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였던 ‘위안부’ 할머니들이 인권운동가로 변화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 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4 14:00
  • 호수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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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독일 최초 역사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기술한 다니엘 슈마허 박사

일본군 ‘위안부’ 역사전쟁의 관점에서 보자면 독일은 단연코 유럽의 주전장(主戰場)이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둘러싸고 독일에서 한·일 양국은 수차례 충돌해 왔다. 예를 들면, 수원시와 자매도시인 독일 프라이부르크시가 추진했던 유럽 내 첫 번째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일본 정부와 극우의 압박으로 2016년 결렬되었다.

2017년 비젠트(Wiesent)시의 ‘네팔-히말라야 파빌리온 공원’에 수원 시민단체들과 독일 건추위의 협력으로 소녀상이 세워졌으나, 역시 일본 정부의 압박으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 비문이 철거되었다. 재독 시민단체 풍경세계문화협의회도 2018년 ‘본(Bonn) 여성박물관’에 소녀상을 세우려고 했으나, 같은 이유로 무산되었다. 동포사회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올 3월 프랑크푸르트 라인마인한인교회에 소녀상이 건립되었는데, 독일 내 6개 기독교단체들도 협업했고, 정의연도 소녀상을 기부했다.

특히 지난해 독일 최초로 역사 교과서에 ‘위안부’가 기술되었는데, 이는 유럽 최초로 추정된다. 이를 성사시킨 배경에는 다니엘 슈마허(Daniel Schumacher·38) 박사의 숨은 공헌이 있었다. 그는 20세기 아시아 역사를 소재로 많은 저술을 발표해 왔는데, 최근 독일 교과서들을 공동집필하며 일본제국주의 역사를 소개했다. 슈마허 박사는 현재 사립고에서 역사 및 영어를 교육하고 있으며, 영국 에섹스대학 역사학부 연구원이기도 하다. 시사저널이 그를 만났다. 

2017년 비젠시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했던 안점순 할머니. 슈마허 박사는 수동적인 피해자였던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정부의 책임을 요구하는 인권활동가로 변화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전했다. ⓒ클레어 함
2017년 비젠트시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했던 안점순 할머니. 슈마허 박사는 수동적인 피해자였던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정부의 책임을 요구하는 인권활동가로 변화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전했다. ⓒ클레어 함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역사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내용을 기술했는데, 정확히 어떤 내용인가.

“2019년 ‘역사를 위한 시간(Zeit für Geschichte 9)’이라는 제목으로 9학년(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용 교과서에 일본제국주의 역사를 다루는 한 장을 기술했다. 이 장에서는 정대협이 1995년 발간했던 생존자 증언집을 토대로 김덕진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 일부를 소개했다. 1937년 당시 17세였던 김 할머니는 일본의 공장에서 일할 젊은 여성을 채용한다는 한국 브로커를 따라 일본 나가사키까지 갔으나, 그의 약속은 거짓임이 드러난다. 고위직 일본군에 의해 지속적인 강간을 당한 후, 자신의 의사에 반해 상하이 일본군 주둔지로 보내져 매일 수많은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던 경험을 전하고 있다. 나는 또한 2017년 레겐스부르크 부근에 세워진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했던 안점순 할머니의 사진도 포함시켰는데, 이를 통해 과거에는 수동적인 피해자에 그쳤던 일본군 ‘위안부’들이 현재는 일본 정부의 과거사 책임을 요구하는 인권활동가로 변화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역사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내용을 소개하게 된 과정을 설명해 달라. 

“독일에는 모두 16개 주가 있다. 각 주의 교육부가 교과 과정을 선정할 권한이 있고, 대략 10년에 한 번씩 최신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지방정부는 교육 과정의 일반적인 뼈대와 주요 주제들을 결정하지만, 세부 사항과 교과서 선택은 학교의 자율적 선택에 맡긴다. 하지만 교과서를 발행하는 민간 출판사들은 지방정부의 검정을 거친 후에야 판매가 가능하다. 2016년 주정부의 교과서위원회가 ‘일본제국주의’를 필수 역사 교과 과정에 포함시켰다. 당시 베스터만 출판사로부터 역사 교과서 집필 제의를 받아 저술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본제국주의 역사 가운데 ‘위안부’ 역사를 포함한 동기는 무엇인가. 

“현재까지 진행 중인 이슈임에도 독일 학생들이 공교육에서 접하지 못했던 주제라 소개했다. 우리 학생들이 언젠가는 다국적 기업이나 아시아에서 인턴십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아시아의 복잡하면서도 예민한 역사도 꼭 알리고 싶었다. 또한 이 ‘위안부’ 이슈는 독일을 포함, 전 세계 아시아 후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고 있지 않나. 최근 독일에서 아시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독일과 일본이 과거사를 대하는 방식이 너무 다른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선 역사학자로서 역사적 맥락이 다른 두 나라의 화해 노력을 단순 비교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독일과 서유럽의 화해는 사실 일반적인 현상이라기보다 예외에 더 가깝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경제 재건과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미국의 ‘마셜 플랜’을 통해 상당한 경제원조를 받았다. 연합군의 점령하에 있던 독일은 1945년부터 1950년경까지 ‘탈나치화(denazification)’라는 역사 청산의 압박을 받았다. 1945년 5월 항복한 독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같은 해 포츠담회담에 참가한 미국·영국·소련의 대표들은 ‘4D’로 불리는 탈나치화·탈군사화·권력분산·민주화 기조에 합의하게 된다. 나치정권 부역자들의 책임을 묻고 나치주의를 없애는 탈나치화 방침에 따라 독일 정부기관·학교·사기업·언론·사법부 등의 관련자들을 면직시키고, (과거 행적에 따라) 사법처벌도 가했다. 연합국은 독일을 강한 경제력을 가진 민주주의 체제로 새롭게 리모델링했다.”   

 

동아시아에서는 냉전시대의 역학관계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했다. 즉 중국이 1949년 공산화된 후 일본은 미국의 반(反)공산주의 전선에서 제일 중요한 아시아 파트너로 부상했다. 미국은 독일에서 했던 방식대로 일본 관료들을 숙청하지 않는 가운데, 일본 천황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며 어떤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미국의 지원으로 일본의 경제는 빠르게 회복했고, 1960년대에 이미 아시아의 주요 경제대국이 되었다. 일본에 의해 피해를 입은 아시아 국가들은 주요 무역거래국인 일본에 과거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일본은 자신의 이런 막강한 경제력으로 과거사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지위를 획득한 셈이 되었다.   

베스터만 출판사에 실린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 김덕진 할머니의 증언과 함께 비젠시에 세워진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했던 안점순 할머니의 사진이 실렸다. ⓒ베스터만 (Westermann) 출판사
베스터만 출판사에 실린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 김덕진 할머니의 증언과 함께 비젠트시에 세워진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했던 안점순 할머니의 사진이 실렸다. ⓒ베스터만 (Westermann) 출판사

독일에선 형법 130조 3항에 의거해 홀로코스트 부정이 불법화되었다. 한국도 최근 양향자 의원이 ‘역사왜곡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는데, 이 법안은 ‘위안부’의 존재 부정이나 피해자 모욕 등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런 접근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독일이 1994년 이 법을 제정한 것은 맞지만, 이런 결정은 다수 사회 구성원들이 수십 년간의 토론 과정을 거친 결과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아프지만 열린 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화제의 다큐멘터리 《주전장》에서 잘 볼 수 있듯이, 미국은 냉전시대 친미-재군비 전환을 위해 현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이자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를 감옥에서 석방시킨 후 막대한 비자금을 지원하며 그를 총리로 내세웠다. 이후 그는 ‘미·일 안보조약’ 개정안에 서명해 주일미군 기지를 유지하고, 심지어 고문·강간·살인죄로 복역 중인 전범들을 석방하며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었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보면, 아베 총리와 자민당이 집권하고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필요로 하는 한,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궁극적 목적에 도달하긴 어려워 보인다. 

“동의한다. 아베 정부는 아마도 활동가들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항상 정치세력에 의해 무기화되고 있다. 한마디로 활동가들은 종종 이런 국제정치라는 전장의 최전방에 놓인다. 동아시아 국제정치 지형은 지속적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미해결 과제들로 인해 언제라도 발화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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