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묵은 부시장·부군수 낙하산 인사”…전남서 또 논란
  • 정성환·배윤영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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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 vs 일선 시군, 부시장·부군수 자체 임명에 ‘동상이몽’
반복되는 ‘부단체장’ 낙하산 인사 갈등…‘법’과 ‘관행’의 충돌
“법적 근거없이 갑질” vs “측근 앉혀 기초단체장 왕국될 것”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30년 묵은 전남도와 일선 시군 간에 ‘부단체장 낙하산 인사’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갑진년 새해 벽두 1월 2일 오전, 전남 고흥군 청사 1층 로비. 전남도 인사에 따라 첫 출근한 조대정 고흥부군수가 전국공무원노조 고흥군지부의 출근 저지 투쟁에 부딪혔다.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은 군청 1층 로비와 3층 부군수실 앞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조합원들의 피켓에는 ‘지방자치 역행하는 전라남도 낙하산은 이제 그만’ ‘전남도 알 박기 인사 30년 낙하산 인사 규탄’ ‘시군 자리까지 뺏나, 전남도 낙하산 인사 규탄’ 등이 적혔다. 

이들 조합원들은 “전남도의 일방적 부단체장 임명이 지방자치법을 위반한 불법적인 낙하산 인사”라고 주장했다. 장인화 전국공무원노조 고흥군지부장은 “전남도의 부당한 관행적 낙하산 인사와 관련해 그동안 여러 번 대화 요구를 요청했다”며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외면하면서 지난해 12월 28일 또다시 낙하산 인사를 단행했다”고 성토했다.

전국공무원노조 고흥군지부 소속 조합원들이 1월 2일 오전, 고흥군청 1층 로비에서 전남도 인사에 따라 첫 출근한 조대정 고흥부군수의 출근 저지 투쟁을 하고 있다. ⓒ전공노 고흥군지부
전국공무원노조 고흥군지부 소속 조합원들이 1월 2일 오전, 고흥군청 1층 로비에서 전남도 인사에 따라 첫 출근한 조대정 고흥부군수의 출근을 저지하는 투쟁을 하고 있다. ⓒ전공노 고흥군지부

‘출근저지 투쟁’에…방 못 들어간 고흥군 부군수

조대정 전 전남도 관광체육국 관광과장은 3급(지방부이사관)으로 승진해 고흥군 부군수로 영전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청사 내 부군수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외부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다. 이날 고흥군뿐만 아니라 구례군에서도 이길용 신임 부군수에 대한 출근 저지 ‘투쟁’이 진행됐다.

부단체장 임명을 둘러싼 인사 갈등이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전례는 많다. 지난해 7월 3일, 순천시에서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남지역본부가 오전 8시부터 전남도청 출신 유현호 부시장의 순천부시장 발령은 ‘전남도의 일방적 낙하산 인사’라며 강하게 반발하며 출근 저지 실력행사를 했다. 

광주 남구청에서는 지난해 7월 부구청장 2명이 동시에 근무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광주시와 남구 간 인사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에도 당시 민형배 광산구청장이 광주전남에서 처음으로 3급 부구청장을 자체 승진시켜 광주시와 인사 갈등을 겪기도 했다. 남구는 지난 2005년 역시 시에서 내려 보내던 4급 도시국장을 자체 승진 의결해 광주시와 인사 파행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를 두고 온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해당 기초자치단체는 자체승진을 ‘관치 관행’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치행정’으로 가는 길을 개척한 사례라고 자평했다. 


더 거세진 ‘부단체장 알박기’ 논란

최근 전남도가 신년 정기 인사를 단행한 가운데 기초단체 부단체장 인사를 둘러싼 ‘낙하산 논란’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법에 따른 ‘자치권 확보’와 광역과 기초단체 간 인사교류를 앞세운 ‘관행’이 충돌하면서다. 이에 부단체장 교체인사 때마다 전남도와 시군 간 줄다리기를 벌이고, 도 내부적으로 부단체장 선호도가 높아 인사권자들이 홍역을 치르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남도는 ‘전출’이라는 관행으로 전남도 3급 또는 4급 간부를 도내 22개 시군의 부시장이나 부군수로 인사 발령해왔다. 

특히 올해는 전남도와 기초단체 공무원노조 간 대립이 첨예해 지고 있다. 광역단체가 임명해 온 기초단체 부단체장 직급이 4급에서 3급으로 한 계단 올라가면서 이 자리를 지키려는 기초단체 공무원들의 의지가 더욱 강렬해졌기 때문이다. 

전남도는 지난 1일자로 승진·전보인사 등을 통해 3급 5명, 4급 4명을 도내 7개 시군의 부시장·부군수로 보냈다. 3급(지방부이사관)의 경우 목포부시장에 이상진, 나주부시장 안상현, 광양부시장 김기홍 등이 보임됐다. 

조대정 고흥부군수와 정현구 무안부군수가 3급으로 승진 발령됐다. 지방자치법 새 시행령에 따라 처음으로 3급 부군수가 탄생한 것이다. 자치조직권 강화 취지로 ‘인구 10만명 미만 지자체 부단체장 직급을 단계적으로 4급에서 3급으로 상향한다’는 시행령에 따른 것이다. 그동안 전남지역 부단체장 직급은 순천·목포·나주·광양·여수시 3급, 나머지 18개 군은 4급이었다.

​지난해 10월 25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구례군지부가 군청 민원인 주차장에 현수막을 내걸고 전남도의 부단체장(부군수)에 임명에 반대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지난해 10월 25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구례군지부가 군청 민원인 주차장에 현수막을 내걸고 전남도의 부단체장(부군수)에 임명에 반대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공노 “자체 승진, 관치관행 벗어난 자치행정…부단체장 내리꽂기, 인사적체·사기저하 초래”

부단체장 인사 갈등은 수십년째 계속되고 있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매년 인사철이면 기초지자체의 반발에도 광역자치단체에서 일방적으로 낙하산 인사를 단행 관행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단체장을 시민이 직접 뽑는 1995년 이래로 기초지자체의 부시장, 부군수, 자치구 부구청장의 경우 광역지자체가 소속 공직자를 자치구로 보내는 ‘관행’이 이어졌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 배경에는 현실적인 인사운영과 지방자치법이 달리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지방자치법 제110조 4항은 “시의 부시장과 군의 부군수, 자치구의 부구청장은 일반직 지방공무원으로 보하되 그 직급은 시장과 군수, 구청장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지방자치법은 소속 공무원 승진 등은 해당 지자체장에게 있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법조문에 충실한다면 당연히 부단체장 임명권은 해당 시장군수구청장이 갖는 것이 맞다. 이에 따라 원칙적으로 기초자치단체의 장이 상급단체인 시·도에서 요청하는 인사교류를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현실은 딴판이다. 광역자치단체가 기초자치단체의 예산이나 권한 배분에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정치적인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기초자치단체장은 광역자치단체의 인사교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다”며 “기초자치단체에 대한 감사권과 예산권을 가진 광역자치단체에 미운털이 박히면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전국 234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부시장이나 부군수, 부구청장을 시장이나 군수, 구청장이 임명한 곳은 가뭄에 콩 나듯 극히 드물다. 과거 서울 도봉구, 영등포구 등 4개 구청과 대전 대덕구가 부단체장을 자체 승진시킨 사례가 있다. 도 단위에서는 강원 속초시와 춘천시가 부단체장을 자체 승진·임명했다가 광역-기초지자체 간 갈등으로 원대 복귀하기도 했다.

30년 묵은 전남도와 일선 시군 간에 ‘부단체장 낙하산 인사’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전남도청 전경 ⓒ전남도
30년 묵은 전남도와 일선 시군 간에 ‘부단체장 낙하산 인사’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전남도청 전경 ⓒ전남도

전남도 “시장·군수와 협의 발령, 낙하산 인사 주장 동의 못해…道와 소통창구 필요”

전공노는 직급 상향 이전부터 전남도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기초단체 부단체장은 기초단체장이 임명하도록 지방자치법이 규정하고 있는데 전남도가 법적 근거도 없이 갑(甲)질하고 있다는 게 전공노 입장이다. 전공노는 부단체장 낙하산 인사가 시군 인사적체와 사기저하를 초래한다는 주장도 펼친다.

공무원들도 부단체장이 시·군 자치단체에 머무르는 기간은 대략 1년으로 경력 쌓기용 ‘간이역’ 역할 뿐이라며 낙하산식 부단체장 임용의 문제점도 제기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한 관계자는 “전남도가 일방적으로 임명한 부단체장은 각 시군의 실정을 모르거나 짧은 기간 동안 재직하고 타 기관으로 전출하는 경우가 많다”며 “단체장이 새로 오면 직원들의 업무보고에 2주 정도가 소요돼 행정력 낭비를 초래하고, 짧은 기간 있다 보니 시군의 특수성과 행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떨어져 행정 난맥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부작용을 지적했다. 

전남의 한 군청 관계자도 “대다수 부단체장이 전남도의 승진 통로로 거쳐 갈 뿐, 군의 현안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해결방안 없이 시간만 지나가길 바라는 복지부동의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부단체장은 업무추진비도 군과 관련 없는 전남도청 공무원과 부단체장과 관계가 있는 지인들의 경조사비에 충당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공무원노조는 광역지자체의 부단체장 임면권(任免權)을 없애고 일선 시·군·구 자치단체의 자체적인 인사를 통해 부단장을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남도는 현행 인사방식을 고수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시장군수들과 부단체장 인사를 협의하기 때문에 낙하산 인사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도는 기초단체 사무 가운데 80% 정도가 광역단체와의 공동사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전남도와 기초단체 사이에서 소통창구 역할을 하며 행정업무를 관리 감독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 관계자는 “자체 승진이 가능하면 기초단체장이 자신의 측근을 부단체장에 앉힐 것”이라며 “이럴 경우 기초단체장의 왕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남도 공무원노조도 최근 전남도에 부당한 부단체장 인사 중단을 촉구했다. 도청 안팎에선 상황이 이렇자 기초단체도 행정과 정무 부단체장 두 명을 임명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행정부군수는 도가 임명하고 정무부군수는 자체 승진시켜 군의 인사적체 등 제기된 문제점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시도지사협의회가 행정안전부에 이를 건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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