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이 여행] ‘떠나요’ 공주 갤러리 투어
  • 글 남혜림·사진 신규철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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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그림 상점로’가 충남 공주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원도심에 모인 갤러리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보냈다.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서울역,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공주역까지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KTX매거진 신규철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서울역,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공주역까지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KTX매거진 신규철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지고 마음 한쪽이 허전한 기분에 휩싸인다면, 그건 삶에 예술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예술은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삶을 한층 풍요롭게 만들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요소다. 마음이 메마른 날,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충남 공주로 달렸다. 공주 원도심에서 훈훈한 아트 페어가 열렸다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공주 그림 상점로를 아시나요

여유로운 주말 오전, 도시에 나른한 기운이 감돈다. 햇빛이 자꾸만 제민천을 간질여 잔물결이 반짝인다. 강변을 어슬렁거리며 풍경을 구경하다 골목길로 접어든다. 공산성 방향을 등지고 길모퉁이를 몇 번 도니 처마가 돋보이는 건물과 맞닥뜨린다. 그 앞에는 ‘공주 그림 상점로’라고 적힌 팻말이 놓였고, 창문에도 같은 문구가 붙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오늘의 목적지 중 하나인 대통길작은미술관으로 들어간다.

문을 열자마자 내부의 온기가 훅 끼친다. 고요한 분위기가 함께 밀려와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름에서 짐작하겠지만 이곳은 아담한 미술관이다. 대형 전시장처럼 넓지는 않아도 1, 2층으로 구분한 공간 이곳저곳에 작품을 전시했다. 집중할 곳은 아트 페어와 관련한 작품을 걸어 놓은 2층이다. 벽면에 걸린 그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크기는 모두 제각각이다. 벽의 절반을 가린 것, 모니터 사이즈와 비슷하거나 손바닥보다 조금 큰 것…. 작품 아래에 붙은 설명을 읽는데, 작가 이름이 모두 낯설다. 바로 공주 아트 페어의 특징 중 하나다.

공주 그림 상점로에 참여하는 다섯 갤러리는 원도심 제민천 부근에 모여 있다. 도보로 20분 정도 거리라 하루에 모든 갤러리를 방문하기에 충분하다. ⓒKTX매거진 신규철
공주 그림 상점로에 참여하는 다섯 갤러리는 원도심 제민천 부근에 모여 있다. 도보로 20분 정도 거리라 하루에 모든 갤러리를 방문하기에 충분하다. ⓒKTX매거진 신규철

공주 그림 상점로는 원도심 제민천 근처에 자리한 다섯 개 갤러리에서 진행하는 아트 페어로, 신진 작가나 지역 작가의 그림을 대상으로 한다. 관람객은 지역 갤러리에서 자연스레 새로운 작가와 그림을 마주하고, 신진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사람들 앞에 내놓을 기회를 얻는다. 2023년에는 5월부터 11월까지 벌써 일곱 차례나 행사를 진행했다. 2021년 처음 아트 페어를 열 때만 해도 공주를 비롯한 충청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주로 참여했지만, 불과 두 해 정도가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충청도를 넘어 전국구에서 참여 의사를 밝히는 작가가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트 페어는 전시 관람은 물론 구매까지 지원한다. 관람객이 마음에 드는 그림을 구입하면 공주시가 지역 화폐나 온누리 상품권 등으로 그림값 일부를 지원하니 관람객, 작가는 물론 인근 주민까지 웃는 구조다.

 

모두가 만든 예술 도시

백제 역사를 품은 고도가 예술 도시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년. 이런 결과를 불러온 데엔 주민의 역할도 컸다. 처음엔 공주와 예술이 어울릴지 염려하고 반대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아트 페어를 이해하고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아트 페어의 부대 행사 스탬프 투어에 참여 중인 중학생들이 갤러리에 들어와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며 그림을 감상하고, 이내 팸플릿에 야무지게 스탬프를 찍어 간다. 행사 장소인 대통길작은미술관, 갤러리 쉬갈, 갤러리 수리치, 민 갤러리, 이미정갤러리 총 다섯 곳을 방문해 스탬프를 모으면 주변 카페나 식당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5000원 쿠폰을 1인당 한 개씩 지급한다. 이러한 부대 행사 역시 주민의 협조와 이해가 없었다면 진행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열기가 이렇게 뜨거우니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 대통길작은미술관을 나와 가장 가까운 곳부터 하나씩 방문하기로 한다. 커피 향 가득한 카페 아래에 위치한 갤러리 쉬갈, 2층에 자리해 전망이 좋은 이미정갤러리, 넓은 간격을 두고 그림을 배치한 것이 특징인 민 갤러리와 실제 하숙집으로 쓰였던 주택을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한 갤러리 수리치까지 서로 가까워 둘러보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다.

이제 점찍어 둔 그림을 향해 발길을 돌릴 시간. 공주 그림 상점로에 전시된 그림은 최소 10만 원부터 시작하니 처음 그림을 구매하는 사람도 부담을 던다. 감성이 차올라 말랑해진 마음과 그림 덕에 돌아가는 길이 흥겹다. 일상에 예술이 만개할 날을 기대하며 기차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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