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원대 ‘반려동물코인’에 탑승하라”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2 10:00
  • 호수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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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관련 산업에 대기업도 가세…금융·교육 등으로 ‘세포분열’

‘트로트코인(트로트+비트코인)’. 최근 계속되는 트로트의 인기에 방송 프로그램과 음원, 광고 등 연관 산업이 상승효과를 누리자 생겨난 신조어다. 그만큼 트로트 열풍은 수치화할 수 없고 잠재력이 어디까지인지도 모를 팬심을 기반으로 화수분처럼 경제 효과를 창출하는 중이다. 기업들 사이에선 해당 현상을 자세히 이해하긴 힘들어도 ‘일단 트로트코인에 탑승하고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비슷한 일이 반려동물 시장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반려동물 산업은 보호자의 애정을 등에 업고 폭발적으로 성장해 왔다. 사료, 관련 용품 등 기존 시장은 물론 케어·금융 서비스 등 신(新)시장도 활황이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 시장 규모가 계속 커져 2027년쯤엔 6조원을 넘어설 것이라 관측한다. 트로트코인 부럽지 않은 ‘반려동물코인’인 셈이다. 

반려동물코인은 비트코인이나 트로트코인처럼 ‘열풍이 푹 꺼지진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도 자유롭다. 저출산·고령화와 1~2인 가구 증가로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며 물질적·시간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 ‘펫팸(Pet+Family)족’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일단 반려동물코인에 탑승하고 보자’고 나서는 기업이 많아졌다. 수입 브랜드, 중소기업 위주였던 반려동물 시장에 국내 대기업들까지 속속 뛰어들며 각축전 양상을 보인다. 

반려동물용 공기청정기 두고 삼성-LG 각축전  

국내 양대 가전 회사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반려동물 전용 가전을 놓고 라이벌전에 돌입했다. 먼저 치고 나간 건 LG전자였다. LG전자가 지난해 7월 출시한 반려동물용 공기청정기는 현재 같은 라인 제품 중 판매 비중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대박이 났다. 반려동물의 털과 먼지 등을 일반 공기청정기보다 약 35% 더 제거해 주는 제품이라고 LG전자 측은 설명했다. 

한발 뒤처진 삼성전자는 지난 5월 ‘털은 물론 냄새도 효과적으로 제거해 준다’고 어필하며 반려동물용 공기청정기를 선보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려동물에 관한 연구를 지속해 더 쾌적한 실내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반려동물 털을 잘 빨아들이는 청소기 등 다른 제품군을 놓고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가전 등 반려동물 신산업 분야는 더 다양해지고 커질 조짐이다. 황원경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연구원은 “반려동물 시장이 스마트케어, 보안카메라, 사물인터넷을 이용한 관리용 로봇·장난감, 위치추적기, 반려동물 전용 TV 프로그램 콘텐츠 제작, 교육·자격증 시장 등으로 확장되는 추세”라고 전했다. 

전통적인 반려동물 산업 역시 파이를 더욱 키워 나가는 모습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반려동물 시장(총 1조5684억원 규모)은 수의 서비스(41.8%), 사료 판매(31.5%), 동물 및 관련 용품 판매(24.5%), 장묘 및 보호 서비스(2.2%) 등이 주도하고 있다. 이후 6년 정도가 흐른 만큼 개별 산업 규모는 더욱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반려동물 사료 등 관련 식품, 이른바 ‘펫푸드’는 식품 대기업들의 새로운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하림그룹 계열사인 하림펫푸드는 지난 4월 “2019년 매출이 전년보다 4.5배 늘어난 103억2700만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하림은 2017년 하림펫푸드를 세워 고급 반려동물 사료 시장에 진출했다. 김홍국 하림 회장이 그룹의 명운을 걸고 던진 승부수였다. 사람이 먹어도 되는 수준의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휴먼 그레이드’ 키워드를 앞세웠다. 

‘펫푸드’, 식품대기업의 新먹거리로 부각 

프리미엄 펫푸드 시장에는 이미 풀무원이 진출해 있다. 2013년 펫푸드 브랜드 ‘아미오’를 선보인 풀무원은 합성첨가물 없는 유기농급 제품을 전면에 내세웠다. 동원F&B는 지난 6월 ‘츄츄닷컴’을 열었다. 앞서 동원몰에서 다른 식품과 함께 팔던 펫푸드를 전문몰인 츄츄닷컴으로 옮긴 것이다. 자체 펫푸드 라인업 ‘뉴트리플랜’을 비롯한 국내외 48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한국야구르트는 지난 5월 유산균 펫푸드 ‘잇츠온펫츠’ 브랜드를 만들며 펫푸드 시장에 발을 들였다. 앞으로 제품 종류를 늘려가는 한편 고객들에게 반려동물 입양, 사육 등을 포괄하는 통합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펫푸드와 펫팸족, 펫코노미(Pet+Economy) 등 각종 신조어는 반려동물 시장의 성장세와 화제성을 방증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새롭게 탄생한 용어가 하나 더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상황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뜻하는 ‘펫콕족’이다. 펫콕족이 급격히 확산하며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분야는 반려동물 용품 판매 업종이다. 

애경산업은 자사 펫 케어 브랜드 ‘휘슬’의 올 상반기(1~6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47% 급증했다고 밝혔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의 4월25일~5월24일 반려동물 용품 판매량을 살펴보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고양이 계절 매트는 1630%, 강아지 집은 43%, 반료동물용 브러시와 발톱깎이는 86% 늘어났다. 편의점 CU에서 지난 2~5월 반려동물 장난감 매출은 코로나19 발생 직전(지난해 10월~올해 1월)보다 51.4% 증가했다. 반려동물 용품 시장이 커지면서 유통업체들은 연관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있다. 

반려동물 산업과 유통업, 금융업의 합종연횡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CU와 삼성화재는 이달부터 공동으로 점포 내 택배 기기를 이용해 ‘삼성화재 다이렉트 펫보험’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반려동물의 입원·통원 의료비와 수술비 등 사고 발생 시 배상 등을 책임지는 순수보장형 상품이라고 양사는 설명했다. 우리카드는 지난해 8월 반려동물 관련 업종 결제 시 할인 혜택을 주는 카드를 출시했다. 

6월28일 ‘2020 케이펫페어’를 찾은 시민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6월28일 ‘2020 케이펫페어’를 찾은 시민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유니콘 꿈꾸는 ‘펫’ 스타트업 삼총사 

벤처업계에선 반려동물 용품을 판매하는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반려동물 용품 전문몰 펫프렌즈는 고양이 모래 등 PB(자체 브랜드) 제품이 큰 인기를 끌며 2018년 전국 서비스 시작 후 1200% 성장, 재구매율 83%라는 기록을 세웠다. 

펫프렌즈는 6월19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40개 ‘아기유니콘’ 기업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기유니콘 기업은 시장 개척자금 3억원을 포함해 최대 159억원의 연계 지원(특별보증 50억원) 정책자금을 받을 수 있다. 이날 펫프렌즈 외에 핏펫(반려동물 용품 판매), 펫닥(반려동물 케어 서비스)도 함께 아기유니콘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업체는 아기유니콘 기업으로 선정되기 전부터 꾸준히 외부 투자를 유치하며 성장 기대감을 키워 왔다. 

만성 불경기와 코로나19 리스크도 반려동물 산업에 대한 시장의 관심과 투자를 막지 못할 전망이다. 반려동물 산업이 워낙 확고한 대세로 자리 잡아서다. 현재 국내 반려동물 사육 인구는 1500만 명가량인 것으로 추산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591만 가구 정도로 전체의 약 4분의 1 수준에 이른다. 2012년 9000억원이었던 반려동물 관련 시장 규모는 불과 3년 뒤인 2015년 1조8000억원으로 두 배 증가했다. 이후에도 시장 파이는 급속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국책연구기관들은 보고서를 통해 한목소리로 ‘반려동물 시장 불패’를 외쳤다. 산업연구원은 반려동물 시장 규모가 올해 5조8000억원 규모로 늘어날 것이라고 관측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그보다 적은 3조3000억원 수준을 예상했지만, 7년 후인 2027년엔 6조원 이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반려동물코인 대박? 쉽지 않다 

너도나도 반려동물코인 대박을 꿈꾸지만, 아직 이렇다 하게 성공을 거둔 국내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대기업조차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했다. 

CJ제일제당은 2013년 펫푸드 브랜드 ‘CJ 오 프레시’와 ‘오 네이쳐’를 선보였다가 6년여 만에 철수했다. 빙그레도 2018년 반려동물 전용 우유인 ‘펫밀크’를 출시했다가 1년 만에 포기했다. 오랜 기간 동물병원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오는 등 견고한 영업망을 갖춘 수입 브랜드들에 밀려난 탓이다. 

펫푸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들도 아직 시장에 안착했다고 말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동원F&B는 2014년 펫푸드 사업에 진출하며 2020년까지 연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올 상반기 매출은 200억원에 머물렀다. 하림펫푸드 역시 매출 증가세에도 2018년, 2019년 2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다. 

박지혜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국내 펫푸드 시장의 70%를 외국 브랜드가 점유하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은 오래전부터 국산품보다는 미국이나 유럽 등의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왔다”면서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선 국산품 신뢰도 제고, 소비자 니즈(고급 사료 선호 등) 파악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려동물 시장의 건전한 성장을 뒷받침할 제도와 의식, 즉 내실도 충분히 다져지지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인배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려동물 연관 산업 발전 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토종 펫푸드 경쟁력이 낮은 이유로 △반려동물의 생산, 유통, 사육 등에 대한 기초 통계자료가 미비한 점 △반려동물 학대와 유실·유기 문제가 꾸준히 발생하는 점 △동물 등록 의무화가 잘 지켜지지 않는 점 △동물병원의 진료비 편차가 심하고 때때로 과잉 진료가 발생하는 점 △반려동물 관련 자격증이 난무하고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점 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먼저 관련 법을 제정해 정부의 반려동물 산업 보호·육성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아울러 반려동물의 생산, 분양, 사육 과정에서 동물 복지를 확대하고 반려동물을 기르는 시민의 의식을 고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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