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계 적폐 청산 1순위’ 전명규의 끈질긴 생명력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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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희 ‘미투’ 배후로 지목된 전명규 전 대한빙상연맹 부회장
빙상계 파벌 논란으로 2014년 사퇴했지만, 3년 만에 다시 복귀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폭행 피해 폭로를 막았단 의혹을 받는 전명규 한국체육대 교수(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는 체육계 ‘적폐 청산 1순위’로 지목받고 있다. 그러나 전 교수는 2014년에도 빙상계 파벌 논란에 책임을 지고 빙상연맹 부회장직을 사퇴했지만 3년 만에 다시 복귀했다. 이번에도 전 교수 측은 “빙상계를 떠나겠다”고 밝혔으나 체육계에선 여전히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 지난해 10월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 지난해 10월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가해자 감싸고 피해자 협박했는데…

전 교수는 측근을 통해 조재범 전 코치 폭행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소송을 취하하도록 압박했단 의혹을 받고 있다. 전 교수와 측근간의 녹취 파일에는 전 교수가 심 선수의 폭로 기자회견을 막고 피해자들에게 합의를 종용한 정황이 담겼다. 전 교수는 측근에게 “피해자 스스로 못하겠다고 할 때까지 압박해야 한다” “제일 친한 애를 찾아 골머리 아프게 만들어라” “(심 선수 측에) 너희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식으로 말해라” 등을 언급하며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뿐만 아니라 전 교수가 빙상계 ‘미투’ 움직임에도 압박을 가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심 선수의 성폭행 피해 폭로 이후 추가 폭로 움직임을 보였던 젊은빙상인연대 측은 “전 교수 측에서 선수들에게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 왔다”고 밝혔다. “연대가 선수들의 성폭행 사건을 인지하고 변호사를 선임했을 때부터 압박이 시작됐고, 폭로 직전까지도 계속됐다”는 것.

 

빙상계 파벌 논란에 사퇴했지만 3년 만에 금의환향

한편 전 교수가 ‘적폐의 중심’으로 지목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소치올림픽 때 전 교수는 빙상계 파벌 논란이 불거지자 책임을 지고 빙상연맹 부회장직에서 사퇴했다. 당시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빅토르 안) 선수의 아버지가 아들의 귀화 배경에 “빙상연맹의 파벌 싸움이 있었다”며, 전 교수를 겨냥해 “고위 임원의 전횡이 극심했다”고 지적하면서다. 

그러나 전 교수는 불과 3년 만에 연맹으로 복귀했다. 2017년 빙상연맹 부회장으로 다시 선임된 전 교수는 평창올림픽 지원을 담당했다. 2014년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나서 빙상계 파벌 논란을 조사하라고 나선만큼 전 교수의 복귀는 힘들 거란 전망이 나왔지만, 보란 듯이 얼마 안 돼 돌아온 것.

젊은 빙상인 연대 회원들이 지난해 7월9일 대한체육회앞에서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관리단체 지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젊은 빙상인 연대 회원들이 지난해 7월9일 대한체육회앞에서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관리단체 지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정부도 인정한 ‘전명규의 전횡’…그러나 혼령은 남아있다

사실 3년 동안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것도 아니었다. 지난해 5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발표한 빙상연맹 특정감사 결과에 따르면, 전 교수는 2014년 사임 이후 권한이 없는데도 빙상연맹 업무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다. (당시 보도자료 링크)

전 교수의 전횡이 가능했던 이유는, 빙상연맹 정관에도 없는 상임이사회 때문이었다. 2016년 빙상연맹은 대한체육회 방침에 따라 정관에서 상임이사회 근거 규정을 폐지했다. 그러나 당시 이기인 빙상연맹 부회장이 평창올림픽에서의 성과를 위해 전 교수를 다시 불러올 것을 건의했고, 이후 전 교수를 중심으로 상임이사회가 꾸려졌다. 측근들로 이사회를 꾸린 전 교수는 국가대표 선발과 지도자 선임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때부터 대표팀을 이끈 전명규 교수는 빙상계에선 ‘대부’로 통한다. 그가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이후 남녀 쇼트트랙의 전성기가 지속됐고, 김동성·안현수·이승훈 등 스타플레이어가 탄생했다. 평창올림픽 성과를 바라는 빙상연맹 측에선 전 교수의 경력이 절실했던 셈이다.

이 같은 감사 결과 발표 이후 전명규 교수는 “빙상계를 떠나겠다”고 밝혔지만, 체육계에선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빙상연맹이 지난 9월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되고 관리위원회가 꾸려졌는데, 일부 위원들이 전 교수의 최측근이란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지난해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손혜원 의원은 “일부 관리위원의 자질에 대해 빙상계의 불만이 많더라”고 언급했다.

다만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전명규 교수가 워낙 오랫동안 빙상계에 있었기 때문에 친분이 있었을 순 있지만 최측근으로 파악되진 않는다”면서 “관리위원을 선정하는 데 전문가의 역량을 고려했을 뿐 전 교수와의 관계가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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