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운명, 법보다 유권자에 맡기는 게 자연스러운 美 [하상응 기고]
  •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3 10:05
  • 호수 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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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자격 판단하게 될 미 연방대법원에 전 세계 이목 집중
미국, ‘사법부의 정치 개입’에 부정적 정서 강해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이 올 11월에 열리는 미국 대통령선거에 쏠려있다. 현재 공화당에서 예비선거가 진행 중이지만, 여론조사 결과와 당내 분위기를 고려해볼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게 되면 2024년 대통령선거는 현직 대통령인 바이든과 전직 대통령 트럼프 간의 맞대결이 된다. 동일한 대통령 후보들이 두 번 연속 경쟁한 경우는 1952년과 1956년 아이젠하워와 스티븐슨 이후 처음이다(이 두 선거에서는 아이젠하워가 승리했다). 

그런데 작년 12월 콜로라도주 대법원에서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비슷한 맥락에서 메인주 주무장관이 트럼프의 대통령 후보 자격을 박탈했다고 한다. 이러한 결정에 트럼프는 즉각 반발했고, 결국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에서 심의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AFP 연합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AFP 연합

애매한 연방헌법 문구, 트럼프에 적용 무리?

이 사건의 내막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국 연방의 수정헌법 14조 3항을 잘 읽어봐야 한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과거에 연방의회 의원, 합중국 관리, 주(州) 의회의원 또는 각 주의 행정관이나 사법관으로서 합중국 헌법을 수호할 것을 선서했는데, 후에 합중국에 대한 폭동이나 반란에 가담하거나 또는 합중국의 적에게 원조를 제공한 자는 누구라도 연방의회의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 대통령 및 부통령의 선거인, 합중국이나 각 주에서 문무의 관직에 취임할 수 없다. 다만 연방의회는 각 원의 3분의 2의 찬성투표로써 그 자격박탈을 해제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문구는 ‘폭동이나 반란’이다.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2021년 1월6일 연방의회 의사당 폭동을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럼프가 사주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3년 전에 연방의회에서 벌어진 사건을 폭동이나 반란으로 규정한다면, 그리고 트럼프가 그 사건의 주동자라고 이해한다면 수정헌법 14조 3항에 의거해 트럼프의 대통령 후보 자격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이 콜로라도주 대법원 결정의 법적·논리적 근거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수정헌법 14조 3항의 내용이 전직 대통령에게도 적용되는지의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합중국이나 각 주에서 문무의 관직에 취임할 수 없다’고 되어있는데 문무의 관직(any office, civil or military)에 대통령이 포함되느냐의 여부도 불분명할 뿐 아니라, 첫 줄의 ‘합중국 관리(an officer of the United States)’에 대통령이 해당되느냐 여부도 모호하다(‘대통령 및 부통령의 선거인’은 선거인단의 선거인을 말하는 것이지 대통령 혹은 부통령을 지칭한다고 보지 않는다). 

미국 연방헌법 문구가 적혔던 당시의 상황과 당시의 단어 의미에 근거해 해석해야 한다는 원전주의(originalism) 입장에 따르면 수정헌법 14조 3항에 명확히 대통령이 언급되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전직) 대통령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 가능하게 된다. 또한 2021년 1월6일 폭동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탄핵이 2021년 1월20일 바이든 대통령 취임 직전에 연방하원에서 통과되었으나, 연방상원의 탄핵심판에서 기각된 바 있기 때문에 재차 논의될 사안이 아니라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에서는 트럼프의 후보 자격을 박탈했지만, 미시간주 대법원에서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 이유를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연방헌법 해석 여부를 떠나, 또 한 가지 살펴봐야 하는 사안은 선거법이다. 미국의 선거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관리되지 않고 주 차원에서 관리된다. 후보 등록 방법,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 자격 요건, 사전 현장투표 및 우편투표 방식, 투표소의 개수, 투표용지의 형식 등이 모두 주 혹은 주의 하위 행정 단위인 카운티에서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콜로라도주 대법원에서 트럼프의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다고 결정한 것은 콜로라도주에만 적용된다. 우선은 3월5일 열리는 콜로라도 공화당 예비선거 투표용지에 트럼프 이름을 못 올린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 판결의 효력이 유효하다면 11월 본선거에서도 콜로라도 투표용지에 트럼프를 올리지 못할 여지가 있다. 

그런데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굳이 트럼프가 콜로라도주 대법원 결정에 반발할 이유는 없다. 이번 공화당 대통령 후보 예비선거에는 총 2467명의 대의원이 있는데, 그중에서 콜로라도주에 할당된 대의원 수는 37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무장관의 결정으로 트럼프가 후보 자격을 박탈당한 메인주도 20명의 대의원밖에 없다. 즉, 콜로라도주와 메인주에서 트럼프가 예비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고 해도, 다른 주들에서 승리해 대의원 수를 확보하면 되기 때문에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왜 트럼프는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결정에 격렬히 저항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연방대법원까지 나서서 이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할까.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연방대법원 ⓒEPA 연합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연방대법원 ⓒEPA 연합

보수 성향 강한 대법관들, 트럼프에 유리

그 이유는 현재 많은 주에서 트럼프의 후보 자격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1월9일 현재, 콜로라도주와 메인주처럼 트럼프의 후보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내용의 소송이 약 15개 주에서 진행 중이다. 그중에는 애리조나주와 위스콘신주 같은 경합주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와 별도로 이미 약 10여 개 주에서는 법적 공방이 종료되어 트럼프의 후보 자격을 인정한 바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콜로라도주 대법원이 내린 결정이 다른 주에서도 나온다면 11월 선거 때 트럼프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못 올리는 주들이 생겨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트럼프 선거운동본부는 연방대법원의 개입을 요구했고, 연방대법원은 이에 화답해 콜로라도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일인 3월5일 전에 가급적 판단을 내리겠다고 한 상황이다. 

과연 연방대법원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대다수 미국 정치 전문가는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방향으로 수정헌법 14조 3항을 해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트럼프 재임 시 임명된 3명의 대법관을 비롯한 6명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총 9인 대법관으로 구성된 연방대법원에서 트럼프에게 유리한 판단을 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런데 그 전에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만약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후보 자격을 박탈한다면, 사법부가 정치행위에 깊숙이 개입하는 꼴이 된다. 유권자의 손으로 선출되지 않은, 9명에 불과한 연방대법관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자격을 박탈한다면 ‘정치의 사법화’의 또 다른 예가 된다는 말이다. 

지금 미국의 상황이 남북전쟁 직후 반란 세력이었던 남부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막기 위해 마련된 수정헌법 14조 3항을 적용할 만큼 엄중한 상황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운명은 유권자들의 손에 맡기는 것이 자연스럽다. 법의 논리로 정치를 재단하는 작업은 명쾌할지는 모르나,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적 결정은 일반 유권자들이 내리는 것이 원칙이다. 그것이 바로 정기적으로 선거를 치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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