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보다 안정 택한 이재현 CJ 회장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3 17:00
  • 호수 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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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조직 전환 위해 1990년대 젊은 임원 전진 배치…강신호·구창근·신영수 등 베테랑 대표 통해 조직 정비 꾀해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2021년, 그룹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비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11년 만에 전 직원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조직 내부에서도 화제를 낳았다. 당시 이재현 회장이 던진 메시지의 핵심은 3년간 10조원을 투입, 4대 성장엔진을 키운다는 2023년 중기 비전에 있었다. 4대 성장엔진은 CJ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상징되는 문화, 플랫폼, 바이오, 지속 가능성이다.

지난해 신세계그룹에서 시작된 임원인사는 CJ그룹의 인사로 모두 마무리됐다. 신세계의 임원인사가 ‘대폭 쇄신’에 중점을 두고 인사가 단행됐다면, CJ그룹은 장고 끝에 ‘쇄신보다 안정’에 중점을 뒀다. 그럼에도 이재현 회장의 임원인사는 숙고를 거듭하며 해를 넘겼고 주주총회가 시작되는 3월 직전인 2월에야 마무리됐다.

서울 중구 소월로에 위치한 CJ 더 센터 ⓒ시사저널 임준선

임원인사 해 넘겨 2월에 마무리된 까닭

CJ그룹의 임원인사가 지연되면서 다양한 얘기가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침체한 주력 계열사의 성장을 위해 대폭 쇄신과 함께 인사를 물갈이한다는 일부 기사가 나왔고, 외부 인사와 내부 인사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다 오히려 안정으로 선회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어떤 기사가 맞고 어떤 기사가 틀렸다고 단언하긴 힘들다. 실제로 어느 기업이나 임원인사는 다양한 고민과 선택의 순간이 교차하며 결정되기 때문이다.

CJ는 최종적으로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의 CEO를 교체했다. 언론에서는 두 주력 계열사의 경영진을 교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CJ제일제당의 수장만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CJ제일제당의 CEO에 오른 강신호 부회장은 이미 지난해 CJ대한통운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그런 측면에서 CJ대한통운의 신영수 대표 선임이 놀라운 얘기는 아니다. 성공한 경영진이 자리를 바꾼 것뿐이다.

CJ그룹의 임원인사 방향성을 고심에 빠뜨린 주력 계열사는 사실 CJ제일제당과 CJ ENM 두 곳이다. 참고로, 지난해 농심과 삼양식품 등은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CJ제일제당의 식품사업 역시 햇반 매출액이 지난해 역대 최대인 8503억원을 기록했다. 문제는 바이오 실적이었다. 중국의 사료 수요 급감은 바이오 사업 성장에 제동을 걸었다.

그 결과, 2019년부터 줄곧 성장세를 보이던 CJ제일제당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2023년 들어 모두 하락했다. 매출보다 뼈아픈 건 영업이익이다. 매출은 전년 대비 4.7% 감소한 17조8904억원으로 선방했으나, 영업이익은 35.4% 빠지며 8195억원으로 내려앉았다. 미국에서 바람이 분 K푸드 열풍을 중국에서 역풍이 분 사료 수요 급감이 막은 셈이다. CJ에 2023년은 중요한 시기였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한 구원투수 등판의 순간이다.

CJ제일제당은 그간 견고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K콘텐츠와 K푸드 바람에 힘입어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전략적으로 올바른 포지션이었다. 이재현 회장은 조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조직의 문제를 그룹에서 가장 잘 아는 이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신호 부회장은 CJ제일제당과 회장실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과감한 혁신보다 때로는 안정 속 점진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봤다.

CJ ENM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쿠팡과 넷플릭스, 유튜브 등 신생 플랫폼과 콘텐츠 기업들의 막강 공세, 거듭된 적자 등으로 지난해 몸살을 앓았다. 구창근 대표의 교체설이 거론된 이유다. 그러나 구창근 대표는 CJ올리브영의 성장 기폭제인 옴니채널 전략 등 올리브영을 ‘단순 화장품 로드숍’에서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변화시킨 인물이다. CJ ENM의 적자의 책임을 온전히 그에게 묻긴 어려웠을 것이다.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질 필요는 있다.

이재현 회장이 2022년 11월17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만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현 회장이 2022년 11월17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만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하고잡이’ 인재 위한 역동성 살려야

2010년까지 CJ는 대학생에게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를 다퉜다. 2000년 초반, 당시 수직적이던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이재현 회장은 국내 기업 최초로 직급 호칭 대신 ‘님’ 호칭과 캐주얼 복장제도를 도입하며 수평적 문화에 앞장섰다. 그 결과, 젊은 인재와 우수 인재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CJ의 역동성을 상징한 젊은 조직이란 포지션은 네이버, 카카오 등 IT기업이 대체했다.

2021년 그룹 중기 비전 선포식을 통해 이 회장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인재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나온 키워드가 바로 ‘하고잡이’ 인재다. 주도적이며 열정적으로 일하는 젊은 인재들에게 다양한 기회와 공정한 경쟁을 통해 파격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성장의 일터로 그룹의 체질을 바꾸겠다고 이재현 회장은 약속했다. 올해 발표된 임원인사에서 CJ는 국내 기업 최초로 1990년생 임원까지 배출했다.

손경식 CJ그룹 회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넷플릭스와 쿠팡을 혁신적 경쟁자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룹 신년사에서 특정 기업을 혁신적 경쟁자로 콕 집어 얘기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트렌드 주도 및 역동적 조직이라는 포지션에서 넷플릭스, 쿠팡에 밀렸다는 위기의식을 경영진이 직접 강조한 셈이다. 글로벌시장에 불고 있는 K푸드, K콘텐츠, K뷰티 열풍 중 CJ올리브영만 K뷰티 영역을 선점한 것도 고민의 영역이다.

고민 끝에 CJ그룹은 위기의 순간, 그룹을 누구보다 잘 아는 베테랑 경영진에게 구원투수를, 역동적인 조직으로의 전환을 위해 젊은 인재에게 임원이라는 선발투수를 맡겼다. 선발투수가 과감히 승부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구원투수는 조직을 재정비하고 문제를 진단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하고잡이’ 인재들이 선발에 나서 마음껏 역량을 펼치려면 강신호 부회장, 신영수 대표 등이 조직의 소방수가 돼야 한다.

CJ그룹은 제일제당의 설립을 기준으로 보면 71년의 역사를 지녔지만 CJ라는 그룹명을 사용한 시기를 놓고 보면 이제 22년 된 기업이다. 70세가 넘은 전통을 계승하는 베테랑의 모습과 20세를 넘긴 젊은 인재의 역동성 표출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것이 CJ의 숙명이다. 젊고 도전적이면서도 열정적인 모습과 온화하면서도 숙련된 베테랑의 모습을 그려 나가야 한다. CJ그룹의 성장엔진 가속도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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