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추락] 중국 “‘낡은’ 글로벌 원톱 체제 바꿀 수 있는 건 우리뿐”
  • 양정대 한국일보 국제부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9 14:00
  • 호수 159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향한 대륙의 자신감…중국은 과연 미국의 맞상대가 될 수 있을까

미국은 사실상의 세계 최강국이 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5년여 동안 부동의 ‘원톱’으로 군림하고 있다. 지금껏 그 지위에 도전한 국가는 크게 세 나라 정도였다. 러시아(소련)와 일본 그리고 중국이다. 그런데 성격이 사뭇 다르다. 미국과 소련 간 경쟁은 군사적 대립에 기반한 체제 경쟁이었고, 일본의 도전은 경제·금융이 중심이었다. 이에 비해 미국과 중국 간 대립·갈등은 경제·무역·금융·군사·외교안보 등 전방위적이다. 그야말로 전면적인 패권 경쟁인 셈이다. 흔들리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과연 중국이 메울 수 있을까.

ⓒXinhua 연합
ⓒXinhua 연합

30% 훌쩍 넘는 중국의 세계경제 기여도

중국이 미국과 거의 모든 분야에서 패권을 다툴 만큼 성장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9년 미·중 수교 이전만 해도 ‘죽(竹)의 장막’으로 불렸던 중국은 사회주의권에선 맹주였을지언정 글로벌 강국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백악관이 5월21일 의회에 제출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 보고서에서 “중국 내 정치·경제적 개혁을 제한하는 중국 공산당의 의지를 과소평가했다”며 수교를 후회하는 듯한 대목을 포함시킨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중국이 최근 미국과의 전방위 갈등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결기를 보일 수 있는 근저에는 ‘경제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을 ‘세계의 공장’이라고 부르지만 중국은 이미 ‘세계의 시장’이기도 하다. 중국은 매년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하는 세계경제 성장 기여도가 30%를 훌쩍 넘는다. 2009년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부동의 1위다. 세계경제가 3% 성장할 경우 최소한 1%는 중국 덕분이란 얘기다. 이에 비해 미국의 기여도는 10% 안팎에 그친다.

중국의 저임금 노동시장은 지난 40년간 글로벌 기업들의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하지만 근래 들어 더 주목할 부분이 있다. 14억 인구의 구매력 상승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에 1만 달러를 넘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2018년 11월 상하이 국제수입박람회(CIIE) 개막연설에서 “향후 15년간 30조 달러어치 상품과 10조 달러어치 서비스를 수입하겠다”고 밝혔다. 무려 4경5000조원 규모다. 교역 상대국들엔 매력적인 청사진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미국이 동맹·우호국들을 향해 ‘반중 전선’ 동참을 요구하지만 독일을 위시한 유럽 주요국은 물론 일본조차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 상황에서 중국과의 대립이 가져올 경제적 후폭풍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서다. 미국은 탈중국 글로벌 공급망 구상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축을 공언하지만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을 전면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당일 중국 주재 미상공회의소(암참)의 회원사 대상 설문조사에서 중국 내 생산·공급망 유지 의견이 70%를 넘는다는 사실이 공개된 건 상징적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당장 미국에 정면으로 맞설 만한 상황인 건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군사력에서 미국에 절대 열세다. 자유·민주라는 보편적 가치 측면에서도 아직 글로벌 리더로선 군색한 구석이 많다. 특히 이 두 가지가 결합됐을 때 중국이 느끼는 압박감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대만·남중국해를 고리로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 강화되고 홍콩 자치와 신장위구르·티베트 인권 문제가 공론화할 경우 중국 입장에선 체제의 근간인 ‘하나의 중국’ 원칙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로 1분기 성장률이 -6.8%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5월28일 마무리된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두고 중국 지도부가 “최악의 상황이니 어떻게든 살아만 있자”고 결의했다는 얘기가 허투루 나오는 게 아니다. 올해 취업 못 하는 대졸자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에 별다른 이견이 없을 정도다. 

중국에 경제가 흔들리는 건 글로벌 무대에서의 발언권 약화를 의미한다. 코로나 광풍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기 시작한 4월부터 총 50조 위안(약 8800조원) 규모의 막대한 경기부양책을 쏟아낸 이유다. 특히 상당액을 지방에 쏟아붓고 있는 건 주목할 만하다. 이른바 ‘중국판 뉴딜’의 핵심이 바로 신형인프라 건설과 함께 신형도시화란 점에서다. 

서방 선진국들의 도시화 비율이 90%를 훌쩍 넘는 데 비해 중국은 60% 수준이다. 양회에선 1인당 GDP 증가세 유지와 도시화 진전을 전제로 그간의 내수 ‘촉진’ 정책을 ‘확대’로 승격시켰다. 14억 인구의 구매력이 높아지면 중국 내 생산·소비·투자의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화웨이 논란에서 보듯 미국의 경제적 압박이 제재로 이어지더라도 탄탄한 내수시장을 갖고 있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올해 국방비 증가율 6.6%가 눈길을 끄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1991년 이후 최소 증가율이라지만 올해 경제 환경을 감안하면 일반적인 예상을 넘어선다. 2015년부터 추진한 군 현대화 프로젝트를 뒷받침함으로써 2050년까지 미국에 버금가는 군사력을 갖추겠다는 목표와 맥이 닿아 있다. 경제력에선 미국의 75% 수준까지 쫓아갔지만 군사력은 여전히 4분의 1 수준인 상황에서 맷집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시진핑의 진짜 전략은 ‘도광양회+굴기’다”

패권국과 신흥국 간 충돌은 이익 교환의 단계를 거친다. 미국도 그간 중국을 ‘공장’으로 활용해 왔고, 중국 역시 이를 고리로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키워 왔다. 하지만 2012년 말 시진핑 체제가 출범하면서 양상이 바뀌었다는 평가가 많다. 대체로 시진핑 주석이 덩샤오핑(鄧小平)의 유훈이었던 ‘도광양회(韜光養晦)’(때를 기다리며 힘을 기른다)에서 ‘굴기(崛起)’(우뚝 섬)로 옮아갔다는 점이 이유로 거론된다. 

시진핑 주석은 줄곧 ‘두 개의 100년’을 강조해 왔다. 2021년 공산당 창당 100년과 2049년 신중국 건설 100년이다. 명실상부한 중산층 사회로의 진입, 세계 최강국이 되는 중국몽(中國夢) 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중장기 국가전략 개념이다. 특히 5세대 이동통신(5G)과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는 게 바탕에 깔려 있다. 경제 체질을 ‘양’에서 ‘질’로 전환함으로써 글로벌 경제의 주도권 확보로까지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진찬룽(金燦榮) 중국 인민대 교수는 “시 주석의 국가전략에는 도광양회와 굴기가 모두 들어 있다”고 말한다. 굴기 일변도여서 미국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건 일면만 보는 것이란 지적이다.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면 언제든 한발 물러설 것이란 얘기인데 실제로 무역전쟁의 양상이 그랬다. 당장은 코로나 직격탄, 대선을 앞둔 트럼프의 파상 공세 등을 어떤 식으로든 견뎌내는 게 중요하지만, 결국은 미국 중심의 ‘낡은’ 글로벌 일극 체제를 바꿀 수 있는 건 중국뿐이라는 자신감이 읽힌다. 

 

☞‘미국의 추락’ 연관기사

우리가 아는 ‘원톱 미국’은 없다

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926

대선만 바라보는 트럼프의 좌충우돌

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846

중국 “‘낡은’ 글로벌 원톱 체제 바꿀 수 있는 우리뿐”

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914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