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독성 잡초 손웅정의 ‘용기 있는 말’, 그곳에 희망이 있다
  • 김창금 한겨레 선임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3 15:05
  • 호수 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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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위해서 내 인생 헌납한 게 아니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한 것”
“아이들을 인격체로 존중해야” 교육철학…손흥민, 아버지에 깊은 신뢰와 존경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은 ‘도파민 인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자극이 갈수록 더 커져야 직성이 풀린다. 할리우드 여배우 조디 포스터가 젊은 ‘Z세대’와 일하면 짜증 날 때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애교 섞인 푸념으로 들린다. 갈등은 세대 사이에만 있지 않다. 체육시간에 다친 학생의 학부모가 교사를 고발하는 세상이다. 전통적 가치는 극단화된 형태로 뒤집힌다.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지만, ‘묻지 말고 흐름에 따라가라’는 처세술이 득세하고 있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학위도 없고, 전문가 집단에 속하지도 않는다. 오직 축구 외길을 걸으며 치열하게 살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삶의 경험과 독서를 통해 정련된 그의 사고는 비범하다. 세태를 비판하는 그의 언어에는 촌철살인의 통렬함뿐 아니라 문명사적 통찰이 들어있는 것 같다. 축구 스타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 이야기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 ⓒ연합뉴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 ⓒ연합뉴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 보고 성장한다”

손 감독은 1월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성장한다. 절대 편해지려고 하지 말고 솔선수범하라”고 말했다. 설명도 덧붙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말은 못 하고 눈으로 보기만 한다. 누구나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성장하게 된다. 부모는 TV 보고 핸드폰 화면 들여다보면서, 애들에게 공부하라고 하면 되겠나. 자녀가 책을 읽기를 바란다면, 거실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써라.” 손 감독은 지난해 한겨레와 한 새해 인터뷰에서 “검색하지 말고 사색하라”고 했는데, 올해 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아들 축구 교육에 평생 올인한 그의 입에서 인문학적·철학적 비평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예스’와 ‘노’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성격이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2023 카타르아시안컵 전망과 관련해 그는 “한국이 우승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렇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우승해 버리면 그 결과만 가지고 (변화 없이) 얼마나 또 우려먹겠느냐”라고 일침을 놓았다. 듣기 좋은 소리는 달콤하지만, 환상은 가공의 이미지일 뿐이다. 실체를 보려고 노력하는 그에게 가상과의 타협은 없다.

손흥민을 지독하게 훈육한 일화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프로축구 공격수 출신인 그는 “나는 한 명을 제칠 수 있는 발기술이나 개인기를 완성하지 못했다. 기본기는 없었고 성적은 내야 했다. 나와 정반대의 시스템으로 아들을 가르쳐야 했다”고 고백했다. 또 “한국 축구의 고질은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에만 집착하는 데 있다. 경로를 바꿔야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반항아였던 그는 늘 비주류였다. 평생 구부러진 것을 참고 넘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인에 머무르지 않았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관성을 거부하는 용기, 실천력으로 그는 제도와의 싸움도 서슴지 않았다. 새판을 짰고, 그것도 “일류보다 특류”를 지향했다.

손흥민은 초등학교 운동부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하루도 빠짐없이 리프팅 훈련을 하는 등 기본기에 집중했다. 손웅정 감독은 “하루 20~30㎝까지도 자라는 대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데 5년이 걸린다”고 말한다. 손흥민의 기본기와 몸의 밸런스, 볼 감각 향상을 위한 기초 작업에 수년을 쏟은 배경이다. 페널티 구역 모서리(이른바 손흥민 존)에서 드리블하며 감아차기 골을 얻어내는 손흥민의 능력은 하루에 왼발 500개, 오른발 500개 슈팅 연습을 통해 이뤄졌다. 

혹독한 훈련을 두고 주변에서는 “아비(아버지)도 아니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똑같다. 2019년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토트넘의 중핵으로 뛰었지만 리버풀에 진 아들은 경기 후 관중석에 있는 손 감독에게 울면서 다가왔다. 아버지는 이때 손흥민을 꼭 껴안아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잘했어. 너 안 다쳤잖아. 너 잘 뛰었잖아. 아빠는 이걸로 충분해.”

그는 팔짱 낀 채로 손흥민을 가르치지 않았다. 평등원칙으로 함께 뛰고 훈련했다. 오히려 아들보다 더 많이 움직였다. 땡볕에서 공을 패스하면, 아들은 나무 그늘 밑에서 받아서 찼다. 겨울만 되면 부상을 막기 위해 차로 소금 포대를 싣고 와 운동장에 깔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깊은 신뢰와 존경을 공유한다. 

손흥민이 2023년 6월8일 강원 춘천시 손흥민체육공원에서 열린 '손흥민 국제 유소년 친선 축구대회'에 참석해 부친 손웅정 감독과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손흥민의 볼보이인 것이 행복하다”

손웅정 감독은 아이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훈련 중 부상으로 미처 커보지도 못하고 사라진 재목들을 목도할 땐 분노도 했다. 선수를 다룰 땐 엄격할 수 있지만, 애정이 먼저다. 아이들을 “고사리 다루듯 조심해야 하고”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유치원에도 ‘의대반’이 생길 정도로 의대 선호 현상이 극심한 현재 한국 사회의 현상에 대해 “아이의 재능은 ‘개 무시’하고 당장의 성적에만 목매는,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들이 애들을 망치고 있다”고 거침없이 질타하는 이유다. 물론 “나는 농부의 마음이다. 365일 파종한다. 하루라도 손을 놓으면 열매를 거두기 어렵다”며 교육에 정성을 쏟는다. 하지만 스승과 제자 사이에 선이 있듯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존중의 거리가 필요하다.

이것은 아이가 수업 중 다쳤다고 교사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과잉보호로 아이들을 영원히 어린애로 만드는 ‘내 새끼 지상주의’와는 다르다. 손 감독은 “성서를 보면 ‘아이의 마음속에 어리석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아버지가 자식을 체벌한다. 체벌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아이에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라고 정해 줘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는 끝까지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손 감독은 ‘손흥민의 아버지’로 불린다. 언제나 손흥민 다음에 불리는 2차적 존재다. 하지만 그에겐 ‘밝고’ ‘거침없는’ 기운이 넘친다. 그것은 구속됨이 없는 자유의 분위기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쟁취한 것이다. 청소와 독서, 운동 등 인생 3낙(樂)을 통해 얻은 지혜라고 할까.

그는 “손흥민의 볼보이인 것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포기한 적도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구를 위해 밤새 타본 적이 있는가? 불사른 적이 있는가? 나는 아들을 위해서 내 인생을 헌납한 게 아니다. 누구라도, 무엇이든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똑같이 했을 것이다.” 이런 신념은 자기애이며, 이단아의 삶을 지탱해온 에너지였다.

그가 새해 벽두에 던진 몇 마디는 두고두고 곱씹어볼 만하다.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의 도파민 자극에 빠지고, 가치와 전통이 바뀌는 혼돈의 시대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와 어른의 정신적 근육을 살찌우는 그의 언어에서 한국 사회의 희망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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