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력가 아들’로  위장한 제비의 두 얼굴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23 08: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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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인의 사건추적] 2013년 예비신부 이방연씨 실종 사건

제주도 출신인 이방연씨(여·30)는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치과에 취업해 치위생사로 일했다. 이씨는 자신의 직업에 상당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었다. 능력도 인정받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빨리 팀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객지 생활을 하면서도 부모를 극진히 챙기던 효녀였다.

이씨는 2009년쯤 한 교회에서 정아무개씨(32)를 만나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로 호감 가는 인물이었다. 정씨는 자신을 연세대를 졸업하고 증권회사에 다니면서 미국의 MBA를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부모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 거주하며 상당한 재력을 가진 상류층 집안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미국식 이름으로 ‘알렉스 최’라고 불렸다.

4년 정도를 사귀며 두 사람 사이에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2013년 1월 정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식을 올리고 살자”며 이씨에게 청혼했다. 이씨가 바로 확답을 주지 않자 정씨는 “부모님의 반대가 너무 심하다. 그래서 지금 바로 미국에 같이 가야 된다. 안 그러면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재촉했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수상한 남자친구의 행적

이씨는 자신의 가족과 직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망설였지만 결국 정씨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두 사람은 미국으로 출국해 결혼식을 올린 다음 유럽 등지로 신혼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2013년 1월24일 오전 9시에 미국행 비행기에 타기로 했다. 출국하기 전 이씨는 다니던 치과를 그만두고 전세보증금을 빼고 휴대전화도 해지했다.

미국에 가져갈 것을 제외하고는 가구와 가전제품도 정리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작별인사를 했다. 이씨는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 갔다가 자리를 잡으려면 약 한 달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 기간 동안 연락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미국 상류사회의 일원이 될 이씨를 ‘신데렐라’에 비유하며 부러워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가족들은 이씨에게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았다. 결혼식은 잘 치렀는지 신혼여행은 어디로 다녀왔고, 재력가 시부모와는 어떻게 지내는지 모든 게 궁금했다. 하지만 그토록 고대했던 이씨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평소 엄마와 매일 연락을 주고받던 딸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휴대전화 한 통, 아니면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전할 수 있을 텐데 야속하게도 깜깜무소식이었다. 이런 상태로 두 달이 넘어가자 가족들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씨의 신상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한 가족들은 69일째 되던 날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둘 드러난다. 먼저 가족들은 이씨가 미국으로 출국했는지 출입국관리소를 찾아가 기록을 확인했다. 생년월일과 이름을 알려줬더니 “해외로 나간 기록이 없다”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예 비행기를 탄 적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행 비행기를 탔을 것으로 믿었던 가족들은 혼란스러웠다.

경찰은 이씨에 대해 생활반응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통신, 금융, 병원, 인터넷 접속 등이 전무했다. 이씨가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는 반응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씨의 카드는 계속 사용되고 있었다. 주로 심야시간에 택시를 타거나 모텔, 나이트클럽과 술집 등에서 결제했다. 이 중에는 실종 직전 이씨가 세 들어 살던 집에서 10분 거리의 편의점에서 사용한 기록도 있었다. 경찰은 카드가 사용된 곳을 탐문해 사용자를 확인했다. 그랬더니 그는 놀랍게도 이씨와 결혼을 약속한 정씨였다. 이씨가 현금으로 갖고 있던 전세보증금 700만원도 유흥비로 탕진한 뒤였다.

정씨의 행적도 수상했다. 그는 출국 예정일 새벽 인터넷으로 휴대전화 번호를 변경했다. 아침에는 한 렌터카 업체를 찾아가 이틀간 차를 빌렸다. 정씨가 렌터카를 반납할 때 총 운행거리는 43km였다. 정씨는 이 차로 쇼핑몰에 다녀왔다고 했는데, 집에서 쇼핑몰까지의 거리는 왕복 23km다.

그의 주장대로 쇼핑몰을 오간 거리를 빼더라도 20km의 공백이 있다. 실종 4일째 되던 날, 정씨는 특수 칼 전문점에서 한 자루에 30만~40만원 하는 회칼을 구입했다. 또한 이씨의 소지품을 하나도 남김없이 없애버렸다.

경찰은 정씨를 ‘이방연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집중 조사를 벌였다. 먼저 이씨의 행방부터 추궁했다. 정씨에 따르면 두 사람은 출국 전날 심하게 말다툼을 벌였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손가락에 끼고 있던 커플링까지 빼서 던지고 뛰쳐나갔다. 그 길로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다. 말다툼을 벌인 장소에 대해 처음에는 ‘봉천동 모텔’이라고 말했다가 인터넷 접속기록이 자신의 집으로 나오자 “집인 것 같다”고 말을 바꿨다.

휴대전화 번호를 바꾼 것은 “여자친구의 가족들에게 연락이 올 것이 두려워서 그랬다”고 말했으며, 이씨의 소지품을 버린 것도 “아버지가 보고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버렸다”고 주장했다. 렌터카를 빌리고 주행거리 중 20km의 행적에 대해서는 “쇼핑몰에 다녀온 후에는 어디에 갔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자세한 운행정보를 말하지 않았다.

회칼을 구입한 것은 “우울증이 있어 자해나 자살을 위해서”라고 했으며 칼의 행방을 묻자 “아버지가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씨의 아버지는 “이씨의 짐과 칼은 본 적도 버린 적도 없다”며 아들과 상반된 주장을 폈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씨가 실종된 후 그의 신용카드를 사용한 것에 대해 정씨는 “나중에 갚아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썼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 이방연씨 가족 제공
ⓒ 이방연씨 가족 제공

드러난 거짓말, 복잡한 여자관계

정씨의 실체도 속속 드러났다. 미국 상류층의 재력가라던 그의 아버지는 손수레를 끌며 폐품을 팔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고, 구로구의 연립주택에 살고 있었다. 정씨 또한 지방대학 1학년을 중퇴한 후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연세대 졸업’ ‘증권사 재직’ ‘MBA과정’ 등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공시생”이라고 했지만 실제 공무원시험에는 단 한 차례도 응시한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백수’에 능수능란한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정씨는 지난 4년 동안 이씨와 그의 가족들을 감쪽같이 속였다. ‘미국행’은 처음부터 사실이 아니었다. 비행기를 예약한 적도 없으며 미국에 마땅한 연고도 없었다. 이처럼 그의 실체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씨는 자신의 배경을 속이고 이씨를 만나는 동안 다른 여성 4명을 동시에 만나고 있었다. 나이는 20대 초반에서 30대 후반까지 다양했다. 이들 대부분은 정씨를 동호회나 클럽에서 만나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모두 ‘국내 명문대 출신’에 ‘부잣집 아들’이라는 말에 속아 정씨에게 농락당했다.

정씨는 이씨가 실종된 지 약 한 달 후에는 이 중 대기업에 다니는 한 여성과 싱가포르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두 사람은 고급 리조트에 머물며 쇼핑과 레저를 즐기다 돌아왔다. 이 여성은 이방연씨의 존재에 대해서는 몰랐고 자신이 정씨의 여자친구라고 말했다.

여러 정황에 따라 경찰은 생활반응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볼 때 정씨가 이씨를 살해해 시신을 유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정씨를 상대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도 실시했다.

경찰은 정씨에게 ‘이방연씨를 죽였는가?’ ‘당신은 이씨가 죽은 것을 본 적 있나?’ ‘당신은 여자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라고 물었다. 정씨는 세 가지 질문에 전부 ‘아니요’라고 답변했다. 결과는 거짓 반응으로 나왔다.

이에 대해 정씨는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탓에 거짓말 탐지기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기억을 되살릴 수 있도록 ‘최면수사’를 제안하지만 정씨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경찰은 뒤늦게 정씨의 집을 압수수색했지만 이씨 실종과 관련한 증거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경찰은 이씨 시신을 찾지 못해 ‘살인’ 혐의 대신 ‘사기’와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정씨에게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사기범죄에 대해 살인의 형량을 내려 달라는 것은 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징역 2년형을 선고했다. 정씨는 형량이 많다며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보다 3년이 많은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가족들은 대국민 호소문 등을 통해 이 사건의 재수사를 강력히 요청해 왔다. 이방연씨의 아버지는 “자살하려고 몇 번 시도하다가 딸의 시체라도 찾고 싶은 심정으로 참고 살고 있다”며 “딸이 매일 하루도 안 빠지고 꿈속에서 자기를 찾아 달라고 한다”며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심증은 차고 넘치는데 물증이 없다

이방연씨가 실종된 지 올해로 6년째다. 지금까지 생활반응이 전혀 없어 살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약 이씨가 살해됐다면 유력한 용의자는 남자친구 정아무개씨다. 그는 처음부터 이씨를 속였다. 학벌과 직업, 부모의 배경 등을 거짓으로 꾸몄다. 이씨와 진지한 만남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씨는 ‘부잣집 아들’ 행세를 하면서도 데이트 비용 대부분을 이씨에게 내도록 했다. 대신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기념일마다 이씨에게 고가의 시계·가방 등을 선물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네가 나에게 해 준 것 미국 가면 다 보상해 주겠다”고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다. 이씨와 가족들은 이런 정씨를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정씨는 다른 여성들에게도 생활비를 얻어 쓰며 기생적인 생활을 해 오고 있었다.

정씨의 가면은 언젠가는 벗겨지게 돼 있었다. 그는 경찰에서 “미국행은 처음부터 사실이 아니었다. 미국에 간다고 하면 적당히 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자 측에서 끝까지 고집을 부린 탓에 일이 커져 버렸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미국에 가자고 한 것은 이씨를 자신에게서 떼어놓기 위한 꼼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씨가 “따라가겠다”고 하자 계획에 차질이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정씨의 의심 행적은 차고도 넘친다. 실종신고 후 경찰은 정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씨의 행적을 물었다. 정씨는 태연하게 “방연이는 나와 함께 잘 있다”고 거짓으로 둘러댔다. 그는 결혼을 약속한 애인이 실종됐는데도 걱정하거나 찾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실종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실종 이후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이씨의 소지품을 없앤 것 등은 이씨가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예단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정씨는 이씨의 행방을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는 또 이씨를 본 마지막 목격자다. 정씨가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이씨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이씨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으면 사건 해결도 기대하기 힘들다. 정씨에 대한 심증은 넘치지만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이씨가 실종된 지 두 달이 넘은 시점에 실종신고가 된 탓에 폐쇄회로(CC)TV 등 증거물들이 사라졌다. 이씨가 가족들에게 “한 달간 연락이 안 된다”고 한 말이 사건 해결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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