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호통치고 금감원장 정리하는 금융권 ‘압박’ 패턴 재현되나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10.31 18: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돈 잔치’ 발언 이후 8개월 만에 ‘종노릇’ 언급하며 금융권 비판
‘상생금융’ 학습효과에 금융권 긴장 모드…횡재세 논의 가능성도
시장 교란 우려도…“고신용자 중심으로 금리 인하 효과 집중”

윤석열 대통령이 8개월 만에 금융권에 대해 쓴소리를 토해냈다. 전날 국무회의에서 이자 상환에 급급한 소상공인의 현실에 대해 ‘은행의 종노릇’이라며 금융권을 향한 비판적 시각을 다시금 드러낸 것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은행들의 성과급 지급을 놓고 ‘돈 잔치’라고 비판한 바 있다.

금융권에선 당국의 압박이 더욱 거세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 2월 윤 대통령의 ‘돈 잔치’ 발언 이후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상생금융 압박이 컸던 데 따른 학습효과다. 일각에선 ‘횡재세’ 도입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돈 잔치’ 발언 후 상생금융 드라이브…‘종노릇’→ 서민금융 강화?

윤석열 대통령의 ‘종노릇’ 발언은 지난 30일 국무회의에서 참모진의 민생 현장 내용을 공개하며 나왔다. 소상공인의 말을 전하는 형식을 빌었지만 ‘종노릇’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은행권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5대 금융지주의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15조6496억원을 기록했다. 조달 비용 증가로 전년 동기 대비 1.2% 감소했지만 역대 최대 실적을 냈던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며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는 관련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은행권의 막대한 성과급 지급에 비판한 것이다.

윤 대통령 발언 이후 당국은 후속 조치에 속도를 냈다. ‘은행권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가 가동됐고, 은행, 보험, 카드 등 금융권은 상생금융 형식으로 각종 조치를 내놓았다. 주로 수수료 및 금리 인하, 원금상환 지원, 채무감면 등 소비자가 받게 되는 혜택을 늘리는 방식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금융사를 순회하며 이 같은 조치를 격려하기도 했다. 당국의 압박 속에 지난 8월 금융권이 실제 집행한 상생금융 실적은 약 4700억원 수준에 달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를 국무위원, 다른 국민에게도 전달해 드리는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라 어떠한 정책과 직접 연결을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앞선 상생금융의 학습효과 때문에 금융당국의 후속 조치에 긴장하고 있다. 지난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당국 종합 국정감사에 나와 “은행 이익과 관련한 국민 고통 지적을 인지하고 있어 여러 노력을 해오고 있으나 많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이복현 금감원장의 발언도 쉽게 넘길 수 없는 지점이다.

일단 금융권에선 ‘서민금융’ 확대에 당국이 금융권의 참여를 독려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31일 국회 시정연설에 나선 윤 대통령이 “서민 금융 공급 확대를 통해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담 완화 노력도 강화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날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방문해 서민금융 지원 현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오른쪽)이 지난 3월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상생금융 확대를 위한 금융소비자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사회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오른쪽)이 지난 3월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상생금융 확대를 위한 금융소비자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사회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횡재세 도입’ 논의?…상생금융 역효과 우려도

일각에선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이른바 ‘횡재세’ 도입 가능성도 제기한다. 지난 27일 국감에 나온 금융당국 수장들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 중”이라고 밝혀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어떤 방법이 좋은지는 우리나라의 특성에 맞게끔 종합적으로 계속 고민하겠다”고 답했고, 이복현 금감원장은 “각국의 여러 정책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스페인, 헝가리, 체코, 리투아니아 등 유럽 4개국은 은행의 순이자수입에 일정 비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횡재세를 시행 중이다. 이탈리아는 지난 8월 1년간 순이자수입의 40%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하고 의회 승인 절차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당국의 압박이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4월 상생금융이 시작된 이후 대출자의 신용점수가 올라가며 대출한도도 덩달아 상승, 가계부채 증가에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은행권 가계대출 총액은 상생금융 4월을 기점으로 해서 10조원이 올라가지만 비은행권 가계대출은 5조원이 떨어졌다”며 “시중은행의 고신용자 중심으로 금리 인하 효과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은행권 등에서 지원한 4000억~5000억원 정도로는 가계대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며 박 의원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