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입금 상환을 목적으로 정기예금에서 자금을 인출해가는 기업의 수가 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의 잔액 10억원이 넘는 예금 증가세가 10년 만에 꺾인 것으로 집계됐다.

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은행의 저축성예금(정기예금, 정기적금, 기업자유예금, 저축예금) 중 잔액이 10억원을 초과한 계좌의 총예금은 772조4270억원이었다. 지난해 말(796조3천480억원)보다 3.0％(23조9210억원) 감소한 규모다.

10억원 초과 고액 예금 잔액은 2018년 상반기 500조원, 2019년 하반기 600조원, 2021년 상반기 700조원을 순차적으로 돌파하며 증가세를 이어가다가 800조원을 목전에 두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 잔액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지난 2013년 6월 말 379조5800억원에서 같은 해 12월 말 362조8260억원으로 줄어든 이후 약 10년 만이다. 전년 대비 상승률은 2021년 말 13.8％에서 지난해 말 3.5％로 대폭 감소했다.

세부적으로 정기예금 잔액 감소가 전체 감소를 이끈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10억원 초과 정기예금 잔액은 538조816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5조7300억원(4.6％) 축소됐다. 같은 기간 10억원 초과 기업자유예금 잔액은 219조8900억원에서 222조5850억원으로 늘고, 저축예금 잔액은 11조5250억원에서 10조5380억원으로 줄었다. 기업자유예금은 법인이 일시 여유자금을 은행에 예치하는 상품이다. 저축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결제성 예금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업들은 정기예금에서 인출한 자금을 여신이나 회사채 등 차입금 상환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대출 금리를 감당할 수 없어 디레버리징(부채 축소)하는 움직임이라는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고액 정기예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고액 예금 계수가 감소한 영향도 크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2월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차입하면서 삼성디스플레이의 기존 예금이 전 금융기관에서 감소했다. 현대차는 미국 금리 상승으로 수출입 거래 시 이자율에 해당하는 환가료가 비싸지면서 수출 신용장 매입 거래가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김은정 디지털팀 기자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