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한라건설의 구미 부동산 처리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2 14:00
  • 호수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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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보증금 50% 책정해 317억 건물 80억에 넘어가
시행사, 한라건설‧아시아신탁 공문서 위조‧횡령 의혹 제기

부동산 디벨로퍼로 활동해 오던 유아무개씨는 2005년 구미시 토지 9917㎡(약 3000평)를 사들여 지하 2층, 지상 11층 규모로 아파트형 공장(한라시그마밸리)을 짓기로 하고 한라건설과 시공권 계약을 맺었다. 사업 초기 저축은행 10곳은 490억원의 사업비를 유씨에게 지원하는 조건으로 총 분양물량의 65%를 시공사가 책임질 것을 요구했고, 유씨가 대표로 있는 에이원도시개발은 한라건설을 시공사로 최종 선정했다.

아파트형 공장과 같은 개발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비 관리다. 통상 개발사(시행사)와 시공사 양측 모두 사업비를 빼가지 못하도록 중간 장치로 신탁등기를 내세운다. 제3자인 신탁회사가 공사비 관리를 책임질 경우 사업의 공정성을 도모할 수 있어서다.

이 사업의 신탁 업무는 중소 부동산 신탁사인 아시아신탁이 맡았다. 참고로 올 5월1일자로 아시아신탁은 신한금융지주 계열사로 편입됐다. 2009년 시행사(에이원도시개발), 시공사(한라건설), 신탁사(아시아신탁) 등 3자는 만약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한라건설이 분양물량의 65%(상가와 아파트형 공장)를 분양가대로 인수키로 하는 사업약정서에 사인했다.

시행사와 시공사 간에 수년째 갈등을 빚고 있는 구미 아파트형 공장 ‘한라시그마밸리’ ⓒ 에이원도시개발
시행사와 시공사 간에 수년째 갈등을 빚고 있는 구미 아파트형 공장 ‘한라시그마밸리’ ⓒ 에이원도시개발

한라건설 “시행사와 협의하에 절차 진행”

갈등은 사업 초기부터 터져나왔다. 406억원의 공사비 중 80%는 공정률에 따라 3개월마다 주되 나머지 20%는 준공 후 3개월 이내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은 업계 관행으로 볼 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공사계약서에 따르면 최초 공사비 지급일은 지하 터파기 작업이 진행되는 공정률 3.15%였다. 하지만 이러한 약속을 어기고 아시아신탁은 계약 후 1주일 만에 한라건설에 공사비 20억원을 줬다. 시행사와 시공사·신탁사 간 갈등은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이로 인해 사업은 파행을 거듭했다.

갈등의 핵심은 공사비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시행사의 동의를 받았느냐다. 이 점은 이후 재판 과정에서도 쟁점이 됐다. 시행사 대표 유씨는 재판에서 아시아신탁이 제출한 서류 자체가 위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처음 계약할 때 작성한 서류에는 13개 업체의 직인과 간인이 찍혀 있는 반면, 아시아신탁이 법원에 제출한 문서에는 이러한 흔적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사진 참조). 서울중앙지법에 보관 중인 신탁등기용 원부 역시 사업 관계사 13개사의 직인이 찍힌 서류가 아니어서 쟁점은 계속되고 있다. 시행사는 한라건설이 신탁사와 짜고 20억원을 횡령했다고 주장한다.

양측 간 갈등을 해결하려면 법원이 사업 관계자들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하면 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증인 확인 절차가 생략됐다. 시공사와 신탁사 손을 들어준 2심 재판부의 판결문에 판사 3명의 서명이나 날인이 없다는 점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재판 과정 전체가 불공정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

사업이 파행을 겪자, 한라건설은 2015년 아시아신탁을 통해 사업을 공매로 넘긴다. 그러기 위해선 기존 계약부터 없애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행사 동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시행사가 당초 약속을 어겼다면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 물론 현재 시행사는 자신들이 사업 해지 통보를 받을 만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공매로 넘기는 과정 역시 석연치 않다. 한라건설은 이 사업장 부지를 공매로 처분하면서 공매입찰가의 50%를 입찰보증금으로 내도록 했다. 또 계약과 동시에 잔금은 30일 이내 납부토록 했다. 이렇게 진입장벽을 높일 경우 제3자가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은 낮아지고, 이로 인해 유찰이 반복되면 입찰금 자체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이 사업의 경우 감정가 317억원의 공매입찰가가 수차례 유찰된 끝에 72억원까지 떨어졌다. 처리도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하루 5회씩 입찰을 열어 3일간 총 15회씩이나 매각 절차를 밟은 것이다. 그럴 때마다 매매 값은 10%씩 떨어졌다. 시행사 대표인 유씨는 “입찰가를 높여 공매 참여자를 제한한 데다 하루 5회씩 매각 절차를 밟은 것은 특정인에게 물건을 넘기려는 의도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아시아신탁은 일반 매매 방식으로 매각했다. 그 결과 소유권은 80억원의 입찰금을 쓴 S사로 넘어갔다. 유씨 측은 공매 처리 과정에서 S사가 계약금도 내지 않는 등 정상적인 매각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실이라면 300여억원의 부동산이 4분의 1 수준의 헐값에 팔린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러한 매각 방식은 관련 업계에선 흔치 않은 일이다. 경매전문가인 황지현 법무법인 참진 실장은 “보증금을 입찰가의 10%로 정하는 게 경·공매에 있어 일반적인 관행인데, 50% 책정 방식은 흔치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일반적인 경매 방식으로 부동산 신탁회사들의 매각 과정을 이해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한 신탁회사 관계자는 “이 토지에 대해 아시아신탁이 입찰보증금 50%를 내건 것이 투자신탁 시장에 흔치 않은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면서도 “법원 경매나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의 공매와 달리 신탁회사의 공매는 사적 거래이기 때문에 일률적인 잣대를 대고 판단하긴 힘들다”고 밝혔다.

아시아신탁은 “공개 매각 시 구체적인 매각 방법은 시공사의 요청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라면서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이 사건 역시 당시 시공사의 요청에 의해 조건이 결정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최초 시행사, 시공사 간 합의로 작성한 사업비정산기준표(왼쪽)와 한라건설이 뒤늦게 법원에 제출한 서류. 한쪽에는 간인이 찍힌 반면 개정된 서류에는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특정 업체 몰아주려 입찰보증금 높였나

시행사 측은 한라건설의 분양대행을 많이 맡아온 C사가 이 건물을 낙찰받은 S사의 사실상 실소유주라고 주장한다. 시행사 대표 유씨는 S사에 대해 관련 경매가 열리기 한 달 전 C사에 의해 부랴부랴 만들어진 회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C사가 한라건설의 분양대행 사업을 많이 추진해 왔다는 것을 이유로 구미 한라시그마밸리 토지 소유권 인수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주장한다. 유씨는 건물에 입주한 C사의 첫 달 관리비가 한라건설 명의로 입금된 것을 근거로 대고 있다.

또 계약금 납입 확인을 요구하는 시행사의 요청에 아시아신탁이 뚜렷한 입장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라건설 관계자는 “공매에 반대해 온 시행사 대표 유씨의 입장을 감안해 매각을 오랫동안 끌어오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해 결정한 것이며, 이 과정에 위법행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이 사업으로 우리도 수백억원의 손실이 났기에 법원도 소송에서 모두 우리 쪽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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