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짐’ 내려놓은 재계 인사들, 지금은 뭐 하나
  • 김경수 기자 (2ks@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6 07:35
  • 호수 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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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해외사업 등 인생 2막도 ‘성공 가도’
한샘 조창걸, 미래세대 리더 육성 위한 대학 설립하기도

손수 일군 기업을 2세에게 물려주지 않고 전문경영인에 맡기거나, 수천억원이 넘는 금액을 받고 매각한 창업주들이 있다. 이들은 어떤 인생 2막을 살고 있을까. 경영권을 내려놓은 오너들. 이들은 교육·문화·해외사업 등 다른 업종에 도전하거나, 동종 업계로 다시 복귀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름다운 은퇴 선언한 오너들

최근 가족 승계 없이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풀무원이 대표적이다. 2018년 1월, 33년간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남승우 전 총괄대표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남 전 대표는 “자식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이에 따라 이효율 대표가 후임 총괄대표에 선임됐다. 이 대표는 1983년 풀무원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영업, 마케팅, 해외사업 등을 거치며 풀무원을 성장시킨 주역이다. 경영권을 내려놓은 남 전 대표는 풀무원 이사회 의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도 ‘2세 경영’ 없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갈 뜻을 밝혔다. 박 회장은 최근 미래에셋희망재단과 기부약정서를 체결했다. 미래에셋희망재단은 1998년 설립 후 국내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학업과 자기계발을 위한 장학금 지원 등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을 하고 있다. 이번 체결을 통해 박 회장은 향후 미래에셋컨설팅 주식을 25%까지 미래에셋희망재단에 기부키로 했다. 박 회장은 회사 지분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최대주주 지위를 포기했다. ‘오너 세습’이 없음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기부는 현행 공익법인의 주식 보유와 관련한 규제 등이 완화되는 시점에 이뤄질 전망이다.

동종 업계로 다시 진출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오너도 있다. 패션 기업 한섬의 창업주 정재봉 사우스케이프 회장이 그렇다. 패션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 그는 2012년 한섬을 현대백화점그룹에 매각(약 4200억원) 한 후 골프웨어에 눈을 돌렸다. 주로 여성 골퍼를 타깃으로 한 프리미엄 골프웨어다. 코로나19가 가져온 골프 열풍과 함께 매출 상승세를 보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 회장은 최근 매각한 현대백화점으로부터 겸업 금지 해제 동의를 얻어냈다. 그 결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와 판교점에 각각 사우스케이프 골프웨어를 출점했다. 패션 업계는 사우스케이프를 주목할 만한 신성장 브랜드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서울 청담동의 한 유명 레스토랑 소유권을 두고 벌인 전 사장과 정 회장 간 계속되는 법적 다툼은 아쉬움이 남는다. 

기업 매각을 통해 ‘현금 부자’ 반열에 오른 대표적인 인물은 카버코리아 창업주인 이상록 회장이다. 이 회장은 1999년 화장품 브랜드 AHC로 유명한 화장품 제조업체 카버코리아를 설립해 수년 만에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과 비등한 수준으로 키워냈다. 그러다가 이 회장은 2017년 다국적 기업인 유니레버에 3조원에 달하는 금액에 카버코리아를 매각했다. 이 회장은 당시 본인 지분을 매각하고, 1조원 정도를 손에 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이 자금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18년 지분 100%를 보유한 패밀리오피스 스탠더스(옛 너브)를 설립해 투자를 시작했다. 카버코리아 매각으로 쥔 현금을 가장 먼저 투자한 분야는 엔터테인먼트다. 이 회장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작으로 부동산 입대업, 외식업, 최근에는 메타버스 플랫폼 사업까지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자수성가’의 대명사로 꼽히는 김준일 하나코비 회장은 국외에서 활발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1978년 락앤락의 전신인 주방생활용품 유통 기업 국진유통을 설립해 락앤락을 연 매출 500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2017년 건강 악화와 회사의 성장 정체 등을 이유로 김 회장은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락앤락 지분을 약 6293억원에 팔았다. 그는 베트남에서 인생 2막에 도전하고 있다. 락앤락의 전신인 ‘하나코비’를 되살렸다. 김 회장은 코비원(부동산 개발), 코비인(외식업), 코비로지스(물류업), 코비홈(인테리어 자재 및 가구 쇼핑몰) 등 4개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문화·IT·해외진출 등 신사업에도 ‘시동’

미래세대 인재 육성을 위해 대학교를 설립한 오너도 있다. 경영을 승계할 마땅한 후계자가 없어 매각 결단을 내린 한샘 조창걸 전 회장이다. 조 전 회장은 학술 사업에 전념하며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태재학원, 태재연구재단 등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학술재단에 출연한 금액만 수천억원대에 달한다. 조 전 회장은 2021년 7월 한샘 매각에 나서 본인(15.45%)과 특수관계인 7명 등의 지분 27.7%를 IMM 프라이빗에쿼티(PE)에 매각했다. IMM PE는 주당 가격을 22만원으로 책정하고, 매매대금 1조4513억원을 투입해 한샘을 인수했다. 조 전 회장은 지분 매각대금 중 일부(2210억원)로 사립학교법인 태재학원을 설립했다. 태재학원은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소재 태재대학교를 설립해 운영하는 법인이다. 태재대학교는 지난해 9월 첫 입학생을 받으며 운영을 본격화했다.

SM엔터테인먼트와 최근 결별한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도 새 도전에 나섰다. 이 전 프로듀서는 보유하던 SM 주식 대부분을 하이브에 약 4000억원에 매각한 후 개인회사 블루밍 그레이스를 설립했다. 블루밍 그레이스는 문화 관련 사업 등을 진행하는 회사다. 그는 지난해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해 서울 인터내셔널 파크에서 열리는 나무 심기 행사에 참석했다. 이 프로젝트 역시 블루밍 그레이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의 하나로 진행됐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연 1000그루의 가로수를 심고, 유지하는 프로젝트다. 현지 한인 비영리단체와 함께 직접 가로수를 심은 이 전 프로듀서는 이날 기자회견도 열어 K팝 스타 등 유명인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탄소중립 활동을 진행했다. 그는 과거부터 나무 심기 등 탄소중립 실현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 전 프로듀서는 지난해 7월 홍수로 큰 피해를 본 몽골에 ‘재해 나무 심기 기부금’ 1억원을 기부하는 등 ESG 관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래 산업 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이 전 프로듀서는 지난해 비만 신약 개발사에 36억원을 투자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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