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왜 ‘피해자’ 대신 ‘피해 호소인’이라 했을까
  • 정우성 객원기자 (wooseongeric@naver.com)
  • 승인 2020.07.1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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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뜻 밝히며…호칭은 ‘피해 호소인’, ‘피해 고소인’
서울시는 “사건 공식 접수 안 돼 피해자라 안 해”

더불어민주당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피해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지지자들이 피해자라는 표현에 반감을 갖자 이 같이 표현했다는 분석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5일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대표로서 너무 참담하고 국민께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며 사과했다. 그는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피해 호소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멈추라"고 말했다.

여기서 등장한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됐다. 과거 비슷한 사건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던 표현이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도 14일 성명에서 "당사자들의 인권 보호는 물론 재발 방지를 위해 서울시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피해 호소 여성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 연합뉴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 연합뉴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을 사과할 때는 민주당도 피해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안 전 지사와 오 전 시장이 곧바로 피해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은 구체적 입장 표명 없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일부 지지자들은 검찰의 공소권이 사라졌고,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피해자라는 표현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도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유력 대권 주자인 이낙연 의원도 피해자라는 표현 대신 '피해를 호소하시는 고소인', '피해 고소인'이라고 지칭했다. 이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에 "피해 고소인의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8·29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사저널 박은숙

피해자가 소속된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이날 직원 인권침해 진상규명에 대한 서울시 입장을 발표했다. 입장문에는 피해자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았다.

황 대변인은 "우리 내부에 공식적으로 (피해가) 접수되고 (조사 등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피해자’라는 용어를 쓴다"면서 "피해 호소인이 여성단체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기자들의 질문에는 "이전에는 이런 말을 쓴 적이 없다"고 답했다.

야당은 피해 사실을 축소하고 부정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유의동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날 BBS 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피해자를 ‘피해 호소 여성’이라고 하는 것은 혐의 사실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일부러 의도적으로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도 언론 인터뷰에서 이해찬 대표를 향해 "피해 여성을 여전히 피해 호소인이라고 지칭하며 벼랑으로 몰면서 끝내 자기편만 챙기겠다는 대국민 선언"이라고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역시 "피해 호소 여성이라는 말은 피해자의 말을 아직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의 뜻을 담고 있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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