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 아니었다면…” 치밀했던 정치 테러, 의혹 남긴 경찰 수사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1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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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이 대표 대통령 되는 것 막으려 범행” 수사결과 발표
피의자 극단 범행 배경된 ‘정치 신념’ 형성 과정 등 의문 남아
당적·변명문 등 주요 정보 ‘비공개’ 했지만…NYT 신상공개로 곤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퇴원하며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퇴원하며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 공격한 살인미수 피의자 김아무개(67)씨가 왜곡된 정치적 신념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제1야당 대표의 영향력을 없애려 했던 김씨는 수차례 공격 기회를 노렸고 결국 이를 실행에 옮겼다. 

경찰은 이 대표의 목숨을 노린 김씨의 칼이 옷깃을 관통하는 '변수'가 없었다면 심각한 결과가 초래됐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치 테러 피의자의 신상과 당적 등 주요 정보를 모두 비공개한 경찰 결정이 오히려 논란과 의혹을 더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관적 신념으로 극단 범행…정치 유튜브 시청 기록"

11일 경찰에 따르면, 부산경찰청 수사본부는 전날 최종 수사결과 브리핑에서 김씨의 흉기 공격을 "주관적인 정치적 신념에 의한 극단적인 범행"이라고 규정했다. 

경찰은 피의자 진술과 증거물 분석을 토대로 "김씨가 재판 연기 등으로 이 대표가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점,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4월 총선에서 이 대표가 특정 세력에 공천을 줘 다수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살해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찌른 혐의를 받는 김아무개씨가 1월10일 오전 부산 연제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찌른 혐의를 받는 김아무개씨가 1월10일 오전 부산 연제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찰은 김씨가 남긴 7746자, 8쪽짜리 문건인 '변명문' 내용에 대해 "사법부 내 종북세력으로 인해 이 대표 재판이 지연되고 나아가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고 나라가 좌파세력에 넘어갈 것을 저지하려 했다는 취지의 주장이 담겼다"고 밝혔다.

경찰은 압수물 디지털 포렌식 조사를 통해 김씨가 평소 유튜브에서 보수성향 정치 관련 영상을 시청한 기록을 확인됐다고 전했다.

또 통화내역과 거래계좌, 행적 등을 분석한 결과 김씨의 공범이나 배후세력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김씨 변명문 우편 발송을 약속했던 70대 조력자는 범행 자체를 공모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돼 체포 후 석방됐다. 

1월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공격한 60대 피의자가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 바른소리 TV 유튜브 캡처
1월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공격한 60대 피의자가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 바른소리 TV 유튜브 캡처

작년부터 범행 준비…흉기 변형하고 치밀 계획

김씨가 지난해부터 치밀하게 계획한 정황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김씨는 지난해 4월 인터넷으로 등산용 칼을 구입해 앞부분과 양쪽 날을 날카롭게 갈아 범행에 사용했다. 또 범행에 용이하도록 손잡이 부분을 종이와 테이프로 감았다. 범행 당일인 2일 플래카드 밑에 이 칼을 숨긴 김씨는 사인해달라고 접근한 뒤 이 대표의 목을 찔렀다. 

이 대표는 목에 1.4㎝ 자상, 깊이 2㎝ 상처를 입었으며 귀밑에서 쇄골까지 이어지는 목빗근 뒤 내경정맥이 9㎜ 손상됐다.

경찰은 김씨가 휘두른 흉기가 이 대표 와이셔츠 옷깃과 내부 옷감을 관통한 뒤 목을 찔렀으며, 바로 피부에 닿았다면 '심각한 피해'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김씨는 범행 당일을 포함해 총 6차례 흉기를 지닌 상태로 이 대표 일정을 따라다닌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김씨의 당적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 국민의힘 당원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민주당원으로 당적을 바꾼 것으로 알려진다. 당적 변경 시점은 김씨가 흉기를 구입한 시기와도 맞물린다. 범행을 계획해 둔 상태에서 이 대표 일정 파악 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당적을 바꿨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그는 범행 전날인 지난 1일 KTX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하면서 충남 아산역에 차량을 주차한 뒤 경찰 추적을 피하려고 휴대전화와 지갑을 두고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또 평소 사용하던 개인 휴대전화는 유심과 메모리 카드를 빼 역 주차장 배수관에 숨겼다. 

우철문 부산경찰청장이 1월10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경찰청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과 관련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철문 부산경찰청장이 1월10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경찰청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과 관련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무원 출신 부동산 업자, 왜 정치 테러범 됐나

경찰의 최종 수사결과 발표에도 김씨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정치 테러범이 됐는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김씨는 오랜 기간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 후 부동산 중개 사무소를 열고 운영해왔다. 주변인들은 평소 김씨가 극단적 테러를 준비·감행할 정도의 이상 행동이나 발언을 하지 않았다며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웃에 비친 일상과 달리 김씨가 남긴 '변명문'에는 "범행으로 자신의 의지를 알려 자유인의 구국 열망과 행동에 마중물이 되고자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극단적 신념이나 확신을 바탕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전형적인 확신범의 인식 형태다.   

그러나 경찰 발표 만으로는 범행 동기인 '주관적인 정치 신념'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됐는지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김씨의 진술, 심리분석을 진행했지만 사이코패스 수치는 정상 범위 이내였고 정신질환 이상 징후도 없었다고 한다. 

경찰은 김씨가 보수 성향의 유튜브 정치 영상을 시청했다면서도 이 외 왜곡된 정치적 신념을 갖는데 영향을 끼친 요소와 배경, 구체적 과정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김씨 신상정보와 당적 변경, 변명문에 담긴 구체적 내용도 모두 정당법이나 피의사실 공표 등을 이유로 비공개 처리했다. 그 사이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김씨의 얼굴과 실명을 비롯한 주요 정보를 공개하면서 '비공개'를 고수하던 경찰은 난감한 처지가 됐다. 

정치 테러 범행과 관련해 지나치게 좁은 법적 해석으로 '정치적 결정'을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에서 외신이 김씨 정보를 선공개하면서 경찰 결정이 실효성을 잃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찰 수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전현희 당대표 정치테러 대책위원장은 "대체 뭘 수사한 건지 알 수가 없다"며 "이 사건은 야당 지도자를 살해할 의도로 자행된 정치 테러 사건이다. 경찰은 '이 대표 피습'으로 규정했는데 이는 사건의 의미를 축소·왜곡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상혁 의원은 "왜 이 테러범이 극단적 신념을 갖고 범행에 이르렀나 밝혀야 하는데 이 부분이 빠졌다"며 "범행 동기를 밝히는 핵심적 요소인 신상과 당적 등이 공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국민의힘 출신 태극기부대원의 범행이란 말을 하지 않으려 오늘 결과를 발표한 것인가"라며 "무엇을 위한 신상·당적 은폐인가"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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