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정으로 공정위 사정권 든 애경의 딜레마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4 10:00
  • 호수 15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감 몰아주기 해결 가장 시급한 문제…자녀 저금통에 올케 곳간까지 채워

회사의 성장은 모든 기업인들의 바람이다. 그러나 사세가 확장되는 것을 마냥 반가워하기는 어렵다. 기업 규모가 커지는 만큼 규제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애경그룹도 이런 딜레마에 빠졌다. 그동안 중견기업으로 분류돼 온 애경그룹은 올해 5월 대기업집단에 포함됐다. 홍대 신사옥 준공과 계열사 상장 등으로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기면서다. 현행법상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면 이전에 비해 11개 많은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오른쪽)과 그의 장남인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오른쪽)과 그의 장남인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장영신 회장 자녀들 회사에 일감 몰아줘

새로 직면한 규제 중에서도 해소가 가장 시급한 것은 ‘일감 몰아주기’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 계열사가 총수 일가 지분율 30%(비상장사 20%)가 넘는 계열사와 거래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 연간 내부거래 규모가 200억원, 비중 12% 이상인 경우 공정거래위원회 규제심의 대상에 오른다.

문제는 애경그룹의 내부거래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는 데 있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내부거래 해소를 위한 자구노력을 기울여온 반면, 규제망에서 벗어나 있던 애경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재 애경그룹에선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사명을 올린 계열사가 12곳에 달한다.

이 중 내부거래 규모가 작아 규제 범위 밖에 머물고 있는 계열사 3곳을 제외한 나머지 9곳이 당장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해소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재계에선 내부거래를 줄이는 것보다 자산총액을 줄여 대기업집단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지적마저 나올 정도다.

현재 애경그룹 일감 몰아주기 논란과 관련해 사정권에 들어가 있는 계열사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일가 회사와 김보겸 우영운수 회장 일가 회사다. 김 회장은 장 회장 셋째 오빠인 고(故) 장위돈 전 서울대학교 교수의 부인이다. 장 회장에겐 올케인 셈이다. 전업주부이던 장 회장은 1972년 고(故) 채몽인 애경그룹 창업주 별세 이후 애경을 이끌어왔다. 이 과정에서 장 회장은 1984년 남편을 떠나보내고 사업가로 변신한 김 회장과 동업을 했다. 장 회장이 비누와 세제 등 제품을 제조하면 김 회장이 이를 운송하는 식이었다.

AK홀딩스·AK켐텍이 표적 될 가능성

이런 구도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장 회장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들 대부분이 제조업체인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대표적인 곳이 그룹의 모태이자 세제 제조업체이던 에이케이아이에스(옛 애경유지공업)다. 이 회사는 장 회장(5.63%)과 그의 장남인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50.33%), 차남 채동석 애경산업 부회장(20.66%), 삼남 채승석 애경개발 사장(10.15%), 장녀 채은정 애경산업 부사장(13.23%) 등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사실상 개인회사다. 에이케이아이에스는 매년 매출의 상당 부분을 내부거래로 채웠다. 지난해에도 전체 매출(512억원)의 53%에 해당하는 271억원의 매출이 그룹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나왔다.

포장용기 제조업체인 에이텍도 공정위 사정권 내에 있다. 장 회장(0.11%)과 채형석 총괄부회장(28.66%), 채동석 부회장(17.91%), 채승석 사장(3.32%) 등이 지분 50%를 가지고 있는 에이텍은 그룹 계열사 가운데 내부거래 규모가 가장 크다. 지난해 315억원의 매출이 그룹 차원의 지원을 통해 발생했다. 그해 전체 매출 631억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들 계열사의 경우는 그나마 낫다. 전량에 가까운 매출을 내부거래로 올린 계열사도 있다. 장 회장 일가가 지분 28.1%와 55%를 각각 소유한 한국특수소재와 애경P&T가 그런 경우다. 실제 지난해 한국특수소재는 매출 전량(148억2700만원)이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나왔고, 애경P&T의 내부거래율도 89.1%(165억4200만원)에 달했다. 이 밖에 채은정 부사장(6.67%)과 그의 남편인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76.92%)가 지분 85.3%를 가진 애드미션도 현재 규제 범위 내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이 회사는 내부거래율이 14.1%(14억2400만원)에 불과해 규제 탈피에 부담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문제가 되지 않지만 향후 규제 대상에 오를 수 있는 계열사도 있다. 지주사인 AK홀딩스와 그 자회사인 AK켐텍이 그곳이다. 먼저 장 회장 일가가 지분 45.9%를 보유한 AK홀딩스의 지난해 내부거래율은 27.9%(93억8800만원)다. 액면만 놓고 보면 규제 범위 내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AK홀딩스는 일감 몰아주기 논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현행법상 지주사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최근 공정위가 대기업 지주사의 수익구조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는 등 지주사 내부거래를 둘러싼 분위기도 심상치 않아서다.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배당 외 수입이 높은 지주사를 중심으로 규제가 적용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AK켐텍은 지난해 8월 입법 예고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규제 대상이 된다. 개정안에 ‘총수 일가 지분 20% 이상 기업이 지분 50% 초과 보유한 자회사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AK켐텍의 AK홀딩스 지분율은 81.12%다. 장 회장 일가가 AK홀딩스를 통해 AK켐텍을 간접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AK켐텍은 매년 400억~500억원 규모의 일감을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몰아 받고 있다.

장 회장 일가가 그룹의 주요 사업들을 맡고 있다면 김 회장 일가는 이를 측면 지원하는 업체들을 경영하고 있다. 이 중에서 물류업체인 우영운수·비컨로지스틱스와 시설관리업체인 에이엘오 등이 규제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우영운수와 비컨로지스틱스는 애경산업 등 계열사에서 생산한 제품 운송업무를 전담하고 있으며, 에이엘오는 애경이 운영하는 AK플라자와 와이즈파크 등의 시설 유지·관리업무를 도맡으며 매출을 올리고 있다.

세 회사의 공통분모는 김 회장과 그의 장남 장우영 JAS 대표, 차남 장지영 인셋 대표, 삼남 장대영 에이엘오 대표 등이 지분 100%를 쥐고 있다는 점이다. 이뿐만 아니라 김 회장과 그의 세 아들, 그리고 며느리들로만 이사회가 구성돼 있다. 지분과 경영권 100%를 김 회장 일가가 거머쥐고 있는 셈이다.

김보겸 회장 일가는 측면지원 사업 전담

이들 회사의 또다른 공통점은 매출을 애경그룹 계열사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우영운수와 비컨로지스틱스의 지난해 내부거래율은 각각 97.1%(56억2400만원)와 100.0%(51억9000만원)에 달했다. 사실상 애경의 지원 없이는 자생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에이엘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 회사는 매년 매출의 상당 부분을 그룹 계열사에 의존해 왔고,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도 44.6%(43억6900만원)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처럼 장 회장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자신의 자녀들은 물론 올케 일가의 사익까지도 챙겨준 셈이다. 그러나 대기업집단 지정으로 이런 행보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수위를 강화하려 한다는 점도 애경가(家)에는 불안요소다. 실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후임인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8월27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주력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인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애경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그룹 계열사들 간 거래 과정에서 시가 거래 원칙 등 각사가 정한 규정을 준수했다”며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돼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게 된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