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사고와 ‘판박이’, 죽음 앞에 선 배전 노동자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7.18 11:06
  • 호수 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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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송·배전 유지 업무 100% 외주…감전 사망률 미국의 31.1배

한순간의 일이었다. 순식간에 온몸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2만2900볼트의 고압전류가 몸을 타고 흐르면서 7000도의 열이 뼛속까지 태웠다. ‘이대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여느 때처럼 작업 지시를 받고 전신주에 올랐던 김상범씨(가명)는 지난 6월 감전 사고를 당했다. 사고 직후 인근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화상 전문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의식이 깨어났다가 잃기를 반복했다. 일주일 만에 정신을 차린 그에게 극심한 통증보다 더한 충격이 다가왔다. 살이 썩어 들어가 팔을 절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였다. ‘차라리 죽었으면’이라는 생각도 수차례 들었다.


의사와 가족의 설득이 계속됐다. 신경까지 모두 타버려 팔을 절단해야 살 수 있다는 얘기였다. 가장 아끼던 딸조차 눈물로 하소연했다. 마지못해 수술대에 오른 김씨는 깨어난 직후 자신의 양팔이 사라졌음을 확인하고 한동안 말을 잃었다. 정신과 상담 덕분에 사고 한 달여 만에 어렵사리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사고 이후 네 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또 수차례 수술을 앞두고 있다.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회 소속 조합원들이 5월11일 한국전력 본사가 있는 나주혁신도시에서 집회를 연 뒤 행진하고 있다.


사고 잦아 보험 가입조차 안 돼 


물과 공기처럼 하루 24시간 우리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기. 사람들이 누리는 전기의 편리함 이면에는 2만2900볼트의 살아 있는 전기를 만지는 이들이 있다. 전신주에 올라가 노후 전선을 교체하거나 수리하는 배전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정전 사태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비좁은 버킷(고소작업차량의 사람을 태우는 부분)에 몸을 싣고 얽히고설킨 고압전선 사이를 오간다.


이들에게 김씨와 같은 감전 사고는 이제 익숙해진 일이 됐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작업조의 중대 사고를 1회 이상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절반이 넘었다. 한 배전 노동자는 “매일 죽을 수 있는 도구를 놔두고 옆에서 일을 하니까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다른 지역에서 감전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일을 그만두겠다고 다짐한 게 수백 번”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4년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전정희 의원실에 제출한 최근 5년간 송·배전공사 감전 사고 현황에 따르면, 177명의 배전 노동자들이 사고를 당했다. 이 가운데 18명은 사망했고, 159명은 부상을 입었다. 중증 부상으로 팔이나 다리를 절단한 사람도 많았다. 당시 전정희 의원실이 감전 사고를 당한 배전원들을 만나 인터뷰한 결과를 보면, 8명 중 7명은 ‘살아 있는’ 전선을 만지다가 감전 사고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가 잦은 탓에 보험은 가입조차 불가능하다. 보험회사에서 위험직종으로 분류해 가입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배전 노동자들의 산재 발생률은 전체 산업재해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건설업 전체 평균보다 3배가량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감전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치료 이후 더욱 극심한 고통 속에 살게 된다. 부상 정도가 약해 업무로 복귀하는 일은 흔치 않다. 신체 일부를 잃은 것에 대한 중증 스트레스로 인해 원만한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게 노조 측의 설명이다. 또 가족들에게 스트레스가 표출되면서 가정불화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들은 왜 이토록 위험한 작업에 나선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살아 있는 전선(활선)’을 직접 만지며 작업하는 직접활선공법에 있다. 지난 2001년 민간업체가 개발한 이 공법은 ‘신기술’로 불렸다. 공사비용도 다른 방식에 비해 20~30%가량 저렴했다. 한 업체에서 개발한 기술을 한국전력공사(한전)에서 사들여 전체 현장에 도입하게 됐다. 이후 정부와 한전은 작업을 할 때 전기를 끊지 않기 때문에 단전(斷電)의 불편을 피할 수 있다며 이 공법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한전 측은 이 공법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했다. 미국의 경우 현재 대부분의 송·배전 선로 작업은 절연기구를 이용한 간접활선공법으로 이뤄지고 있다. 도구를 이용하기 어려운 장소에서만 절연 고무장갑을 이용한 직접활선공법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2000년 전후로 대부분 간접활선공법을 활용하고 있고, 활선작업일 때는 휴전 상태로 진행한다. 또한 로봇공법을 통해 작업자의 안전을 중시하면서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두 공법의 감전 사망률을 비교하면 극명한 차이가 나타난다. 한국의 감전 사망률은 미국에 비해 31.1배, 일본에 비해 8.3배나 높다. 직접활선공법은 간접활선공법에 비해 경제적인 비용 절감과 생산성은 높으나 산재발생률 또한 높다는 의미다.


지난 2011년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 제7항에는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위험성이 있는 공법을 사용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공법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공법으로 공사를 발주한 한전의 책임을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고 구조와 ‘판박이’ 


외주화와 인력 부족 등 구조적인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5월 서울 구의역에서 발생한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와 구조적으로 닮은꼴이다. 송·배전 유지 업무는 100% 외주업체에 맡겨져 있다. 협력업체로 선정된 외부업체는 전국 450여 개. 대부분 10명 미만의 직원을 보유한 영세 업체들이다. 연간 매출액이 50조원을 넘는 한전에 비해 턱없이 작은 규모다. 덕분에 안전 등의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됐다.


전문인력 부족 문제도 상존한다. 미국은 48개월, 일본은 약 11개월의 교육과정 이후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데 반해, 한국은 두 달 정도의 교육만 받으면 공사를 맡을 수 있다. 그만큼 경험이나 전문성 측면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19세의 청년에게 스크린도어 정비 업무를 맡긴 것과 다를 바 없다.


지하철 사고 당시 ‘2인 1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처럼 배전 선로 교체작업도 마찬가지다. 교체작업의 경우 ‘4인 1조’로 운영돼야 하지만 이마저도 현장에서 지켜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 배전 노동자는 “사람이 부족해서 매뉴얼을 지킬 수 없다”며 “한전에서 현장 감독을 가끔 나와서 지시를 해도 4인 1조 문제를 지적하는 경우는 없었다. 한전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지하철 안전업무의 구조보다 더욱 심각하다. 한전은 그동안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사실상 묵인해왔다. 때문에 배전 노동자들은 ‘원청-하청-재하청’으로 이뤄지는 다단계 구조의 최하층으로 편입돼 일을 하게 됐다. 한 배전 노동자는 “공사가 있을 때마다 업체를 바꿔가며 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고용보험 가입 내역서를 떼보면 입사·퇴직이 많아 5~6장이 나올 정도”라고 설명했다. 안전을 넘어 생명으로부터 계속 멀어지는 구조였다. 이 과정에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이 부실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산재발생률은 늘어만 갔다. 


노동조합에서는 끊임없이 직접활선공법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폐지를 요구했지만 한전에서는 제대로 대화에조차 나서지 않았다. 국회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을 찾아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한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석원희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장은 “한전에서 2년마다 협력업체를 선정할 때 기준을 맞추기 위해 업체별로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의 명의만 빌려와 채워놓는 경우가 있다”면서 “실제 일할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4명이 할 일을 2명이 하게 되고, 시간에 쫓기면서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배전 노동자들은 정전으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2만2900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직접 만지며 작업해왔다. © 건설노조 제공


고압전류 유해 전자파에 그대로 노출 


배전 노동자들은 2만2900볼트의 근처에만 가도 고압전류의 위력을 느낀다. 전선 근처 30cm 거리에 있으면 온몸에 전기가 오는 느낌이 든다.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서는 기분이라고 한다. 고압전선을 손으로 만지고 작업을 할 때면 버킷 안에 있는 다리 같은 곳을 누가 때리는 느낌도 받는다.


배전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감전·추락 등의 재해 사고뿐만이 아니다. 암이나 뇌·심혈관계 질환이 발병했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고압전류의 유해 전자파에 노출되면서 질병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도 초저주파 전자기장을 인체발암가능물질(Group 2B)로 분류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월 급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장아무개씨는 넉 달 만에 사망했다. 장씨를 치료한 화순전남대병원 관계자는 “장씨의 직업력과 급성골수성 백혈병의 관련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소견을 내놨다. 노조는 장씨의 사망을 계기로 ‘암환자 찾기’ 사업을 벌였다. 그 결과 28명의 암환자를 찾아냈다. 


배전 노동자들이 겪는 질병의 직업 연관성을 찾기 위해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건설노조가 조선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에 의뢰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건강실태조사 결과 활선작업을 하는 조합원 중 71.9%가 근골격계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20~30kg에 달하는 장비를 착용하고 16m 높이의 전신주에 올라 전선을 당기는 작업을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이들은 각종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백혈구 수치에 이상이 있어 2차 추적검사 및 골수검사(필요시)를 해야 하는 조합원도 10명이나 나왔다. 갑상선 기능검사에서도 11.6%의 조합원들이 이상을 보였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직업성 질환에 시달리는 배전 노동자들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고혈압·당뇨 환자는 201명으로 집계됐다. 이들 가운데 18명은 최근 근로복지공단에 집단 산재요양을 신청했다. 


이철갑 조선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이런 기저질환을 가진 근로자들이 활선작업처럼 고도의 긴장상태에서 업무를 할 경우 뇌·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20년 넘게 장기간 전자기파에 노출된 이들에게 언제 어떤 질환들이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며 “이들의 건강상태를 장기적으로 추적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노조의 건강실태조사를 계기로 한전이 노조·전문가들과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근골격계 질환과 각종 직업성 암 질환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전 사고를 당한 배전 노동자 2명이 팔을 절단한 뒤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구의역 사고’ 직후 전격 대책 내놨지만… 


꿈쩍 않던 한전은 올해 6월10일 뒤늦게 직접활선공법을 폐지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전선에 직접 접촉하지 않는 공법을 최대한 활용하고, 절연스틱을 이용해 작업하는 스마트스틱 활선공법 등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 약 2주가 흐른 시점이었다. 당시 안전 업무에 대한 외주화 문제, ‘메피아(지하철 마피아)’로 불리는 외주업체와 지하철공사의 커넥션 문제 등이 도마에 오르고 있었다.


워낙 급작스럽게 발표된 탓에 졸속 발표라는 말도 나온다. 구의역 사건으로 지하철공사가 뭇매를 맞는 상황에서 조환익 한전 사장이 대책 마련을 지시하자 급작스럽게 대책을 내놨단 소리다. 협력업체와 노조 측은 발표 이전까지 이와 관련된 어떤 협의도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갑작스러운 대책이 나온 탓에 대체 공법에 대한 연구나 교육, 장비 확충 등이 미비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간 한전은 지하철공사와 마찬가지로 당사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입장을 고수했다. 감전 사고나 추락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고를 당한 근로자가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했다는 식이었다. 직접활선공법의 재해율도 1% 미만이라며 안전성을 강조해왔다.


물론 한전은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시행했지만 협력업체에 패널티를 주는 방식에 불과했다. 작업 도중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해당 지사에 지급되는 성과급을 줄이고 해당 업체와 6개월간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이었다. 업체들은 계약 해지를 막기 위해 ‘활선작업이 아니라 다른 작업을 하다 다쳤다’는 식으로 둘러대기도 했다. 오히려 직접활선공법의 위험성 실태를 숨기는 역효과로 이어졌던 셈이다.


배전 노동자의 안전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전정희 전 의원은 2014년 국정감사 당시 “전력신기술이 원가절감 효과는 있지만, 작업자의 위험도는 기존 공법보다 훨씬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전은 보호장구 개발 등에는 매우 소홀했다”며 “불법 하도급 감시, 작업인원 준수, 안전한 시공법 도입 등 작업환경 개선을 통해 사고 위험요인을 줄여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형적으로는 수년간 노조에서 요구하던 내용을 한전이 수용한 모양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대체 공법으로 거론되는 바이패스케이블공법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장비가 필요하다. 바이패스케이블공법은 지상에 작업구간 전기를 우회시키는 전선(바이패스케이블)을 설치한 뒤 교체할 전선을 잘라내는 방식이다. 한전에 따르면, 이 장비를 보유한 업체는 50%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전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30도 이상의 고온에서는 어차피 작업이 불가능한 데다 이 장비를 구입하는 데 1~2개월 정도가 소요된다”며 “전체 공사에서 직접활선공법 비중이 10%에 불과한 만큼 다른 공사부터 진행한 뒤 장비를 갖추고 진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바이패스케이블 기기를 마련하지 못한 업체가 맡은 공사는 모두 중단됐다. 활선작업차를 구입해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당장 일감이 줄어들면서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협력업체들도 장비 구입에 소극적이었다. 1억원 넘는 바이패스케이블 장비를 구입하기에는 업체 규모가 작았던 것이다. 11월 협력업체 입찰에서 떨어질 경우 빚만 남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석원희 전기분과위원장은 “협력업체나 노조와 충분한 협의 기간과 준비 기간을 갖고 대책을 마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2000억원을 들여 신공법과 안전장구 등을 개발하기로 한 만큼 연구·개발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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