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세습에 합병세습까지...여기가 교회야 기업이야
  • 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3 14:00
  • 호수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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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세습 천태만상] 158개 세습교회 분석해 봤더니…

민주화를 이룬 한국 사회에서 ‘세습’이라는 단어는 부정적 의미가 짙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세습은 그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3대(代)로 이어진 북한의 권력세습은 봉건 왕조국가나 다름없다는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러한 세습 논란에 교회가 가세했다. 국내 대표적 대형 교회인 명성교회의 ‘부자 세습’ 논란이 확산되면서 세상의 빛이 돼야 할 교회가 눈살 찌푸리는 잿빛에 휩싸였다. 명성교회는 최근 교단 총회재판국이 ‘부자 세습 불가’ 판결을 내린 데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교회세습은 어제오늘 발생한 일이 아니다. 1970~80년대에도 목사 부자 간 세습은 있었고, 형편이 어려운 작은 교회의 경우 세습이 권리가 아닌 의무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근래에 이뤄지고 있는 교회세습의 이유와 행태다. 특히 교인 수가 많고 자금이 풍부한 대형 교회의 대물림이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다.

시사저널은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상담 자료를 근거로 작성한 ‘세습교회 명단’을 입수해 한국 교회의 세습이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그 현황과 기업 뺨치는 다양한 유형으로 변모하는 세습 행태를 분석했다. 이와 함께 세습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교회 권력의 막강한 영향력과 이로 인해 지속되고 있는 부패 사슬의 실체를 추적했다.

ⓒ 일러스트 정찬동
ⓒ 일러스트 정찬동

2010년대 수도권에서 세습교회 급증

교회세습은 2010년대 들어 급속히 늘었다. 세습교회 명단에 오른 158개 교회 중 102개 교회가 이 시기에 세습이 이뤄졌다. 몇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먼저 세대교체 시점과 맞물렸다는 분석이다. 1980~90년대 교회 부흥을 이끌었던 중·대형 교회 목사들이 대거 은퇴에 나선 시기라는 것이다.

이헌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은 “근래 들어 교회세습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교회 특히 대형 교회 목사들의 세대교체 시기이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세습을 기다리는 교회가 많은데 명성교회 사태가 선례로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는 교회세습을 바라보는 교인들의 인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크게 문제 삼지 않던 것을 이제는 공론화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 교회의 세습이 사회문제로 부상한 데는 교인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직접 반대에 나선 영향이 크다.

교인 수를 기준으로 세습교회의 규모를 살펴보면 1000명 이상인 교회가 53개에 이른다. 여기에는 5000명 이상인 교회가 6개, 1만 명 이상인 교회도 8개나 포함돼 있다. 명성교회와 함께 광림교회, 금란교회, 서울성락교회 등이 세습이 이뤄진 대표적인 대형 교회로 꼽힌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압도적으로 많다. 서울이 58개, 인천·경기가 66개로 합치면 124개 교회에 이른다. 전체의 80% 가까이 차지하는 수치다. 세습이 이뤄진 교인 1만 명 이상 대형 교회 8곳도 모두 이 지역에 있다.

직접세습 비난받자 변칙 동원해 대물림

교회세습의 행태도 달라졌다. 2000년대까지 자녀에게 곧바로 교회를 물려주는 직접세습이 주를 이뤘다면 2010년대 들어서는 다양한 유형의 변칙세습이 횡행하고 있다. 이는 교회세습에 대한 인식과 제도의 변화 때문으로 풀이된다.

교회세습이 잘못됐다는 인식을 지닌 교인들이 세습 반대에 적극 나서고, 세습금지법을 도입한 교단이 ‘세습 불가’ 방침을 공표하면서 대놓고 직접세습을 감행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교인들의 반발을 무마해야 하고 교단의 눈치도 봐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한 교회세습 시도가 줄을 잇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명성교회의 세습 과정을 들여다보면 변칙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교회세습의 ‘발전상’을 목격하게 된다. 명성교회가 속한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은 2013년 이른바 세습금지법을 제정했다. 

명성교회는 2014년 3월 경기도 하남에 새노래명성교회를 분립하면서 김삼환 담임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를 이 교회의 담임목사로 내정했다. 세습을 향한 첫걸음이다. 이후 명성교회는 2015년 12월 김삼환 목사가 정년퇴임하자 2017년 3월19일 아들 김하나 목사의 위임목사 청빙을 결의했다. 세습의 본격적인 시도다. 그러면서 하남 새노래명성교회와의 합병안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분리 세습’을 통해 내부 반발과 외부 비난을 최소화하려 한 것이다.

분리 세습은 아버지 목사가 개척한 여러 교회 중 하나를 자녀 목사에게 맡기는 방식이다. 외형적으로 직접세습 형태를 띠지 않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합병과 같은 절차를 거치게 되면 사실상 직접세습과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맞게 된다. 기업의 M&A(인수합병)와 유사해 ‘합병 세습’이라고도 한다. 명성교회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지교회 세습’과 ‘통합 세습’은 이와 유사한 형태를 띤다. 두 세습 행태는 한 묶음이라고 할 수 있다. 자녀에게 직접 교회를 물려주기 어렵게 되자 재벌의 계열사와 비슷한 지교회를 설립해 자녀가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한 후 통합을 통해 세습하는 형태다. 왕성교회가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왕성교회는 2003년 지교회 형태로 과천왕성교회를 세우고 길자연 담임목사의 아들 길요나 목사를 이 교회 담임으로 파송했다. 9년이 흐른 뒤 왕성교회는 과천왕성교회와 합병을 시도했다. 몇 차례 우여곡절 끝에 합병을 성사시킨 후 2012년 10월 길요나 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했다.

변칙세습의 행태는 이외에도 다양하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에 따르면 우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징검다리 세습’이 있다. 할아버지 목사가 아들이 아닌 손자 목사에게 세습을 하는 경우다. 직계세습이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 방식이다.

좀 더 복잡한 ‘교차 세습’도 있다. 규모가 비슷한 두 교회의 목사들이 자녀 목사들을 상대방 교회 담임목사로 세우는 방식이다. A교회 목사 자녀가 B교회에 청빙되고 반대로 B교회 목사 자녀가 A교회에 청빙되는 방식이다. 표면적으로는 다른 교회를 맡았으니 문제 될 게 없어 보이지만 기득권층의 보직 변경일 뿐 그 영향력은 달라진 게 없다.

이보다 좀 더 복잡한 ‘다자간 세습’도 있다. 여러 교회의 목사 자녀들이 서로 얽혀 활동하는 방식으로 세습을 시도하는 것이다. ‘쿠션 세습’은 이제 보편화한 방식이다. 아버지 목사가 가까운 목사에게 교회를 형식적으로 이양한 다음 자신의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물려주는 방식이다. 최근 대형 교회에서 우선순위를 두고 시도하려는 행태인데 상호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과정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교회를 세습하려는 걸까. 무엇 때문에 변칙적인 수법을 써가며 무리하게 세습을 고집할까.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사회적 지탄을 받으면서까지 세습을 시도하는 힘의 근원은 뭘까. 교회세습을 반대하는 측에서 세습을 문제 삼는 이유가 바로 이 답변 속에 있다. 

금란교회(왼쪽)와 광림교회 ⓒ 시사저널 포토
금란교회(왼쪽)와 광림교회 ⓒ 시사저널 포토

 

장로회신학대학교 세습반대 TF 관계자들이 8월5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앞에서 명성교회 부자 세습 문제를 둘러싼 교단 재판국의 재심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장로회신학대학교 세습반대 TF 관계자들이 8월5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앞에서 명성교회 부자 세습 문제를 둘러싼 교단 재판국의 재심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정부패 의혹과 갖가지 추문 드러날까 우려

교회의 논리는 대동소이하다. 여러 이유를 대지만 결국에는 ‘교회 안정’에 방점을 찍는다. 특히 대형 교회가 그렇다. 외부에서 목사를 초빙해 오면 교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거다. 그동안 교회를 키워왔던 목사를 가장 잘 아는 자녀가 물려받아야 안정적인 교회 운영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교회 안정이라는 그럴싸한 주장의 이면에는 대부분 외부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교회의 속사정이 있다. 절대적 권위를 부여받은 목사의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교회 운영, 이로 인해 발생한 부정부패 의혹과 갖가지 추문들, 이를 덮고 가기 위해서는 세습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방인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실행위원장은 “교회의 대형화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현상인데 목사가 절대적인 권위를 지녀야 가능하다”며 “그럴 경우 교회 재정과 행정이 투명하고 민주적이지 않게 되는데 외부에서 새로운 목사가 들어오면 이 사실이 드러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교회세습의 밑바탕에는 기존의 부정부패 메커니즘을 이어가려는 권력의 속성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그 동력은 현대사회에서 성공의 만능키가 된 ‘돈’이다. 대형 교회 내에는 목사를 정점으로 여러 구성원들이 다양한 이권에 얽혀 있다. 돈을 매개로 한 부패 사슬이 세습을 정당화하고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교계 원로인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는 “현대사회에 물질주의가 판을 치고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돈이 우상이 돼 있기 때문에 돈이 많고 교인 수가 많은 교회의 세습은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종교는 돈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좋다. 기독교가 순수하려면 적어도 돈과는 거리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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