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50일 만에 딸을 잃었다”…‘유죄’ 위해 12년 싸운 유족
  •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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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남편 잃고 통한의 세월 보낸 가습기 살균제 참사 유족들
SK케미칼·애경 前대표 유죄에 “1262명 죽인 죗값으로는 부당”
숨진 딸의 오빠와 엄마 뒤에 당시 사용했던 가습기 통이 놓여 있다. ⓒ유족 제공
숨진 딸의 오빠와 엄마 뒤에 당시 사용했던 가습기 통이 놓여 있다. ⓒ유족 제공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 대표가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1심 무죄를 뒤엎고 홍지호(74)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65)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각각 금고 4년형을 선고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족들은 옥시 전 대표에 이어 이들 기업까지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 위해 12년간 싸움을 벌여왔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른 2011년부터 작년 12월까지 확인된 피해자는 5691명, 사망자는 1262명에 달한다. 유족들은 오랜 간병으로 생활고에 놓였거나 죄책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등 크나큰 고통 속에서 ‘법정 투쟁’을 이어왔다.

15일 시사저널은 생후 50일 뒤 ‘흡입성 폐렴’으로 사망한 고(故) 이의영씨 아버지 이장수(68)씨와 ‘기관지확장증’으로 당시 74세에 사망한 고(故) 김유한씨 아내 이명순(75)씨를 전화 인터뷰해 그간의 소회를 들어봤다. 이장수씨와 이명순씨는 가족의 죽음이 SK케미칼이 애경산업과 출시한 가습기 제품을 사용한 것과 연관성이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2심 판결을 어떻게 보나.

이장수: “1심 무죄에 비해서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판결이지만 1262명을 죽인 죗값으로는 부당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전 국민을 상대로 실험을 했으면 그에 맞는 형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이명순: “한 사람을 살인해도 10년 이상 형량이 나오는 시대다. 그런데 수천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해놓고 달랑 금고 4년이라니 정말 안타깝다. 이런 제품을 팔도록 내버려 둔 국가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

 

유죄 판결이 나오기까지 12년이 걸렸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이장수: “딸 의영이가 하늘나라로 간지 29년이 지났다. 아직도 아이 엄마랑 탄원서를 쓴다. 2심 재판장님한테도 그걸 보냈다. 올해 26살 된 아들도 누나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서 매주 화요일마다 청와대 앞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시위에 나갔다. 안정적으로 수입이 나던 개인택시도 그만뒀다. 수시로 변호사도 만나야 하고 기자회견도 나가야 하다 보니 꼬박꼬박 일을 나갈 수가 없는 처지다.”

이명순: "누군가는 남편 하나 잃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 사건으로 식구 전체가 죽었다. 4주 약값만 1038만원이 들어갔다. 돈이 부족해 약값을 못 낼 때면 눈앞이 캄캄해졌다. 자가였던 삼성동 아파트도 전세로 내주고 치료비에 돈을 쏟았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 후유증을 앓다 숨진 김유한씨가 생전에 아내 이명순씨와 함께 찍은 사진 ⓒ유족 제공
가습기 살균제 사용 후유증을 앓다 숨진 김유한씨가 생전에 아내 이명순씨와 함께 찍은 사진 ⓒ유족 제공

정부로부터 피해 지원은 아예 못 받은 것인가.

이장수: “흡입성 폐렴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발병할 수 있다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연구 결과도 나왔지만 정작 딸은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2019년 개정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의해 환경부로부터 ‘가습기 살균제 노출 확인자에 해당한다’는 통지만 받았을 뿐 어떠한 지원을 받지는 못했다.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개별 심사도 대기 중이다.”

이명순: “기관지확장증이 인정돼 국가로부터 94만원을 받은 게 전부다. 위로금 명목의 장례비나 치료비 등은 더 받지 못했다. 혹시나 위로 차원의 연락이라도 올 줄 알았는데 일절 받지 못했다.”

 

긴 싸움으로 정신적 고통도 상당했을 것 같다.

이장수: “아내와 나는 연세대학교 병원에서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아내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딸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그렇다. 아내와 나는 TV에서 유명 탤런트가 세균이랑 물때를 깨끗이 없애준다고 하길래 좋은 제품으로 믿고 샀는데 그게 사망 원인이 돼버렸다.”

이명순: “남편 간병을 하느라 초등학교 교사도 명예퇴직했다. 남편이 죽고 나서는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한동안 2~3년은 집 밖을 못 나갔다. 주변 친구들도 못 만나고 우울증으로 끙끙 앓았다.”

 

일부 유족은 검찰에 상고를 요구했다.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나.

이장수: “상고심에서 더 무거운 형량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탄원서든, 기자회견이든 가리지 않고 싸워볼 것이다”

이명순: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힘써볼 생각이다. 왕복 3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서라도 기자회견에 나갈 거고,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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