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매각’ 대신 ‘담보 대출’…태영, SBS 못 놓는 까닭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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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 “지주사‧SBS도 담보 내놓겠다” 조건부 제안
‘지분 매각’엔 재차 선 그어…“방송법 때문에 불가”
워크아웃 개시는 기정사실화, ‘불안한 출발’ 우려도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를 결정지을 채권단 협의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당초 계열사 매각금을 태영건설이 아닌 지주사 티와이홀딩스 채무 상환에 먼저 사용해 진정성을 의심받아온 태영그룹은, 추가 자구안을 내놓으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태영건설은 지주사와 알짜 그룹사인 SBS 담보를 언급하며 회생의 의지를 다졌고, 이에 채권단이 긍정적으로 화답하면서 워크아웃 개시에 청신호가 켜진 상태다.

다만 업계에선 ‘불안한 출발’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부동산 경기를 고려할 때 태영건설이 갚아야할 빚(우발채무)이 기존에 확인된 2조5000억원대에서 더 늘어날 수 있는 데다, 워크아웃이 일단 개시된다 할지라도 향후 중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서울 산업은행 본점에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동의 관련 채권단 설명회가 열린 10일 오전 서울 태영 건물 본사의 모습 ⓒ 연합뉴스
서울 산업은행 본점에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동의 관련 채권단 설명회가 열린 10일 오전 서울 태영 건물 본사의 모습 ⓒ 연합뉴스

“꼭 살려내겠다” 의지 다진 태영건설, 워크아웃 ‘청신호’

10일 태영건설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주요 채권자 회의를 열어 태영건설의 자구계획을 공유하고 향후 절차를 논의했다.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산은 측은 “태영건설의 자구안이 계획대로 이행된다면 워크아웃 개시와 이후 실사 및 기업개선계획 수립 작업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전날에도 산은은 태영건설의 추가 자구안에 대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첫 출발점”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직접 고개를 숙이며 회생 의지를 다졌다. 태영 측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1549억원 지원 △에코비트 매각 및 매각 대금 지원 △블루원 지분 담보 제공 및 매각 추진 △평택싸이로 지분 담보 제공의 기존 4가지 자구 계획안을 충실히 이행하고, 필요하다면 윤세영‧윤석민 회장 등 계열주가 보유한 지주사 티와이홀딩스와 SBS 지분을 채권단에 담보로 내놓기로 했다. 다만 태영 측은 워크아웃 플랜이 확정될 오는 4월까지 기존 자구안만 제대로 이행돼도 태영건설의 유동성 부족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관심을 모은 SBS 지분 매각은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최금락 태영그룹 부회장은 “SBS는 언론기업이어서 일반 기업과 달리 법적 규제가 많아 지분 매각은 어렵다”고 했다. 방송법상 자산총액이 10조원 넘는 대기업은 지상파 방송의 지분을 10% 이상 소유할 수 없고, 지분을 샀다 할지라도 경영권을 행사하려면 방송통신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 같은 규제를 뛰어넘어 SBS를 사들일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태영 측은 SBS 지분 담보가 사실상 사재 출연의 효과를 지닌다는 입장이다.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에서 열린 워크아웃 관련 추가자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에서 열린 워크아웃 관련 추가자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SBS 지분 매각 대신 담보 제공…“빚 더 늘어날 수도”

그러나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태영 측이 지주사‧SBS 지분 담보를 넘어 또 다른 자구안을 마련해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태영건설 측은 부실화된 보증채무(우발채무) 규모가 2조5000억원이라고 설명했는데, 전체 채무 규모는 16조원으로 파악된다. 시장상황이 더 나빠지면 추가 우발채무가 생겨 재차 유동성 위기에 휩싸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태영 측은 “어떻게든 정상적으로 사업을 마무리 짓고 사력을 다해 태영을 살려낼 것”이란 입장이다. 다만 태영그룹이 다시 한 번 진정성을 의심받을 경우 워크아웃이 개시된다 할지라도 추후 중단될 수 있다. 채권단은 “계열주와 태영그룹이 약속한 자구계획 중에 단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워크아웃 절차는 중단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워크아웃 개시 여부는 오는 11일 채권단 협의회의 서면 결의를 통해 결정된다. 이 협의회에서 채권단의 75%(채권 액수 기준) 이상이 찬성해야 워크아웃이 개시된다. 현재 태영건설의 채권자는 약 609곳이며, 산업은행에 신고한 채권액 기준으로 의결권이 부여된다.

워크아웃이 시작되면 태영건설의 채무 상환은 최대 4개월간 유예되며 주채권은행은 실사를 통해 경영정상화 계획을 마련한다. 만약 워크아웃이 무산되면 태영건설은 법정관리 수순을 밟을 수 있다. 다만 업계에선 “워크아웃 개시가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본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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