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론 동반성장, 뒤로는 中企 목줄 죈 KT의 두 얼굴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7 14:00
  • 호수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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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간 KT ‘갑질’, 7000억대 공공사업 무산되나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KT의 ‘갑질’ 논란이 국정감사장을 지나 법정으로 향했다. KT를 제치고 공공사업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중소기업 메가크래프트를 탈락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핵심 서류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 결과 KT는 결국 사업을 거머쥐었고, 메가크래프트는 계약 이행을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재판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법원이 중소기업의 손을 들어줄 경우 KT는 사업권을 상실하는 이상의 결과에 직면할 수 있어서다. 실제, 업계에서는 KT가 국가계약법에 따라 부정당업자에 지정돼 공공사업 입찰 제한 조치는 물론, 지난해 수주한 7000억원대 재난안전통신망 구축사업도 잃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시사저널 최준필

경쟁입찰서 밀리자 핵심 서류 제공 거절

시간은 지난해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달청은 ‘버스 공공와이파이 임차운영사업(1차)’ 입찰공고를 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추진하는 사업으로 전국 시내버스 2만4000대에 와이파이 환경을 구축·운영하는 것이 골자였다. 1차 사업 물량은 버스 4200대, 예산 규모는 77억원이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2019년과 2020년 각각 1만 대씩 버스 공공와이파이를 확대할 계획이었다. 입찰에는 KT와 메가크래프트가 참여했다. 메가크래프트는 모바일핫스팟네트워크를 통해 전국 지하철과 버스 등에 초고속 무료 와이파이 구축 사업을 진행한 바 있는 피앤피플러스의 자회사다. 메가크래프트는 KT로부터 LTE망을 임차해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메가크래프트는 지난해 7월 KT를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그러나 축배를 들기도 전 암초를 만났다. KT가 돌연 LTE망을 빌려줄 수 없다고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망 과부하 우려와 별정통신사업자격 미확보가 이유였다. 메가크래프트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사업의 최종계약을 위해선 기한 내 KT의 망 공급견적서 제출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메가크래프트는 한국정보화진흥원에 서류 제출 기한 연기를 요청하고, KT에 망 임대 약속 이행을 호소했다.

이를 두고 갑질 논란이 불거지자 KT는 다시 망을 빌려주기로 했다. 이후 다른 갑질이 시작됐다는 것이 메가크래프트의 주장이다. 계약을 위해 LTE망에 대한 공인된 서류(시험성적서)를 조달청에 제출해야 했는데, KT가 이를 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메가크래프트는 결국 입찰에서 탈락했고, 차순위 협상대상자이던 KT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의 협상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KT는 망에 대한 공인 서류를 조달청에 제출했다. 메가크래프트는 KT가 자사를 입찰에서 탈락시킬 목적으로 시험성적서 제출을 거부했고, 이는 명백한 불공정거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시 KT의 불공정거래행위와 대기업에 대한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조달청에 사업 재공고를 촉구했다. 그럼에도 KT는 지난해 11월 한국정보화진흥원과 최종계약을 체결하며 결국 사업을 손에 쥐었다. 현재 KT는 사업을 진행 중인 상황이다. 오는 2월까지 전체 물량의 70%를 구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메가크래프트는 지난해 말 조달청과 한국정보화진흥원을 상대로 ‘KT와의 계약 이행을 금지하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KT는 망 제공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메가크래프트가 별정통신사업자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메가크래프트에 망을 제공했다가 정기통신사업법 위반 방조죄의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메가크래프트는 “별정통산사업자 등록은 사업 계약을 체결한 후에 진행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사업의 계약자로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별정사업자 등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창규 KT 회장 ⓒ 시사저널 최준필
황창규 KT 회장 ⓒ 시사저널 최준필

끊이지 않는 KT의 중소기업 갑질 사례

KT는 또 메가크래프트에 시험성적서를 제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시험성적서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메가크래프트가 시험성적서 발급을 요청했다면 적극적으로 협조했을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결국 메가크래프트의 요청이 없어 시험성적서를 전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메가크래프트는 “KT에 시험성적서 제공 요청을 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메가크래프트는 ‘시험성적서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외부로 유출할 수 없다’ 등 시험성적서 제공을 거절하는 내용이 담긴 KT 관계자와의 대화 녹취록을 최근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일 법원이 메가크래프트의 손을 들어줄 경우 KT는 사업자 지위를 잃게 된다. 통신업계에서는 버스 공공와이파이 임차운영사업의 경우 규모가 작아 KT의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또 원칙적으로 이미 버스에 설치한 통신장비를 철거해야 하지만 법조계에선 새 낙찰자가 KT의 장비를 인수하는 등 합의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사업자 지위 상실에 따른 KT의 직접적인 손실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법원이 KT의 행위를 불공정거래로 판단할 경우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을 받게 될 수 있다. 국가계약법에는 사기 또는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 입찰, 낙찰 또는 계약을 체결한 경우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을 내린다고 명시돼 있다. 부정당업자로 지정되면 2년 이내 범위에서 공공사업 입찰 참여가 제한된다. 더욱 큰 문제는 이미 수주한 공공사업의 사업자 지위도 잃게 된다는 데 있다. KT는 지난해 재난안전통신망 구축사업을 수주해 12월부터 진행해 오고 있다. 국가기관이 하나의 통신망을 통해 재난을 전파하고 대처할 수 있는 통신망을 구축·운영하는 사업으로 예산 규모만 7000억원을 상회한다. 만일 부정당업자 지정으로 재난안전망 사업을 잃게 될 경우 KT는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KT의 갑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사저널이 지난해 2월 ‘[단독] KT, 동반성장은 말뿐…벤처기업 상대 갑질(제1476호)’ 기사를 통해 보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퀵서비스 오토바이 배달통에 디스플레이를 장착해 광고판으로 활용하는 기술에 대한 특허를 내고 해당 사업에 뛰어든 A사다. 이 회사는 당초 KT와 업무제휴를 맺고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A사는 이 과정에서 KT로부터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 계약을 빌미로 LTE-M 상품을 강매하는가 하면, A사 제품의 핵심부품을 특정 업체로부터 고가에 납품받도록 강요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LTE-M 계약 직후엔 구매조건부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입장을 고쳤다. KT와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A사는 LTE-M 약정 해지를 요구했지만 1300만원의 위약금을 납부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해 8월에는 KT가 중소기업의 일감을 빼앗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KT와 손잡고 ‘디지털 가축방역’ 시스템을 발전시켜온 중소기업 B사가 진원지다. B사는 2004년부터 KT와 협력해 농림부 산하 ‘디지털가축방역’ 단말기를 납품하고 운영하는 등의 업무를 맡아왔다. 사업 초기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계속해서 사업을 진행하면서 노하우를 쌓아나갔다.

이후 디지털 가축방역 사업이 발전·성장하고 안정화되면서 사업적 가치를 가지게 됐고, 여기에 지난해 국가사업 확충시기가 맞물리면서 B사는 결실을 예상했다. 그러나 KT는 지난해 6월 B사에 일방적으로 가축방역 사업 해지를 통보했다. B사의 규모가 작고, 단말기 대금 입금이 지연된다는 점이 이유였다. KT는 가축방역 사업을 자회사인 KT M&S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B사는 그동안 공들인 사업을 한순간 잃으면서 어려움에 처했고, 직원들 상당수도 실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KT는 2014년부터 4년 연속 ‘동반성장 최우수 기업’ 타이틀을 유지해 오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KT는 2014년부터 4년 연속 ‘동반성장 최우수 기업’ 타이틀을 유지해 오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대기업 중 하도급법 위반 부과액 1위 불명예

이처럼 계속된 갑질 논란에도 KT는 2014년부터 4년 연속 ‘동반성장 최우수 기업’ 타이틀을 유지해 오고 있다. 2017년에는 ‘동반성장 최우수 명예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실상은 어떨까.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KT의 갑질이 단순한 일탈이 아닌, 고질적이고 만연한 문제임을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한 ‘2014년부터 2018년 6월까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사에 대한 하도급법 위반 사건처리 현황’ 자료가 그것이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KT는 최근 5년간 하도급법을 위반해 과징금 부과액 기준 1위(21억500만원) 불명예를 얻었다. 이는 적발 기업 40곳의 전체 과징금(95억7900만원)의 21.97%에 해당하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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