수했다. 새로 마련돼 시행을 앞두고 있는 ‘학생 권리·책임에 관한 조례’에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데 대한 학생의 책임이 강조됐다. 10월23일 오후 3시 경기도교육청 서울여의도사무소에서 임 교육감을 만나 교권 보호를 위한 대응책과 공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었다. 

ⓒ시사저널 최준필

“교권 침해 핫라인 개설 후 한 달간 1400건 접수”

서이초 사태로 언론에 드러난 ‘교권 침해’ 사례에 국민이 큰 충격을 받았다. 교사들이 이렇게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사회 풍토와 문화가 변화하면서 인성교육이 소홀해진 데 원인이 있다. 과거에는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이 이뤄졌는데 최근 가족 형태와 주거 형태가 크게 달라지면서 일상에서 인성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여러 관계들 속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충분히 배우지 못한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는 친구와의 관계, 선생님과의 관계 그외 선생님과 학부모의 관계 등이 존재한다. 나의 권리만큼 타인의 권리도 소중함을 알아야 하는데, 이런 교육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활동은 교사 개인의 활동이 아니고 교육의 책무성을 다하는 공무수행인데, 공무수행을 하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호하려는 인식이 부족하다. 또 교사들의 성향이 대체로 모범적이고 순수하다. 이는 장점이지만 혼자 감당하기 힘든 민원에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교사 사회에서 교장선생님을 중심으로 동료나 선후배의 어려운 점을 나누고 감싸주는 문화를 조성할 필요도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응책이 생겼나. 

“지난 9월부터 교육활동 침해 사안 발생 시 핫라인 ‘1600-8787’로 전화해 법률 지원을 요청하면 권역별 경기교권보호지원센터가 법률 서비스를 지원한다. ‘SOS! 경기교육법률지원단’을 구성해 악의적 형사 고소·고발·신고로부터 교원을 보호하는 전담 변호사를 두고 있다. 형사 고소·고발·신고를 당한 교원의 변호사 수임료를 지원하고 조사·수사기관에 변호사가 동행해 준다. 개인이 변호사를 선임할 경우라도 예산 범위 내에서 수임료를 선지급한다. 기존에는 각 지역 교권보호지원센터를 통해 문의가 이뤄졌는데 핫라인과 법률지원단 출범 이후 평소보다 많은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9월 한 달간 핫라인에 1400여 건 상담 문의가 들어왔고 150여 건에 대해 법률 지원이 이뤄졌다.”

대응 강화 이후 최근 현장에서의 변화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나. 

“그동안 학부모 민원과 관련해 기관이 뒤로 빠지고 선생님이 직접 대응하면서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교권 보호 종합대책을 시행하면서 현장에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도내 한 초등학교에서 체육 수업 중 학생이 다쳤는데 학부모가 선생님께 치료비와 정신적 피해보상금 등을 요구했다. 정당한 교육활동 중에 일어난 일에 대해 교사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이다. 법률자문단을 통해 교육청이 기관 차원에서 대응하며 교사들을 지원했다. 또 다른 사례로 한 학교에서 학생 간에 발생한 문제 해결을 위해 담임이 다른 2명의 선생님과 함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는데, 학부모가 이들 선생님 3명을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교권 전담 변호사 등을 즉각 파견해 경찰조사에 기관 차원에서 대응했다. 이처럼 민원 대응을 ‘개인 대 개인’이 아닌 ‘개인 대 기관’으로 창구를 일원화하고 교사의 개인 잘못이 아닌 정당한 교육활동임에도 법적 소송이 들어오면 교육청이 중심이 되어 대응하고 있다.”  

‘교권 4법’인 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교원지위법·교육기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교사들은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도 개정해야 한다며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교권 4법 개정안만으로는 교권이 바로 서기 어렵다고 보나.

“교권 4법 개정안 통과로 우선 1차적인 교권 보호망은 만들어졌다는 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의 법률적 해석이고 이에 동의한다.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한 내용이 법 조항에 열거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오히려 포지티브 방식으로 정리해 놓는 게 교사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의료사고와 같이 교사들의 고의나 중과실은 판례로 쌓이면서 기준이 생기는 게 맞을 것이다. 법률 개정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현재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또 학교 문화도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경기도 교권보호조례도 경기도의회를 통과했다.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대한 교육감 형사고발 조치 의무 △침해 행위자 구상권 청구 △교육활동 침해 학생 교실 분리 및 외부 위탁교육 △학교 방문 시 사전 예약 시스템 △녹음·녹화시설 갖춘 전용 민원 공간 △교원 휴대전화 번호 비공개 등의 내용을 담았다.”

 

“학생 인권과 교권은 ‘제로섬 게임’ 아냐”

교권 침해 문제의 해결책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언급된 바 있다. 학생인권조례와 교권 침해가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나.

“학생 인권과 교권은 한쪽의 이익이 다른 한쪽에 손해를 끼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학생 인권을 존중한다고 해서 교권이 추락하는 것이 아님에도 현재 학교 현장은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개정은 학생의 인권을 과거로 되돌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교원의 교육활동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다. 학생 개인의 인권 보호를 다른 학생의 권리 침해보다 중요시했던 학교 문화로 인해 교사가 학생들을 지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학생 개인도 중요하지만 모든 학생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에 담긴 학생의 자유와 권리만큼 한계와 책임도 명확하게 함으로써 학생 인권과 교권 사이의 균형을 맞추겠다. 이런 의미에서 학생인권조례 개정은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과정이다.” 

공약이었던 ‘경기도 학생인권 일부개정조례안’이 최근 입법예고됐다. 기존 학생인권조례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고, 개정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학생인권조례를 ‘학생 권리·책임에 관한 조례’로 변경한다. 조례 개정의 핵심은 모든 학생의 학습권과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강화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부터 학생인권과 교권의 균형을 강조하며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난 7월 부서 협의를 거쳐 입법 예고됐고 2024년 1월 시행할 계획이다. 현행 학생인권조례는 헌법에 보장된 인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학생이 가져야 할 자유와 권리, 한계가 규정되지 않았다. 해서는 안 되는 부분, 할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정안은 △자유와 권리의 한계와 책임 △학생·교직원·보호자 권리와 책임 △다른 학생 학습권 보장 △학생·보호자 책임과 의무 △상벌점제 금지조항 보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조례 제4조 책무 규정을 개정해 책임과 의무에 해당하는 부분을 보완했고, 제8조의 내용을 보완해 모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상벌점제 금지조항을 보완해 학생 포상, 조언, 상담, 주의, 훈육 등의 방법으로 학생을 교육하고, 학부모의 교육 책무성도 강화했다.”

숨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49재인 9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4만여 명의 교사가 모여 추모집회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대입개편안, 과도기적 방편으로 바람직”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이 발표되면서 수험생의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상적인 목표에 방법을 맞추면 실패한다. 과도기적 여건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이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이번 개편안은 고교 내신 5등급제 도입, 통합형·융합형 수능 과목 변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고교 내신을 기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간소화하고 전 과목에 절대평가 성적과 상대평가 성적을 함께 기재한다는 것이 큰 변화다. 고교 내신 5등급제는 상당히 고심을 많이 한 것으로 현장에서 잘 정착될 거라 생각한다. 학생 수가 적은 경우 1등급을 얻기 어렵다. 지금은 4%가 1등급이고 2등급까지가 11%인데, 1등급 퍼센트가 적다 보니 시험에서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2등급이 된다. 이번에 개편을 통해 10%까지가 1등급이 되면 학생들의 과도한 경쟁이나 등급 변별을 위한 암기 위주 평가보다 비판적 사고력을 신장하는 논·서술형 평가가 확대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평가가 정상화되고 훨씬 더 협력적인 수업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은 절대평가에 따른 내신등급이 병기되어 다양한 활동이나 학술적 활동을 하면서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장에서 느끼는 우리 공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교육은 행복하게 살아갈 삶의 조건을 갖추게 해주는 것이다. 홍익인간, 즉 전인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입시 중심, 문제풀이 중심의 교육이기에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인성교육이 이뤄질 수 없는 환경이다. 따라서 모든 교육에서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추는 정도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경기도는 역량 강화를 위한 평가 및 진단을 위한 AI 기반 교수학습 플랫폼 ‘하이러닝’을 구축해 9월부터 시범운영하고 있다. 또 지역의 교육 역량을 결합하고 공유한 지역 교육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지역 맞춤형 공유학교에서 학생 특성에 맞는 맞춤교육과 학습 기회를 보장하는 학교 밖 교육활동이 이뤄진다. 지역 맞춤형 공유학교 그림을 그려가며 6개 시범교육지원청을 운영하고 있다. 시범운영을 거쳐 통합 시스템 개발, 모델 다양화, 지역별 공유학교 운영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세수 결손으로 인해 교부세 감축이 상당한데.

“지방교육재정이 지금 안팎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지방교육재정의 위기는 우리나라 교육의 위기다.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도 이 문제만큼은 교육감의 교육 철학이나 관점이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공감대를 같이하며 함께 해결하고 있다. 현재 교육재정에 대한 논리는 단순하다. 학생이 줄어드니 교육재정도 줄여야 한다는 것. 하지만 여기에는 논리적 모순이 있다. 군인이 줄면 국방비를 줄여야 하나. 수도권은 인구가 늘고 지방 인구는 줄어든다고 해서 지방교육재정을 줄여야 하나. 이상하게 교육만 타깃이 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교육재정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현상 유지를 하며 과거의 틀 속에서 교육한다면 대충 꾸려갈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은 미래세대를 키우는 가장 중요한 투자다. 학생 수에 맞춰 예산을 줄이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교육재정을 줄이겠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다. 교육재정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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