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사회적 거리 두기 동안 《밀회》 몰아보기 했다”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0 14:00
  • 호수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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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아있다》의 20대 청년, 준우가 되어 돌아온 배우 유아인

우리가 아는 유아인은 세고, 강렬하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그 벽이 높다. 한데 그가, 소년의 얼굴을 하고 물색없이 웃는다. 수줍은 듯 보이고, 경계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조근조근 말하지만 행간 사이사이 긴장감이 스며 있다. 미세한 떨림도 느껴진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진행된 인터뷰였다. 화이트 반팔 티셔츠에 헐렁한 복고 데님을 입고 있었다. 마스크 덕분인지 그의 또렷한 눈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맑다. 유아인은 어떤 사람일까.

그가 3년 만에 컴백했다. 영화 《베테랑》 《사도》 《국가부도의 날》까지 매 작품 남다른 존재감을 선보이며 대체불가한 배우로 자리매김한 유아인이 이번엔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왔다. 그는 영화 《#살아있다》(조일형 감독)에서 세상과 단절돼 혼자 남겨진 20대 청년 준우를 연기한다. 《#살아있다》는 원인불명 증세의 사람들이 공격을 시작하며 통제 불능에 빠진 가운데 데이터, 와이파이, 문자, 전화 모든 것이 끊긴 채 홀로 아파트에 고립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생존 스릴러 영화다. 단편영화 《진》(2011)을 연출한 조일형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유아인과 박신혜가 주연을 맡았다.

ⓒUAA 제공
ⓒUAA 제공

영화의 초반 50분을 혼자 끌고 간다. 원맨쇼를 보는 느낌이다.

“사실은 그것 때문에 도전했고, 그것 때문에 힘들었다. 하지만 도전은 늘 자극이 된다. 현장 편집본을 받아보면서 초반에 호흡을 잡아나갔다. 유난스러울 정도로 계속 봤다. 상대 배우가 없고, 블루 스크린을 배경으로 연기하는 장면이 많아 부담도 됐지만 그게 이 영화의 숙제였고, 그게 잘 만들어졌을 때 성공하는 영화였다. 동시에 혼자 편하게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상대 배우와의 호흡을 기대하지 않고 내 느낌대로 그림을 그려가는 재미랄까. 재미있었다.”

 

좀비물이다. 좀비 영화 마니아라고 들었다.

“안 본 영화가 없을 정도로 좋아한다. 《좀비랜드: 더블 탭》 같은 병맛도 좋아한다. 참고한 좀비 영화의 레퍼런스는 《나는 전설이다》다. 이 영화 역시 주인공 혼자서 긴 시간을 흥미롭게 진행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참고했다.”

 

장르물 도전은 처음이다. 조금 의외다.

“선입견이 많이 없어졌다. 동시에 장르물을 시도해 볼 만큼 여유도 생긴 것 같다. 배우가 장르 안에 들어가 소모되는 영화가 아니어서 좋았다. 장르물이지만 배우의 감정, 에너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영화라 도전해 볼 만한 작품이었다. 역할이 크다는 점도 내게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그것도 내 자존감이니까. 배우가 쓸데없이 쓰이는 작품은 선호하지 않는다.”

 

노래 부르고 술 마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대본에는 ‘알 수 없는 막춤을 춘다’ 정도로 적혀 있었다. 전날 집에서 연습 영상을 찍어 감독님께 보내드렸다. 10분 정도 되는 영상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래서 그 장면의 분량이 늘었다(웃음).”

 

‘캐릭터’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다시 내 옷을 입은 느낌이다. 사실 《베테랑》의 캐릭터는 그 당시 ‘번외편’ 같은 것이었다. 한데 그게 내 대표 이미지가 돼서 겪어야 했던 혼란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옆집 청년 같은, 영화 《완득이》의 캐릭터처럼 비범함도 없고 그저 흘러가는 인물을 선호한다. 그 흘러가는 느낌보다 강렬한 느낌을 보여줘야 할 순간이 배우에겐 온다. 그때 《베테랑》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배우는 입체적인 롤을 만들어가는 게 숙제다.”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 고립에 대한 공포다. 살면서 ‘고립’이나 ‘외로움’을 경험했던 적이 있나.

“최근 코로나19로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셨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안 하던 휴대전화 게임을 하고, 내 작품을 잘 안 보는데 드라마 《밀회》(2014)를 몰아 보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배우인 게 좋더라. 내가 했던 작업들을 답습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빨리 흐르더라. 사실 내가 성향상 휴대전화와 별로 안 친하다. 한데 휴대전화로 지인들과 소통도 자주 하고, 엄마와도 전보다 더 많이 연락하게 되더라. 최근에 애플 워치를 사서 좀 더 사회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 배달 음식도 많이 시켜 먹었다. 나도 남들과 똑같이 산다.”

 

다시 《밀회》를 본 소감은 어떤가?

“사실 김희애 선배님이 출연한 《부부의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 김희애 선배님이 연기한 걸 보고 싶은 마음에서 본방사수를 다 했다. 《부부의 세계》 이후 《밀회》를 다시 봤다는 분이 많았는데, 나도 그랬다. 다시 보니 아주 좋았다.”

 

제임스 딘처럼 동시대의 청춘을 대변할 수 있는 얼굴이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지금의 생각은 어떤가?

“당시에는 로맨스물이나 진지한 청춘물에 많이 참여했다. ‘청춘의 얼굴’이라는 수식어에 대한 감사함도 컸고 또 내 노력을 알아주십사 하는 기대도 컸다. 물론 그러한 수식어 때문에 책임감도 생겼다. 실제 내 삶도 허튼짓을 하지 못했다. 그 계기로 본질에 집중하는 시간도 가지게 됐다. ‘배우가 뭐지?’ ‘배우의 역할이 뭐지?’ 하는. 과거엔 시대를 대변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이제는 아니다. 저런 놈도 있고, 이런 놈도 있고, 이런 정도의 인간의 면면을 표현하는 배우도 있고, 다른 방향으로 표현하는 배우도 있고…. 뭐 그런 게 배우가 아닐까 싶다.”

 

상대 배우인 박신혜가 “촬영 전에 (유아인과) 연기 스타일이 달라서 걱정을 했다”는 말을 했다. 실제 현장은 어땠나?

“워낙 내가 즉흥적인 성향이 강하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다. 사실 그동안 즉흥적인 걸 요구하는 현장을 많이 겪었다. ‘연습하지 마’ ‘제발 준비해 오지 마, 그럴수록 딱딱해져.’ 그래서 어쩌면 그런 것에 익숙해진 내 모습이 불편하게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데 내가 만난 박신혜라는 배우는 끌려가는 배우가 아니다. 내가 하는 연기까지 평가하고 제안하는 적극적인 배우다. 소통이 잘됐다.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소통이 힘든 살얼음판 같은 현장도 있고, 치열해 보이지만 소통이 잘되는 현장이 있다. 우리는 후자였다. 그 느낌이 반갑고 좋았다.”

 

현장에서의 유아인은 어떤 모습인가.

“사실 이번에 촬영하면서 어디까지 내 의견을 꺼낼까 하는 고민을 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런데 모두들 잘 받아주셨다. 서로 소통하고 조율하고 다듬어 나갔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작품에 임하는 것 역시 나에게도 도전이다. 내 표현을 상대가 불편해하면 나 역시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이번 영화는 다양한 유아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인물의 면면이 보이는 부분에서는 어느 영화보다 다채롭게 표현된 작품이다. 예를 들어 엄마와 깊은 감정을 교류하는 작품은 해 봤지만 몇 초 사이에 그걸 표현해야 하는 작품을 해 본 적은 없다. 덧붙이자면, 잘생기기를 포기한 작품이기도 하다. 완전 풀린 장면들이 많다.”

 

리얼 예능 《나 혼자 산다》에 먼저 출연 제안을 했다고 들었다.

“단순히 ‘영화팔이’를 하는 게 아니라 혼자 사는 내 일상을 보여주면서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싶었다. 명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조금 지루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삶에 느껴지는 갑갑함 같은 것들이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 원칙들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내가 편해지고 싶었고, 또 대중이 나를 편하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두려움도 있었다.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을까. 어쨌든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나의 일상은 아주 평범하지는 않으니까. 나의 지난 삶, 성취한 것들, 목표, 고민, 숙제들을 시원하게 털어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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